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야 !
정말로 느린 걸음이다.
달팽이처럼 느릿 느릿
아니 쉬엄 쉬엄
딴정도 부리고
이곳 저곳에서 쉬어가기도하고
그림을 시작한 세월이 15년도 넘었다.
첫붓을 들때 나는 그래도 꽃띠였던것.
지금은 망구가 되었다.
휴 ~ 쉽지않는 길이었다.
우리 막내딸 네살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지금은 그아이가 대학생이 되었다.
긴 세월을 통하여 어렵게 어렵게 문인화 작가가 된것이다.
한국 문인화 화단에 작은 열매가 맺힌것이다.
이제는 그 열매를 잘 키워가는 일들만 남아있다.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온다.
맨처음 붓을 들었을때 일곱시간 열시간씩 "난"을 치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때는 얼마나 열심히 "난"을 치었던지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온 남편 얼굴을 처다보면 그 얼굴에 마음으로 난을 쳤다.
메리야스를보면 메리야스에 난을치고
하늘을보면 올려다본 하늘 화선지에 난을 치곤 하였다.
어느날인가 첫번째 공모전에 출품을한후 집으로 돌아오던 때였다.
발목까지 눈이 푹푹 쌓여 있었다.
눈길을 걸으며 눈밭에 수많은 난초잎을 그렸다.
기수선 그리고
봉안선 그리고
파 봉안선 그리고
절엽그리고
발아엽그리고
와~
그것은 인생극치였다.
열시간씩 그림을 그려도 피곤하기는 커녕 에너지가 샘솟았다.
후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딴정을 피웠다.
이유인즉 주부이다보니 가사가 밀리고 연로하신 부모님도 돌봐야하고
경제적인 사정도 피할수 없다보니 본의 아니게 딴정을 피울수밖에...
더구나 맨첫음 내가 붓을 세월때 도움을 주시던 스승님께서
산골로 은둔을 하시게 되었다.
다른 스승님만나 좋은 인연을 지어가기도 하였지만
결국 그 스승님께서 다시 도시로 나오신지 3년만에 결국은 서예전람회 공모전에서
요구하는 15점을 따내어 문인화 작가가 된것이다.
어제도 스승님께 몹시 꾸지람을 들었다.
너무 딴정을 부리고 알만한것이 너무도 스승속을 모른다하여 폭풍화를 내셨다.
나는 그냥 헤헤 ... 웃었다.
나는 여전히 딴짓을 할것이고
여전히 스승맴을 모를것이고
어쨌튼 나는 충청남도 서예전람회에서 15점이라는 점수를 따서 "문인화" 작가가 된것이다.
느린걸음이면 어떠랴!
스승님께 꾸지람좀 들으면 어떠랴!
그냥 나는 그림을 그릴것이고
여전히 딴짓을 할것이고
스승께서는 또 화를 낼것이고..
중요한것은 내가 어떠한 경우라도 붓을 놓치 않는것이다.
주부의 운명이 그러한것을
셋씩이나 되는 아이들을 길어야했고
앞으로도 볼봐야하고 양가 노인들 돌봐야하고
그리고 거룩하신 부처님
내 인생을 원만히 풀어가는데 큰 도음을 주시는 삼보(부처님,부처님말씀,스님)전에
투신할것이고...
어제는 몹시 진노하시던 스승님께서 안되보였는데 호출을 하셨다.
맛있는 밥을 사주셨다.
철없는 아이처럼 냠냠먹고 돌아왔다.
사람들은 스승과 나사이를 애증관계라 했다.
도끼를 갈아 마늘을 삼으라는(磨釜作針)스승에 말씀을 또 꿀꺽 삼킨다.
소문에 소문이 돌아 우리 스승님밑에 남겨지는 제자의 수효가 아주 적다.
2003년도에 한명배출되고
2017년인 현제 내가 2호로 배출된것이다
가장 중요한것은 나와 우리 스승사이에는 먼 과거 전생부터 깊은 관계였던것이
틀림없다.
오늘은 후회를 하였다.
내가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가까이 가서 열심히 그림을 그렸더라면 좋았을걸.
그러나 나는 또 그림외에 딴정을 부리겠지.
어쩔수 없는일...주부의 이름이 나를 묶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