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여름은 시작되었다.
여름방학과 함께 수련회가 시작되었다.
이 직장에 있으면 이건 피해갈수가 없다.
휴대폰에서는 연일 폭염주의보와 경보가 날아드는데
나는 가마솥을 안고 살아야한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열개를.
국솥에 밥솥 그리고 볶음솥까지.
여름에 가장 신경쓰이는 식중독을 예방하려면 뭐든 즉석에서 끓여야한다.
매끼니마다 바로바로 준비한 식재료를 가지고 즉석에서 해 먹이다보니
늘 큰 솥에서는 식재료들 삶고 끓이는 일이다.
수저소독 역시 큰 솥에 물을 팔팔 끓인 다음 식초를 조금 넣고 소독을 한다.
어떤 곳에서는 그냥 식기세척기에 같이 넣어서 한다는데 나는 일일이 따로 소독을 한다.
행주는 삶고 수세미도 끓는 물에 소독을 해서 쓴다.
23년 내 주방에서 늘 하는 일이다.
내가 좀 번거롭고 더워도 안전하게 하는게 맞다.
아직까지 식중독 사고가 단 한건도 없었던 것도 철저히 안전을 위했기 때문이다.
35도에서 ~38도에 가까운 한여름 가장 더운 날에 하는 수련회라 늘 긴장된다.
시장도 새벽시장에서 가장 신선한 재료를 구입한다.
앉아서 배달해 온 재료는 믿을 수가 없다.
그저께부터 300명 2박 3일 수련회를 시작해서 무사히 끝냈다.
시작하던 첫날 얼마나 더운지...
옷은 아무리 얇고 시원한 면소재를 입었다하더라도 칭칭 감기고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했다.
그날 내 용모는 인어아나존스였다.
이마에는 면수건을 질끈 동여맸고 인견반바지는 무릅 위에서 펄럭이고
얼굴은 익어서 벌겋고.
더운 날씨가 비가 오려고 그랬는지 얼마나 습하던지 숨이 턱턱 막혀왔다.
주방에서는 볶고 삶느라 가스불은 고압으로 쉭쉭거리고 .....
너르디 너른 주방에서 선풍기는 돌아갔지만 습한 바람만 내뿜었다.
아..
정말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쨍하고 더운건 좀 낫는데 습하고 더운건 인내력을 시험하는 날씨다.
그래도 주방 책임자로써 내 할 도리는 일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편하게 수월하게 해 줄 의무가 있다.
내가 더 빨리
내가 더 많이
내가 더 잘해야 한다.
그래야 일하는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믿고 따라온다.
월급받는 만큼만 일하면 그건 아니다.
월급하고는 상관없이 나는 내 일이 소중하고 즐겁다.
사람들이 좋고 내 일을 사랑한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다 해 주고 잘 먹어 주는 아이들이 만족한 인사를 할 때 나는 행복하다.
이까짓 더위쯤이야....ㅎㅎㅎ
그러구러 2박 3일이 지나갔다.
다음 주에 또 300명 2박 3일.
얼마나 더 더울지.
나는 해마다 한여름을 주방에서 보낸다.
사람의 모습만 있고 여자는 없다.
민낯이 거의 아프리카 원주민 수준이다.
스킨하고 알로에젤만 바르고 다녀도 덥다.
썬크림은 더워서 패스.
그래도 여자라고 그건 빼 놓지 않고 바른다.
시간이 멈추지 않고 지나가 주니 이 여름도 가을에게 자리를 내 줄 때가 오겠지.
그 때 훠이~훠이~바람쐬러 가지 뭐.
시원한 곳으로.
남편이 안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며 어디 좋은데 알아보고 날아갔다 오라는데 어딜가지?ㅋㅋㅋ
저번에 필리핀은 봉사하러 갔으니 여행이 아니고
진짜 여행을 다녀오란다.
일년 동안 고생한 보상휴가.
둘째가 러시아갈 때 짐꾼으로 같이 갔다가 모스크바 구경하고 올까?
더운데서 일하면서도 즐거운 상상을 하면 견딜만하다.
일하고 돌아오는 집 마당에(옥상) 나를 미소짓게 하는 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