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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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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기


BY 마가렛 2015-05-25

만보기

 

9,499 

너의 핸드폰의 만보기 숫자다.

잘 때 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오늘은 만 보를 걸었나보다.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너는 며칠 전부터 만보기 앱을 다운 받아 되도록이면

하루에 만 보를 걸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운동을 안해서 그런가

요즘 부쩍 얼굴에 주름도 잡티도 많이 생긴 것 같다.

남들은 의술의 힘을 빌려서 젊고 예쁘게 살지만 너는 자연미인이라고 혼자 자아도취에 빠져산다.

언제부턴가 남들에게 피부관리 좀받아야겠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감도 떨어지고

갑자기 늙어졌다는 마음에 의기소침해졌다.

 

만보기 

 

책 한 권 들고 도서관에서 가서 책이나 하루종일 읽으려는 마음과는 달리

길막힌 도로를 인내심과 함께 그길을 극복하고 호명호수 중턱 어느 카페에 앉아서

휴일의 호강을 누리고 있다.

나이가 너보다 조금 어려보이는 여자는 바쁘게 움직이며 손님에게 인사를 건넨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한 갈래로 딴 그녀를 너는 유심히 관찰한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헐렁하게 입은 옷과 편한 신발

분주한 걸음으로 주문한 메뉴를 빠르게 손님 테이블까지 갖다주는 그녀는 행복해 보인다.

바깥 파라솔에 앉아 주위를 살펴보니 평화롭다.

파라솔 뒤에선 잉꼬새가 경쾌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스피커에선 귀에 익숙한 팝이 흘러나오고

대각선에 있는 그네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아 여백의 미가 보인다.

데크위엔 색색의 들꽃들이 바람에 가볍게 춤추며 너에게 손짓까지 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너의테이블 아래엔 개가 늘어지게 잠을 자며 오유월의 개팔자를 알려주고 있다.

 

만보기

 

잔을 깨끗하게 비우고 너는 걷는다.

흙위을 걷는 너는 자연에 감사하며

5월의 푸른색에

높은 파란하늘의 코발트색에

이름보를 보라색 꽃에 또한번 감사의 표시로

양팔을 크게 벌리고 단숨을 마시며 활짝 웃어준다.

오솔길을 걸으며 아무도 없는 길에서

작게 올라오는 먼지를 보며 행복해한다.

또 하루가 가는구나.

많이 걷고 많이 생각하는 하루를 보내면서

자동차 안의 백미러를 쳐다보며

얼굴이 맑아진것에 흐뭇해하며 만보기를 확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