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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용돈 -1편


BY 들꽃나라 2014-07-10

친정엄마의 기일이 돌아온다. 

작년 이맘때에도 이렇게나 더웠을까.

아마도 내게는 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힘들고 고된 시간들 이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병마와 싸우며 고통스러워 하시는 엄마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내 마음은 이미 겨울보다 더 시린 얼음장 같았을 테니 말이다.

 

친정엄마에게 나는 무남동녀 외동딸이요, 마흔살을 훌쩍 넘은 늙어진 나이임에도

물가에 내놓은 어린 아이처럼 늘상 걱정만 하시던 그런 딸이었다.

늦은 결혼끝에 겨우 얻은 귀한 딸이라고 하지만,

어린시절 아버지와 이혼을 하고 억척스럽고 고된 날들을 오롯이 나 하나만을 위하여

모진 세월 이겨내고 그렇게 세상에 둘 도 없는 불쌍한 인생을 살아오신 분이

바로 나의 친정 엄마이기도 하다.

그런 엄마의 지극정성으로 잘 성장하여 나만 위해주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토끼같은 자식도 둘이나 낳아 열심히 살아왔다.

 

내가 결혼을 하고 넉넉치 않은 살림에 아둥바둥 가족을 위하여 살아오는 동안

홀로 계신 엄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전화 한통 제대로 하지 못한 그 수많은

죄책감은 돌아가신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가슴에 한이 되는 아픔으로 남아있다.

 

2012년 1월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겨울날,

직장에서 승진 축하로 회식중이었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다.

친정엄마가 김치를 갖고 오셨다고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눈이 많이 내려서

길이 미끄러우니 우리집에서 주무시고 가라고 했지만 불편하다고 부득이 당신 집으로

간다고 우기신다. 도대체 무엇이 불편하다는건지..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당신 딸인데..이런 날씨에 굳이 집으로 가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화가 난 나머지

모질게 상처되는 말들을 마구 쏟아부었다. 급기야는 술기운이 온 몸을 휘어감은채로

엄마가 대체 나에게 해준게 뭐가 있냐고..나 데리고 다니면서 고생만 시켰지

엄마가 대체 내게 무엇을 해주었냐고..뚫린 입이라고 거침없이 내뱉았다.

 

\"미안하다 아가, 미안하다 아가야.\"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젠 그말도 지겨워. 제발 그만해. 그만해....

그 캄캄한 밤에 눈이 소복히 쌓인 미끄러운 거리를 시각장애인인 엄마가

언제부턴가 다리가 아프다고 절뚝거리는 종종걸음으로 버스를 타고 당신 집으로 가던

그 모습을 상상하니 지금도 가슴이 메어지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엄마 애기같이 왜 그렇게 흘리고 드셔? 팔은 아직도 잘 안올라가?

다리는 왜 맨날 아파? 적당히 운동좀 하고 드시고 싶은거 있으면 말씀좀 하셔.\"

엄마를 그렇게 늦은 시간에 홀로 보낸것이 내심 마음에 걸려서 이튿날

아이 둘을 데리고 삼겹살을 먹는데 엄마가 음식과 물을 자꾸 바닥에 흘리시는게 아닌가.

 

몇달 전 10년간 다니던 김치공장에서 정리 해고를 당하고 아파트 미화원으로 일을

다니셨지만 점점 몸이 불편해지면서 일에 지장을 주자 결국엔 퇴사를 하고

한달째 집에서 쉬고 계시던차였다. 팔이 올라가지 않고 통증이 심해서 병원에 갔더니

오십견이니 열심히 운동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과 언젠가부터 다리가 져리고

아프다며 걷는 자세가 부자연스러운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그저

일하던 사람이 집에서 쉬니까 여기저기 아픈 모양이라고 몇달 더 푹 쉬면 다시

좋아지겠지...라고 생각만 했다. 너무 안일한 생각으로 그렇게 엄마를 방치했던 것이다.

 

\"엄마 내가 직장 생활을 하니까 엄마를 자주 못 찾아뵙잖아. 며칠이라도 우리집에서

좀 쉬자. 혼자 있으면 외로워서 몸도 더 아픈거래. 엄마 팔 다리 아프니까 우리집에서

쉬는 동안 물리치료라도 좀 받자. 알았지?\"

평소에 그렇게도 우리집에서 자는것을 불편해 하시던 분이 그날따라 아무말 없이

흔쾌히 승낙을 하셨다.

퇴근후 내가 손수 끓여드린 된장찌개와 상추쌈을 그렇게도 맛있게 드시던 모습에

흐믓해하면서..내일은 꼭 병원에 모시고 가서 물리치료를 받도록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2012년 2월 10일...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엄마를 모시고 동네 병원으로 왔다.

\"선생님 엄마가 얼마전부터 팔 다리가 아프다고 하시는데요 오십견이라고 하는데

운동도 안하시고 해서 물리치료라도 받게 하고 싶어서 왔어요.\"

엄마를 대변하는 나의 말에 의사 선생님께서는 엄마의 팔과 손을 잡아보시더니

\"단순히 오십견때문에 아픈게 아닌거 같으니 머리 MRI를 좀 찍어봅시다.\"

\"네? 팔 다리가 아픈데 왜 머리 사진을 찍어요?\"

나의 어리둥절한 무지함에 의사 선생님께서는

\"손가락에 쥐는 힘이 부족한것을 보니 머리에서 전달하는 신경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고..그렇게 엄마는 MRI를 찍으셨다.

 

MRI에서 뇌종양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덩어리가 발견되었고 의사선생님의 애매묘한 표정이

조금은 찜찜했지만 어쨌든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소견서를 써 주셨으니

일단 서울에 모 병원으로 가 정밀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단정지을 수 없으니 2-3주간 입원을 하여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딸이 나 낳게 해주려고 여기 데려왔어요. 선생님 우리딸이 있어서 나는

다른집 아들들 하나도 부럽지 않아요.\"

당신의 몸에 어떤 증상이 있을지 아무런 예상도 못한채로..

엄마는 검사를 받는 내내 그렇게 딸자랑을 늘어놓으셨다.

 

모든 검사가 끝나고 2주일후 병원에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를 떨어뜨리고 머리속이 온통 하얘지면서 땅바닥에 맥없이 주져앉아버린 나에게는

눈동자마저 흔들리지 않고 피가 거꾸로 솟구쳐 오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주먹으로

꼬옥 쥔채 그렇게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폐암 말기입니다. 이미 머리와 임파선등 여기저기 많이 전이가 되어서

수술을 할 수 조차 없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준비하셔야 할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