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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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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버지.


BY lala47 2013-06-24

유월에 접어들면서 아버지의 생신준비로 의논을 하느라고 언니와 통화가 많았다.

한정식이 좋을까 일식이 좋을까 중식은 어때?

아흔다섯번째 생신이었다.

 

열흘전 동창회 모임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아버지 생신은 못할것 같다는 갑작스런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좀 이상하셔. 잘 못걸으시네.\"

동창회가 끝나고 지하철 삼호선을 타고 백석역에 내렸다.

아버지는 병환이 나신 것이 아니라 기력이 쇠진하신 것이다.

내 어께를 짚고 화장실을 겨우 다니실만했는데 일주일만에 그나마도 하실 수없이 몸져 누우셨다.

일어나 앉으실 수도 없고 음식을 넘길 수도 없어서 누운채로 미음을 하루 한두번 떠넣어 드릴 수밖에

없이 되셨다.

꺼져가는 촛불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무언가 말씀을 하신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혀가 말리는것인지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알아듣지를 못하겠다.

통역 좀 해라.

언니와 나는 그런 말을 하며 마주보면서 괜한 헛웃음을 웃곤 한다.

\"우리가 그간 아버지 덕을 많이 보며 살았으니까 우리가 간병을 하자.

요양원에 보내는 일은 엄마때 한번 해봤으니 이젠 안하고 싶다.\"

언니는 그렇게 말하지만 칠십의 나이에 허리도 늘 아픈데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먹는 것이 없어도 오줌을 계속 싼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지만 예전에 시할머니를 간병한 경험으로는

몸에 있는 물을 다 뺀다는 의미로 그것은 가능한 일이었다.

기저귀를 갈아채우는 일을 두 딸이 하고 있을때 아버지는 아프다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신다.

모든 뼈와 살이 손을 댈수 없을 정도로 아픈 것도 시할머니 간병 당시에 알았던 일이다.

그때 할머니의 신음소리를 듣기싫다고 방문을 열지 못하게 하셨던 시아버지도 함께 기억속에

있다. 스물아홉살의 나이에 별 경험을 다 했다.

보름쯤 그렇게 아파하시다가 숨을 거두신 것으로 기억한다.

 

월화수는 복지관 근무를 하고 목금토일은 일산에서 지내기로 결정했다. 

아버지가 심해지시면 복지관 근무를 그만 두어야할지도 모르겠다.

운전을 못하는 언니대신에 기사노릇도 하고 모든 일을 의논한다.

밤에도 몇번씩 소리 지르시는 아버지때문에 언니는 밤잠을 설친다.

아파.. 아파..

그것은 비명에 가깝다.

이러다가 언니가 앓아누울까 걱정스럽다.

\"불쌍해서 요양원엔 못보내.\"

언니의 말에 내가 언제고 반대를 할지도 모르겠다.

 

노환이라는 말..

자연사라는 말...

쇠진해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죽음에 이르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님을 실감한다.

이제 고통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편안하게 엄마를 만나시는 길을 떠나시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이렇게 이별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