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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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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병 (病)


BY 그대향기 2013-04-15

 

 

 

 

트럭을 몰고  밭에 가서 진달래를 뽑아왔다.

동네 할머니네 진달랜데 모양이  잘 잡히지 않았다며 상품이 못된다고...

키가 얼추 나만큼이나 커 버렸고 가지는 사방으로 자유형이었다.

아담하고 가지가 쭉 곧게 뻗어야 상품성이 있는건데 이건 자유형도 너무 자유형이다.

올해는 자리를 옮기니 살리는데 집중하기로 하고 짐칸에 하나 그득~싣고왔다.

해가 지고 다 저녁에  진달래 한  트럭을 싣고 와서 어쩌려고?

삽을 들고 으샤으샤 빈터에 구덩이를 파고 심기 시작했다.

 

나는 삽질도 아주 잘하고 톱질은 더 잘한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닌데 삽질이나 톱질을 기가 막히게 잘 한다.

아무래도 남자가 되려다가 여자가 된 모양이다.

힘도 쌔고 일도 잘하지 키도 크지~

가운데 동네만 바뀌면 남자로 살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여잔데 말이야..ㅋ.ㅋㅋ

 

진달래를 다 심어 두고   호스로 물을 줬다.

발로 꼭꼭 밟아주면서 마당 가득 내가 심어 둔 야생화가 돋아 나는 것을 보니 행복했다.

구석구석 빈자리마다  심어 둔 야생화들이 연한 새순을  틔우고 있는 중이다.

데이지...꽃범의 꼬리...초롱꽃...달맞이꽃...패랭이...금계국...꽃잔디...펜지...백합...나리...매발톱 ..

봄만 되면 너른 꽃밭에 눈을 박고 어린 싹들을 보는 재미도 좋다.

죽은 듯이 엎디려 있다가 봄기운이 대지를 노크하면 베시시 웃으며 반갑게 올라 온다.

봄만되면 화분에 반하고 화초에 정신을 못 차리게 되니 이것도 병일건가?

궂이 병명을 찾자면 아름다운 병?

 

작은 다육이들을 오종종 창가에 놓아뒀더니 겨우내 숨 죽이고 있다가 앙증스런 작은 꽃대를 올려 준다.

마른 나무 둥치처럼 깡 말라 있던 돌단풍도 새하얀 별꽃무더기를 터뜨렸다.

무늬둥굴레에도 작은 종 모양을 한 하얀꽃이 조롱조롱 달렸다.

장수매도 꽃대를 물고 서 있다.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 주면서 행복을 느끼는 내 모습에 남편도 따라 행복한 얼굴이다.

초록이들을 옥상  가득 모아두고 날마다 밥 안 먹어도 배 부른 느낌이 병은 병이다.ㅎㅎㅎ

화장품이나 옷 사는  일에는 지극히 구두쇠로 살면서 초록이들 앞에서는 헤픈 여자가 되고만다.

 

은퇴하고 나면 욕심껏 땅냄새를 맡게 해 주면서 키워야지~

화분이 아닌 땅에서 자유롭게 색을 뽑내라 해야지~

날만 새면 꽃밭에 나가 누가누가 더 잘 크나 지켜 봐야지~

삽살이 한마리도 풀어 놓고 키우며 동무하고 다녀야지~

앞개울에 송사리 떼 올라갔다 내려가면 금붕어 먹이도 좀 나눠 줘야지~

외손녀가 오면 작은 손 꼬옥 잡고 파란 잔디마당에서 나무그네도 태워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