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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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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BY lala47 2012-11-27

우리집에 다녀갔던 윤지가 내게 자주 말했다.

\"할머니집은 너무 쪼꼬매. 거실이 없잖아.  부엌이랑 방 밖에 없어.\"

듣고 있던 며늘아이가 윤지에게 말했다.

\"너 자꾸 그런 소리 하면 할머니한테 실례야. 네가 이담에 커서 돈 많이 벌어서

할머니 집을 하나 사드리렴.\"

엄마의 말에 깜작 놀란 윤지가 얼굴이 발그레지면서 펄쩍 뛰며 반대 의사를 말한다.

\"아휴....엄마는 참...내가 남자도 아니고 여자인데 무슨 돈을 벌어.\"
\"여자도 돈을 벌수 있는거야.\"
\"집이 얼만데 내가 사드려. 난 아빠가 아니란 말이야.\"
\"못해?\"
\"못해. 엄마두 참..\"

며늘아이와 나는 마주 보며 웃었다.

요즘 아이들은 못지킬 약속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가보다.

이담에 커서 돈 많이 벌어서 엄마한테 다 주겠다던 아들의 어린시절 약속이 생각이 나서 혼자 웃었다.

 

윤지가 본 집 중에서 가장 큰집이 할아버지 집이고 가장 작은 집이 할머니집이겠지만 햇볕 잘 들고

가스비 적게 나오는 이 집에서 겨울을 지낼 준비를 하고 있다.

처음 오산으로 이사를 왔을때 새로 생긴 나만의 공간에 얼마나 감사를 했던가.

그 남자가 주던 지옥보다는 어느 곳이라도 감수하겠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을 잊고 있는것은 아닌지...

처음처럼 늘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

김장 속을 많이 만들었다는  리아의 전화에 절임배추를 사가지고 가서 함께 김장을 하고

성당 사람들이 모여서 보쌈으로 저녁을 먹고 김치를 잔뜩 싣고 돌아왔다.

김장 걱정을 마친 셈이다. 고맙다.

언니에게 자랑을 하니 네게 오산이 좋은 곳인가보다라고 말했다.

 

며칠 전 윤지의 생일이었다.

기침때문에 외출을 삼가는 중인지라 전화로 생일축하를 대신했다.

\"윤지야. 생일 잘 지내고 있니?\"

\"할머니! 어린이집에서도 케잌을 자르고 집에서도 잘랐어요. 공주옷을 입고 어린이집에 갔어요.\"
\"기분이 좋았겠네, 할머니가 사줄 선물도 생각해놔. 담에 가면 사줄게.\"
\"벌써 생각해놨어요.\"
\"뭔데?\"
\"콩콩이 주방놀이와 달랑이 병원놀이 사줘.\"
\"알았어.\"
\"까먹지마.\"
\"그래. 안까먹을게.\"
\"꼭 사줘야해.\"
\"알았어.\"

\"약속했어.\"
\"그래. 약속했어.\"

\"할머니 생일은 언제예요?\"
\"열다섯밤 자면 할머니 생일이야.\"
\"휴우..그렇게나 많이 자?\"
내가 오래 산다면 노후에 윤지가 친구가 될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검사결과를 알려주는 전화가 암센타 의사선생님으로부터 왔다.

\"수술전에 의심되었던 폐가 역시 의심이 가네요. 사진상으로 염증이 심해요.

기침의 원인이 폐에 있는것 같으니까 CT예약 해드리겠습니다.\"

기침을 오래 했기때문에 폐에 염증이 생긴것이 아니라 폐에 염증이 있기때문에

기침이 그치지 않는다는 견해가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요즘은 약 덕분에 기침이 많이 나아서 잠을 충분히 잘수 있으니 다행이다.

 

십이월삼일 CT촬영 예약이 되었다고 간호사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병이란 한가지가 시작되면 연쇄반응으로 자꾸 다른 병이 생기는 모양이다.

어느 선까지 치료를 하고 어느 선부터 포기를 해야하는 것인지는 차후에 결정을 해야겠지.

종점이 보이는것 같기도 하고 안보이는것 같기도 하니까.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사우나에 다녀온후에 밑반찬을 만들었다.

멸치도 볶고 뱅어포도 굽고 우엉도 졸이고 무우나물도 만들었다.

아무 생각없는 것처럼 열심히 일상을 만들어가며 그렇게 살기로 한다.

대통령선거때문에 매일 뉴스는 후보자들의 행보를 알려주고 검사의 비리에대해서

TV는 목청을 높힌다.

작은 집에서 작은 TV가 알려주는 세상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는 오늘 하루도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