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던 오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어버이날 선물로 여수 오동도에 다녀왔다.
아들이 행복한 오월을 만들어주었다.
여수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고 유람선을 타고 여수 구경을 하고 어시장에 가서 회도
먹었다.
오월의 여행은 적당히 덥고 적당히 시원했다.
아들이 정해준 호텔의 전망은 바다와 가까이 있어 너무나 좋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바다를 실컷 보았다.
“건강하게 오래만 사세요. 내가 부자 되는 거 보셔야지요. 어서 돈 많이 벌어서 엄마
아버지 내가 모시고 살아야지. ”
아들이 바로 잡으려는 가정에 며늘애도 동참 되었으면 좋겠다.
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서로 감싸주고 아껴주는 너그러움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할까.
밤에 마트에 다녀오려는 아빠를 따라가겠다고 우기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윤하를 붙잡았다.
“할머니는 혼자 있는 거 무서워. 윤하는 아빠 따라가지 말고 할머니랑 있자.”
놀라서 눈이 동그래진 윤하가 내게 묻는다.
“할머니 아직 어른이 안 된 거예요?”
윤하의 질문이 엉뚱하다.
“아니.. 어른은 됐지만 무서울 수가 있는 거야,”
“아....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구나.. 알았어요, 내가 같이 있어줄게요,”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말에 아들과 나는 크게 웃었다.
윤지는 학교에 다닌 이후로 많이 성숙해졌다.
학교라는 곳이 유치원처럼 결석을 해도 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피곤한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제 눈치 챘으리라.
윤지가 엄마 아빠랑 같이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아들의 소원도 엄마 아버지랑 함께 사는 것이라니 부녀지간에 소원이 똑같다.
“화해 했다며... 그럼 같이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구.”
아이의 말이 맞다.
진정한 화해가 아님을 아이들이 알 리가 없다.
“좀더 기다리자꾸나.”
그리 말해 줄 수밖엔 없었다.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어린 나이부터 터득하게 된 것이 안타깝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들이 함께 살자고 하면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만큼 독립심이 강했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못 이긴 척 언제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다.
젊은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 것은 매사에 자신이 없어졌다는 증거다.
어느새 자식의 보호를 받을 나이가 된 것이다.
육십대 마지막 해가 이제 반밖에 남지 않았다.
의기양양 젊은 척 사는 것이 이제 자신이 없다.
여름의 문턱에 섰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갖은 새소리가 들린다.
뻐꾸기는 참 크게도 운다,
창을 열면 싱그러운 바람이 들어온다.
이런 좋은 환경에서 눈을 뜨게 됨을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어딜 가나 경로라며 할인을 해준다.
노인이라는 사실로 이런 대우를 받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 같다,
대우를 받는 만큼 베풀 줄도 알고 인색하지 않은 노인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