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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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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로 떠난 둘째


BY 그대향기 2016-10-11



온 집안을 폭탄을 맞은 전쟁터로 만들어 놓고​

둘째는 이민가방 세개를 들고 러시아로 떠났다.

아니

정확하게는 서울로 떠났다.

서울에 가서 만날 사람들도 있고

준비물도 더 챙긴다며 이틀 정도 앞서 떠났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도 아니고

거의 유럽땅 모스크바.​

벌써부터 겨울날씨라는데 어찌 지내고 올런지

우리나라 겨울날씨는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로

눈도 많고 춥다는데

어찌지내려는지 엄마는 걱정인데 저는 신나서 갔다.

젊음이 좋다.

젊음이 부럽다.

잘하고 오리라 믿어주기로 했다.

설령 변수가 생기더라도 용감하고 씩씩하게 돌아오라고 했다.

마음에 부담을 안 주려고 노력했다.

상당한 희생이 따르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부모가 비빌언덕이 되게 믿음을 주고 싶었다.

나약함보다는 무모하더라도 도전하는 아이로 남게 해 주고 싶다.

폭탄 열개쯤 터진 집모양을 하고 떠났지만

어쩌랴~

아이마다 다 제각각인걸.

추진력이나  도전정신은 국보급인데.​ㅋㅋㅋ

어릴 때 부터 하도 짐정리를 잘 못해서​

학교가방하고 책들을 소각장에 넣기까지해도

고쳐지지 않는고질병이라 엄마인 내가 포기했다.

그 때 진짜로 책을 태웠어야했을까?ㅎㅎㅎ

다 잘할수는 없다.

어느 하나는 허술하고

안되는게 있을 수 있다고 맘 편하게 산다.

안 그랬다가는 혈압이 올라가 나만 괴로울걸...

대충 거실에 사람 다닐만한 길만 만들고

딸아이방에 짐을 던져놨다.

종이박스에 허술하게 담은 모양 그대로.

차곡차곡 정리할 시간이 없긴했다.​

추석에도 알바비 더 많이 준다고

연휴 5일 내내 커피숖에서​

발이 부르트도록 일을 한 아이다.

짐 싸기 하루 전까지 학원 일을 하기도 했다.

독종이다.

한푼이라도 더 벌어서 간다며

맘편히 휴일을 보내지도 못했다.

그런 애 한테 짐 정리 안하고 간다고 잔소리하기도 그렇다.

그 짧은 시간에 이민가방 세개분량을 싼 애도 대단하다.

거실이야 폭탄이 터지건말건....

새벽 4시까지 짐 싸고 떡실신

아침 8시버스로 서울로 갔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얼굴

생얼로​ 서울가는 버스에 오르는 내 딸은

거의 유령얼굴이었다.

버스에서 거의 죽은 듯이 잤다네.ㅋㅋㅋ

저 좋아서 떠나는 일이니

힘이 솟는 모양이다.

난 왜 이런 엄마아버지가 안 계셨을까?​

어디든 떠나라고 손 흔들어주는 그런 부모.

내 딸이지만 부럽다.

그리고 대견하다.

남편은 그런 둘째한테 대단한걸 이루지 못하고 돌아오더라도

언제든 건강하게만 돌아오라고 했다.

길은 여러 곳에 열려 있으니

죽을 힘을 다해 힘써보다가  지쳐 쓰러지면

다시 한번 일어나 도전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돌아오라고.​

담주에 큰 행사가 있으니 그 행사 끝내놓고 ​

느긋하게 짐 정리를 해야겠다.

포장이사박스에 꽁꽁 챙겨넣자.

몇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니 단단히 묶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