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도 어느새 중순에 접어들었다.
가을이 깊어가도록 글 한줄 쓰지 못하고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나의 일상을 글로 남기는 일에 어느 날부터인가 회의를 느꼈다.
공개되는 나의 생활이나 가족 이야기가 남들에게 무에 그리 중요하다고
나는 늘 주절주절 거리는가.
이런 생각들은 아마도 내가 늙어가는 증거일게다.
소재가 아닌 것에서 소재를 찾는 것이 작가이겠지만 그보다 앞선 것이 나이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이 때문에 만사가 귀찮아진게지..
아니다. 나이 탓을 하기 전에 내 능력 탓을 해야겠다.
이제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월화수는 복지관에 근무하고 목요일에는 당산동에 근무한다.
고모는 나를 늦도록 붙잡아 두고 싶어하신다.
늦게 가도 되지?
난감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 언젠가부터 당당해졌다.
당당하다는것.... 그보다 더 나를 지키는 것이 있을까.
나는 당당함을 즐긴다.
왜 없는가를 따지지 말고 없다는 사실만 받아들이면 된다,.
지나간 일을 곱씹기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제 용서 못할 일도 없다.
그 말은 나의 잘못도 용서를 받고 싶다는 말과 동일하다.
용서를 하기 전에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겠지.
나는 용감해지고 싶다.
그리고 나이답게 너그러워지고 싶다.
주말이면 아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 때문에 금요일부터 분주하다.
곰탕에 밥을 말아서 김치를 찢어서 얹어주면 곧잘 받아먹는 윤지의 모습에서 행복을 느끼는 나는 어쩔 수 없는 할머니다.
밤을 삶아 까서 한그릇 가득 담아놓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연시도 예쁜 놈으로 준비해놓는다.
밤 살이 올라 아이들이 토실토실해졌으면 좋겠다.
윤하는 밤을 한가득 입에 물고 잠이 들었다.
자다가도 오물 오물 밤을 씹는다.
목이 메이면 큰일인데...
바라보는 할머니는 걱정이 태산이다.
주말이면 엄마 밥을 먹게 해주어야한다는 욕심에서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든다.
아들은 더덕을 참 잘 먹는다.
납작하게 두드린 후에 양념해서 후라이판에 살짝 구워놓은 더덕을 집어가는 젓가락이 푸짐하다.
아파트라 더덕을 놀이터에 갖고 나가 두드렸다.
놀러 나온 아이들이 신기해서 모여들었다.
“엄마. 나 단양에 있어. 마늘 사갈까?”
단양을 거쳐서 영월에도 다녀왔다는 아들 손에는 마늘과 옥수수 밤 사과 곤드레 나물이 들려있었다.
시장 보는 것을 재미있어 하는 것은 꼭 지 아버지를 닮았다.
피는 못속이나보다.
이런 작은 행복이 참으로 소중하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알아가는데 왜 이리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아들 손에 며늘아이 먹을 곰탕도 조금 싸서 들려보냈다.
엄마는 차암... 못말리겠군.
아들은 마땅치 않아 한다.
아이들을 혼자 기르느라고 애 쓰는 며느리 생각을 하면 늘 속이 아프다.
내 마음이 이럴진데 친정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이젠 내 며느리가 아니지만 내 손녀의 엄마임엔 틀림이 없다.
아이들을 데리고 아들과 집 근처 고인돌 공원에 갔다,
아이들은 풀밭을 뛰어 다니며 솔방울을 줏느라고 분주하고 아들은 아이들을
지키고 있다.
나는 돗자리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이 참 곱다. 구름도 예쁘게 흘러간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