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는 굉장히 부지런한 부류에 속한다.
학교 갈 학생도 없고, 직장도 나가지 않으시면서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서
부엌에서 달그덕거리고, 베란다에서 덜거덕거리더니,
금방 정원으로 나가서 타박타박 거려 달콤하게 늘어진 나의 아침잠을 해방 놓곤 한다.
반쯤 감긴 눈으로 밥상에 앉고, 멍한 뇌로 칼칼한 아침밥을 먹는데
나는 그게 싫어 될 수 있는 한 엄마네 집에서는 일박을 하지 않는다.
혼자 살 게 되었을 때, 외짝 신발을 신고 있는 것 같아 불편한 건 있었는데
신경 쓸 인간 한명 없다는 것과 마음껏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면이 은근히 좋았다.
까짓것 외짝 신발 휙 던져버리니 맨발이라 편했고
기회가 된다면야 다른 신발로 바꿔 신으면 되지 하면서 환상에 젖던 시절이
이제까지 이어지긴 한데 나름 게으름을 피워도 누가 뭐라는 인간이 없어 진짜 자유롭다.
늦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날이 휴일이라면 오늘 하루만큼은 빈둥거릴 수 있어
나만의 특권이면서 축복 비스 무리한 삶이된다.
겨울 해가 창문 안으로 깊이 들어와 집안의 먼지가 반짝이가 되어 눈부시게 떠돌아다니지만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기에 공허하면서도 편안하다.
우리 집 개도 나처럼 게으름뱅이로 살고 있다.
후천성으로 길들여진 버릇이 대단한 영향력을 줘서 나를 닮아 있다니.
개는 고양이 보다 부지런한데 얘는 이 모양으로 살고 있다.
뭐 나가서 돈을 벌 것도 아니니 다 괜찮다.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이불속에 기어 나와 기지개를 켜고 털을 흔들어서 먼지와 함께 섞는다.
그리고 내 눈을 바라보면서 혀를 날름거린다. 어서 밥을 달라, 이 말이겠지.
얼른 일어나지 않으면 야단을 친다.
“우쭈쭈 울 공주님~~ 알아쩌~어~”
일어나 밥을 주면 날 향해 팔짝 높이뛰기를 하며 고맙다는 표현을 한다.
베란다 창엔 햇볕이 베란다 창만큼 넓게 들어와서 식물들 몸에 영양제를 듬뿍 뿌려주고 있다.
식물은 태양열과 내가 주는 물로 부피가 커져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밥을 다 먹은 개는 베란다로 나가는 창을 발로 박박 긁는다. 나도 같이 베란다로 나간다.
개는 잠시 화분냄새를 맡더니
이내 망설임 없이 후식으로 허브 잎과 꽃을 딸기 먹듯 달콤하게 먹는다.
허브는 몸살을 앓아 잎과 꽃이 가늘어져 엉성하게 붙어있다. 다 이 개 때문이다.
허브를 따 먹어 그런가. 10년차 개는 건강한 편이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텔레비전 채널을 꾹꾹 누르다가 자연인이나 삼시세끼나 음악이나
뭐 그런 프로를 좀 보다가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책을 보거나 동영상을 보다가 낮잠을 좀 잔다.
개도 내 옆구리로 들어와 오늘은 엄마가 있어 너무 좋다 하면서 푸욱 한숨을 쉬고
늘어질 때로 늘어져 키가 족히 일 미터는 돼 보인다.
오후 세시쯤 청소를 한다. 빨래를 한다. 먼지를 닦는다.
개는 청소기를 피해 숨다가 청소기가 제자리로 돌아가면
소파에 앉아서 내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간식시간은 꼭 챙긴다. 음악을 틀어 놓고 믹스커피와 빵과 과일을 먹으며 몸을 흔들어댄다.
개를 이런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본다. 내 다리에 자기 머리를 얹고 쉬고 싶은데
내가 몸을 흔들어대니 쉴 수가 없어서 못마땅하게 소파 바닥으로 내려가
할머니처럼 앉아있다. 태어난 지 십년이 되었으니 이제 할머니가 다 되었다.
다리가 오자 형으로 휘었고, 침대에 오르려면 도움닫기를 여러 번 해야 침대에 오를 수 있고,
장난감 던지기 놀이도 몇 시간씩 하던 얘가 장난감을 가슴에 품기만 한다.
너나 나나 죽음을 향해 한발자국씩 오늘도 걷고 있긴 한데
너는 사람보다 수명이 짧으니 언제 저 세상으로 갈지...개야 인생이란 그런 거란다.
“할머니? 사는 동안 널 절대 버리지 않을게.” 개가 들으라고 큰소리로 약속을 한다.
날씨가 좋으면 개와 함께 산책을 간다. 저녁거리를 사러 길 건너 고기 집을 가면
고기 집 사장님이 순둥이 왔네, 하실 때도 있고, 뚱순이라고 할 때도 있다.
우리 개가 뚱뚱한가. 다시 한 번 개를 자세히 본다. 별로 뚱뚱하지 않은데....속으로만 말한다.
수세미 넝쿨이 늘어진 돈가스 식당 쪽으로 방향을 튼다.
여름엔 보라색 벌개미취가 만발하는 식당이다.
저걸 솎아가서 우리 아파트 화단에 심고 싶다는 마음으로 도둑질을 하고,
길을 건너 토끼가 살고 있는 유치원이 있는 마당으로 간다.
토끼는 반기는데 할머니 개는 귀찮아서 그런 건지 무서워서 그런 건지
꼴같잖은 동물에게 가기 싫다고 앞발에 힘을 준다.
부지런한 엄마랑 통화를 한다. 밥을 때 거르지 않고 먹었니? 뭐 먹었니? 교회를 다니면 뭐든 이루어진다는데 왜 교회를 안다니니? 윤이는 부대에서 별일 없다니? 내년엔 서른인데 결혼을 시켜라? 저녁은 먹었니? 교회를 다녀라? 얘들은?
다시 반복해서 묻고 걱정만 잔뜩 헤집으며 대화가 늘어진다.
개는 또 다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내 옆에 앉아 있다.
고기를 구워 개와 함께 마주앉아 늦은 저녁을 먹었다. 사람 혼자 밥을 먹어도 맛있다.
밥은 혼자 먹어도 맛있는데,
간식은 사람이랑 같이 먹어야 맛있다고 밤에 들어온 딸에게 말한다.
딸은 인생은 어차피 혼자인 겨, 하면서 다음 주에 같이 먹으면 되지 시간 비워둘게. 그런다.
누굴 기다리지 않는 하루가 갔다. 나는 누굴 기다리지도 않지만 기다려도 올 사람은 없다.
기껏해야 다시 한 번 그때를 그려보는 것이 고작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군대 간 아들과 퇴근해서 들어오는 딸을 기다리고, 봄을 기다린다.
어찌 보면 기다린다고 할 순 없다.
나는 뭐든 흘러가듯 내버려 두는 편이지 기다리는 건 아니다.
그리하여 기다림에 지치지 않는다. 기다림조차 나의 일상이니까.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니까.
오늘도 달콤한 빵과 쌉싸래한 간식 같은 휴일을 보냈다.
개와 함께라 좋았지만 사람과 함께라면 더 좋았겠다, 라는 아쉬움만 조금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