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입만 열면 남편 자랑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
이십여년 전에 내가 꿈도 못꾸던 해외 여행을 수시로 다녔고 스키다 뭐다 온갖 취미생활을 즐기던 친구였다. 어느날 남편의 사업이 망해서 살던 집 마져 경매로 넘어가고 지하 월세방에서 날마다 서로를 할퀴며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
늦은 가을 날 술이나 한잔 하자는 그녀의 제안에 함께 취기가 올랐다. 친정 엄마가 김장을 가져 가라고 여러번 전화를 했었단다 . 그녀의 친정 어머니는 여러 자식들에게 해마다 김장을 해주었다 . 식당을 운영하면서 텄 밭을 가꾸고 그 많은 일을 어찌 다 하시는지
늘 감탄 스러웠다 .
친정 어머니에게 남편과 이혼 하겠다고 눈물 콧물 흘려가며 넋두리를 하고 나서 가겠다고 일어서는데 잠자코 따라 나오던 어머니가 딸이 몰고온 차의 트렁크에 김장 김치를 싣고 있더란다. 어머니의 등에 대고 싣지마 나 이혼 할거야 라며 소리를 질렀더니 힐끗 돌아 보던 어머니가 그럼 이혼하고 나올때 까지 먹어 하더란다. 눈물을 훔쳐가며 이야기를 하는 그녀가 그 순간 너무 부러워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 십오년도 넘은 그때의 기억이 아직 생생 하네요 .
우리 어머니는 대화의 기술이 너무나 부족한 분입니다 .
얼마전 만나 뵌지는 15년 방문한지는 35년 만인 고모와의 화기애애한 자리에서 어머니의 대화의 기술 때문에 내 마음속에 화가 오르락 내리락 했습니다 .
고모님의 집 입구에 있는 동네 정자에 마을 할머니들이 모여 있었는데 오래 전에 뵈서 얼굴이 익은 분도 있었고 처음보는 분도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마도 세분을 다 아시는 분 이었나 봅니다. 오랜만에 왔다는 이야기가 오가고 어떻게 살았냐고 근황을 묻다가 처음 어머니가 갓 시집 왔을때의 이야기가 나오자 당신이 없는집에 와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돌아가신 고모 할머니가 어떻게 시집살이를 시켰었는지 백번도 더 들었던 반백년도 더지난 신세한탄이 길게 이어 졌습니다 .
벌초가 끝나고 저녁을 먹으면서 35년만에 만난 고종 사촌과 분위기 화기애애한 술자리가 이어졌습니다. 대화중에 고모님의 기억력이 좋아서 동네 사람들의 생일이며 제사까지 꿰뚫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어머니가 에이그 공부는 맨날 빵점 맞는게 총구는 좋아서 라며 어깃장을 놓습니다. 웃고 넘어 가려는 찰라 맨날 학교 가기 싫어서 언니 나 학교 안가면 안돼? 가기싫어 하면서 내 치마 꼬리를 잡고 늘어지더니 그러니까 빵점만 맞았지 한번 더 가격 합니다. 굳이 고모의 자녀들도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말을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대화가 툭 끊겼는데 고모가 얼른 나서며 "그랴 언니 나 빵점 맞았써유 왜 그랬는지 알어유 아부지가 핵교를 11살에 보낸규 그라니 주막거리 애덜이 즈이 누나 하고 동갑인지 뻔히 아니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야 너 왜 ? 지금사 왔냐 하고 괴롭히고 지금말로 하면 왕따였슈우 그래서 핵교가 가기싫고 공부가 하기 싫었든 거유 " 듣고보니 이해가 간다 .
사람좋고 화를 잘 안내는 고모가 그렇게 말을 하면 그랬었구나 . 하며 넘어가면 될 텐데 그래도 맨날 꼴찌였어 한다 . 다행히 고모가 성격이 좋다 .오랜만의 만남이고 좋은 만남에서 그렇게 대화의 분위기를만들어 가는 어머니가 정말 싫었다. 좋은 대화로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서 모두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면 얼마나 좋을까? 말 한마디로 상대를 기쁘게도 하고 두고두고 마음에 앙금으로 남기게도 한다. 어머니는 늙었으니 그렇다 치고 우리 남편도 그에 못지않다 .
대화중 불쑥 잘라 버린다거나 짧게 요점만 얘기해 라고 하면 어이가 없다 . 네 , 아니오 라는 단답형 대화는 대화가 아니다 .서로의 의견이 오가고 상대의 이야기를 수용도 하고 하는것이 대화이다. 일방적인 의견만 이야기 하거나 보고형식으로 짧게 끝내 버린다면 대화는 단절될 것이다. 여러명이 대화중에 불쑥 말허리를 잘라 버려서 여러번 당황하기도 했었다 . 몇번의 지적과 말싸움 끝에 그나마 개선 돼긴 했지만 아직도 그와의대화의 길은 멀기만 하다 .
얼마전에도 친구얘기를 하다가 그친구의 엄마의 파킨슨 병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는데 갑자기 그집은 왜 그래 ? 한다 . 뭔 말이냐는 내말에 언니도 뇌 수술 했다하지 않았어 ? 하길레 노려 보다가 어떻게 말을그렇게 해 당신도 뇌 수술 했잖아 ? 남들이 우리 딸에게 그아버지 뇌수슬 했다며 하면 당신은 어떨거 같아 말을 어쩜그렇게 함부로 하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게 바로 당신처럼 함부로 말하는거야 날선 나의 일갈에 멈칫 하더니 며칠째 내 눈치를 본다 . 아 ,,, 세치 혀의 기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