올봄에 딸이 호주로 출국하면서 이제는 나를 위한 삶을 살아 보리라.지금부터 시간을 잘 관리해서 즐겁고 멋진 노후를 준비해야지 다짐했다.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관계에 서툴러서 항상 자식들에게 목을 매는 엄마를 보면서 늘 불편했다. 다른 사람들은 주민센터나 문화교실을 이용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많은 사람들과 교제하고 어울리면서 즐겁게 노년을 보내는데 반해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늘 불만이고 화가 나는 엄마를 보면서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데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작정을 했다.
큰언니 둘째 언니의 다리가 불편한 걸 보면서 내 다리도 같은 유전자인데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동안 악착같이 살아왔으니 이젠 좀 쉬면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걸 해보고 배우면서 한 십 년 잘 놀아 보다가 혹시 불편해지더라도 내 인생 고달프고 억울하지만은 않았다고 웃으면서 추억해야지 생각하고 실천했다. 문예창작반을 등록하고 몇 년 전 석 달을 채우지 못했던 민요 반도 등록했다. 어쩌다 사람들이 전화가 오면" 수업 중입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더니 뭐냐고 묻길래 웃으면서 내가 전생에 황진이였나 봐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느 날 민요 선생님이 춘천 봄내 예술제 개막식에서 "비나리" 란 공연을 하는데 거기서 고깔을 쓰고 연꽃을 들고 열 명가량 춤을 추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도와줄 수 있겠냐 물으시길래 나는 얼마 안 됐는데 가능해요? 물었더니 충분하다면서 사람이 작으면 무대가 안 채워져서 그런단다. 배우는 사람이 선생님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해야지요 시간을 맞춰 볼게요 했다. 19일 날 낮에는 효자복지관에서 1시에 하고 오후 4시에는 공지천으로 이동해서 하는 공연이었다. 효자 복지관은 오래된 영구임대 아파트인데 장애인과 가난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사는 곳이다. 속눈썹을 붙이고 태어나 처음으로 5:5 가르마를 타서 빗어올리고 쪽을 쪘다. 매화타령을 부르고 마지막 순서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장애인들과 어울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며 놀아 드리고 나오는데 몇몇의 사람들이 고마웠다고 인사를 한다. 인사를 받고 나오면서 그동안 장애인들을 돌보면서 씻겨 주기도 하고 변도 닦아 주었지만 고맙다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별거 아닌 재능 기부로 이렇게 감사를 받는구나 뿌듯했다.
오후에 있을 공연을 연습한다고 선생님이 운영하는 학원에 다시 모였다. 공연 중에 관중을 향해 인사를 하는 율동이 두 번 있는데 머리에 쓰는 고깔이 앞뒤로 커다란 종이꽃이 4개나 있어서 자꾸 모자가 앞으로 쏠리길래 선생님에게 " 안 쓰고 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손에 연꽃을 두 개나 들었는데 이 커다란 모자를 굳이 왜 쓰지요" 물었더니 " 에유 원래 그거 안 썼어요 나도 안 쓰고 싶어요 근데 얼굴이 나오면 안 된다고 모자이크 처리가 안되니까 푹 눌러 쓰라는 거유" 한다. 얼굴이 나오면 안 된다는 게 무슨 소리지 우리가 범죄에 연루된 피의자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연습하는 시간에 더 물어볼 수는 없는데 뭔가 이상하고 혼란스러웠다.
공지천에 도착해서 무대 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일반 한복이 아닌 무대 한복이라 속치마도 한 아름 부풀려진 것이었고 치마저고리 위에 쾌자란 것을 덧입어야 했다. 쾌자는 허리를 둘둘 둘러서 뒤에다 커다란 리본을 매어주는 것인데 혼자 입을 수도 없는 옷이었다. 한창 옷을 입는데 선생이 옷은 나중에 입고 빨리 모자를 쓰라고 성화를 한다. 종이꽃이 달린 큰 모자를 쓰고 어떻게 옷을 입으란 말인가? 왜 저렇게 아까부터 모자를 쓰라고 할까 참으로 알 수 없었다. 선생을 멀거니 쳐다보는데 선생의 선생 그러니까 큰 선생이 왔다는 것이다. 큰 선생이 예술대학교수인데 그의 제자들이 공연을 하고 다음에 우리가 하는 순서였다. 그 아이들은 젊은 아이들인데 반해 우리는 평균 나이 64세 정도이니 우리 얼굴이 보이면 안 된다고 해서 모자를 쓰라는 거였단다. 너무나 어이없고 화가 났다. 그런 와중에 옆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무대 화장을 하고 쪽을 찐 채 우르르 들어왔다. 하나같이 이쁘고 아름다웠다. 쳐다보면서 " 어이구 여긴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들 같네요" 하면서 " 여러분 여기를 쳐다보고 안구정화 좀 하세요" 마음에 평화를 찾아 보려고 실없는 소리로 달래 봐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무대에 올라서 평정심을 잃은 탓인지 며칠 잘 익힌 율동을 어느 순간 놓쳐버렸다. 공연이 끝나고 내가 쓰고 들고 입었던 소품을 양손 가득 들고 바람처럼 그곳을 빠져나왔다. 시간에 쫓기는 게 첫째 이유였고 그곳에 더 이상 있기 싫었다.
다음날 나에게 함께하자고 이야기한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어제 피곤했지요? 인사를 하고 내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처음부터 그런 취지였다면 나는 안 갔을 거라고 너무 불쾌했다고 이야기했더니 자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처음엔 모자를 안 썼는데 큰 선생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 어쩔 수 없이 쓰게 된 거라며 옹호하는듯한 말을 한다. 해서 만약 나였다면 소신 있게 처신했을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우린 전부 나이가 들은 사람들입니다. 굳이 얼굴을 보이지 말고 하라시면 못하겠습니다.라든지 아니라면 아예 젊은 사람들을 내가 월급을 주고 고용해서 예술단원으로 키워서 그 사람 입맛에 맞게 공연을 하든지 해야 맞는 것이지 나이들은 사람들인지 알고 시키면서 얼굴을 보이지 말라는 말로 마음 상하게 해서는 안되지요. 나이 드신 분들이 그만큼 하면 대단하다 잘했다 해야지 그런 경우가 어디 있어요. 자신의 지명도를 높이고 싶어서 하는 공연에 나이 드신 분들의 유휴인력을 돈 한 푼 안 들이고 이용하면서 그런 막말을 하면 안되지요.
전화를 끊고 나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내가 이상한 건가
화가 났다. 일단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어보고 다음에 선생님에게 정식으로 이의 제기를 하면서 공론화를 시켜 보리라 마음먹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런 대접에도 불만이 없다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마음이 착잡했다. 월요일인 어제 먼 곳에서 온 조카와 언니 등 많은 손님들을 집에 둔 채 문창과 수업과 지난주에 복사하고 발표하지 못한 분의 원고 때문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서면서 내 차의 뒷좌석에 있는 공연 소품을 돌려 주기 위해 민요반 총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걸 어디로 갖다 줄까요? 물었더니 첫마디에 "공연소품은 언니가 아무리 바빠도 학원에 갖다 주고 가는 게 예의예요" 한다. 기가 막히고 코가 찬다. 누가 누구에게 예의를 논하는가? 예의 없게도 늙었다고 얼굴을 가리라 한 게 누구인데,,,,, 잠시 뜸을 들이고 "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했더니 "그래도 그건 안되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걸 학원에다 안 갖다 주고 그냥 가면 어떡하냐고 얘기했어요." 한다. 화가 안 가라 않은 상태에서 마음이 심하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월요일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운영하는 학원은 월요일 12시 30분까지 하는 문창반 수업이 끝나면 학원도 문을 닫는단다. 문창반에 올라가서 지난주에 일이 있다고 다음 시간에 발표하시겠다는 분의 원고를 찾아들고 사혜나 씨에게 가서 부탁을 했다. 내가 집에 일이 있어 지금 가봐야 하니 이 원고와 오늘 써 온 분들의 원고를 복사해서 나대신 나눠 주고 다음 주에 보자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조카가 왜 왔어요? 하길래 " 예의 없는 것들이 나한테 예의를 논하네 " 하며 쾌자를 다리니까 " 확 그냥 갖다 줘" 한다. 그러면 안 되지 다림질을 하고 쇼핑백에 넣어서 학원으로 갔더니 몇 사람이 개인 강습을 받고 있었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소품을 구석에 두고 나왔다.
오후 2시에 민요 수업을 갈까 말까 망설였다. 귀로 듣기만 하는 수업은 마음을 누르며 들을 수 있겠는데 이 기분으로 노래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망설이다가 주민센터에 도착하니 연휴가 끼어서 인지 몇 사람 되지 않았다.50분을 하고 쉬는 참에 선생이 옆에 다가오더니 "그날 고생하셨어요. 나오신지 얼마 안 됐는데 두 탕씩 뛰느라 힘드셨지요 " 하길래 선생님이 말씀하시니 얘기할게요. 총무님한테 소품을 갖다 주려고 전화했더니 대뜸 예의를 운운하더라고요 그게 예의까지 들먹일 일은 아니지 않나요? 대화라는 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건 아니지요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도 한마디 해주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면 좋잖아요 " 먼저 공연하느라고 고생하셨어요" 인사를 한 후에 그 소품은 그냥 가져가시면 안 되고 학원까지 가져다주시고 가셨어야 하는 거예요. 이렇게 이야기를 해야 상대가 기분이 안 나쁠텐데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하지요? 그리고 선생님이 모자를 쓰라는 것도 처음엔 무슨 소린지 몰랐는데 얼굴이 늙은 게 이유라고 해서 불쾌했어요. 이미 늙은 걸 어쩌라고요? 늙은 줄 몰랐던 것도 아니잖아요. 했더니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 혼자만 몰라서 그랬나 보다고 자기변명을 한다. 이유가 어찌 됐건 마음은 상할 대로 상했고 아무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 이상한 사람들하고 더 이상 함께하고 싶지는 않았다. 민요를 부르는 게 지금은 귀한 예인으로 대접을 받고 있지만 오래지 않던 몇십 년 전만 해도 별로 인정받지 못하던 천한 일이었다. 우리 엄마가 남도 민요를 구성지게 불러서 내가 듣기 좋다고 한 번만 더 해보라 청하면 내가 어릴 때는 이게 그렇게 좋더라 부르다가 어른들이 들으면 난리가 났다. 이담에 뭐가 될 거냐고 얼마나 닦달을 하는지 숨어서 어쩌다 불러보곤 했단다. 하시면서 몹시 애석해 하셨다. 혹시 오랫동안 이어져온 그런 식의 사고가 오늘날까지 마음 깊이 자기 비하의 습성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교수가 있는 건 아닐까? 늙은이는 늙은 대로 젊은이는 젊은 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봐주는 게 진정한 예술의 경지라고 생각해서 나는 화가 나는데 화가 나는 내가 이상한 것인지 진정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