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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버리기돌입


BY 그대향기 2015-03-08

 



 

늘 자신없는 일이었다.

일단 내 손 안에 들어 온 물건이나 옷은 최소한 몇년은 지니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

선물이든 내 돈 주고 사는 물건이든 지독하게도 오래 간직하는 편이다.

가끔은 아는 사람들에게 얻어오는 물건이더라도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것 처럼 애지중지한다.

그러다보니 한정된 공간에 물건들이 이중삼중으로 포개지기도 한다.

하나 들어오면 하나를 내 버려야 맞은 이친데 그러질 못하는 성격이다.

 

어쩌다보니 지금 사는 집이 꽤 너른 편이다.

거실은 너르고 방도 여럿이다.

애들이 어렸을 때는 그 방에 따로따로 재우며 각자 방을 줬다.

이제 애들이 다  객지로 나가고 없다.

그러면 공간이  많이 확보 된 셈인데 그렇지를 못하다.

 

애들이 나가고 없는 방에 내 짐들이 남편짐들이 하나 둘씩 공간확보에 들어갔다.

운동기구며 오토바이용품 그리고 다기들이 늘어갔다.

딸아이들이 쓰던 화장품들도 아까워서 못 버리고  욕심껏 모아뒀다.

아이샤도우며 립그로스 스킨이며 핸드크림까지 만물상이 따로 없다.

반쯤 쓰다가는 색상이 안 맞네 피지가 많이 생기네 하면서 그만 쓴단다.

 

내 피부는 중성 지성 복합성 이런거 다 필요없다.

아무거나 발라도 문제가 안 생긴다.

내 나이대에 맞는 화장품도 바르지만 전천후 피부에 전 연령대 사용가능한 타고난 피부다.

덕분에 내 주머니에서 화장품대금으로 빠져 나가는 금액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잘 아시는 분이 샘플도 갖다 주시고 어지간한 기초화장품은 선물로 들어오기도 한다.

 

며칠 전 수납정리반 수업을 하루 받고 느낀 점이 많다.

정리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지혜롭게 잘 버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깝다고 끌어 안고 살고 나중에 쓸모가 있을 예정이니 못 버렸다.

세월이 가면 나이만 늘어나는게 아니라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들도 비례해서 늘어났다.

그 때 그 때 정리하고 버리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하루 수업 받고 그 다음날부터 독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일단 큰 비닐봉투를 서너개 준비했다.

안방에서 부터 오래 두고서라도 꼭 필요한 것과 당장 버릴 것 그리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 등을 구분해 나갔다.

막상 구분하자니 또 갈등이 생겼지만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고무줄 밴드부분이 늘어난 속옷이며 캡이 찌그러진 브래지어는 과감하게 버리는 걸로.

애들이 중고등학교 때 쓰던 몇장 안 남은 연습장은 이제 그만 버리는 걸로.

십년도 더 지난 월간지도 버리는 걸로.

1993년도에 출간된 요리책은 버리는 걸로...아니다, 요리책은 다시 놔 두는 걸로.

내 미니서재 책상 서랍에 모아뒀던 애들 지우개들은 어쩔까?

 

거실 장식장 서랍에도 뭐가 그리 많은지....

짝이 안 맞는 양말부터 전국주유소에서 받은 수 많은 휴지까지 쏟아져 나오는데 아휴휴....

다 버리자.

이번만큼은 깨끗하게 정리하고 홀가분하게 좀 살아보는거다.

한달이 걸리든 두달이 걸리든 차분하게 버리는거다.

 

수납반 강사님은 5년은 버리기 수업을 하며 살아보라던데

몇달 동안 차근차근 마음 급하게 먹지 말고 실천해 보는거다.

욕실에 굴러다니는 크고 작은 비누조각들을 다 쓸어모아 큰 바께스에 물을 담아 넣어뒀다.

수건이나 남편의 런닝셔츠를 삶을 때 그 물을 쓰면 아주 좋다.

뚜껑이 없거나 음식점에서 포장 해 온 플라스틱 반찬통도 버리자.

 

혹시나 싶어서 챙겨뒀던 일회용 포장제들을 모조리 꺼내 커다란 봉투에 담아 버렸다.

어이구야..

그것만 꺼내도 한자리가 훤하다.

이구석저구석에 쳐 박아 뒀던 수십장의 쇼핑백도 차곡차곡 접어서 큰창고도 직행.

코팅이 벗겨진 후라이펜도 분리수거통으로 직행하고 .

 

3~4일 정도를 그렇게 하고나니 욕실이며 파우더룸이 말끔해졌다.

모발관련 화장품들은 작은 소쿠리에 가지런히 담았다.

딸들이 사용하고 그냥  달아난 드라이기며 고대기는 수납장으로 넣었다.

남편의 면도크림이며 전기면도기도 서랍에 넣어 보관했다.

쓰고는 늘 거울 앞에 그냥 두는 소소한 물건들이 어지럼힘의 주범들이다.

 

그렇게 며칠을 버리고 치우고 나니 집이 더 넓어졌다.

이 상태가 얼마나 유지될지는 모르겠다.

일단 정리하고 지혜롭게 잘 버리는 자세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찌될지...

시간나는 짬짬이 정리를 한답시고 바쁘게 왔다갔다 했더니 남편의 시선이 불안하다.

안 보는 척 하면서 슬슬 내 눈치만 본다.

 

"당신 어디가?

 왜 갑자기 집은 정리하고 그래?

 그냥 살던대로 살자 .

 적응 안되게 왜 그래?

 어제는 곰국까지 끓이더니 설마 오래 있다 오려고 그래?"

남편이 집 안 치운다고 뭐라 안 할테니 살던대로 살잔다.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