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여름을 보내고 가을 문턱에 섰다.
열번의 방사선 치료를 끝내고 나니 남은 여섯번이 아마득하게 느껴진다.
방사선 치료때문에 체력이 떨어져 지치곤 하지만 나보다 심한 환자들을 만나면서 엄살은
그만 하기로 한다.
유방암 초기..그건 명함도 못내민다.
식이요법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운동은 어느 정도 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한다.
운동도 하지 않고 식이요법도 하지 않는 나로서는 할말이 없어 듣기만 했다.
그놈의 방사선 때문에 늘 배가 고픈것이 문젠데 무슨 식이요법...
옥수수 장사라도 없는지 길에서 두리번 하는 버릇이 생겼다.
\"방사선 치료를 하는 동안은 체력소모가 크기때문에 잘 먹어야 한대요.\"
그래서 맨날 배가 고팠군.
\"재래시장에 가면 개똥쑥이라고 있는데 그것이 암에 특효래요.\"
\"녹차를 많이 마시래요. 커피는 끊어야 한대요.\"
\"난 아이들이 식이요법 하는 책을 사줬어요.\"
모두 저마다의 정보를 알려주며 은근히 자랑질도 한다.
좋다는것도 많고 나쁘다는것도 많다.
그런 말들에 우왕좌왕하고 싶지가 않다.
나는 의사에게 하루 커피 한 두잔은 허락을 받은 몸이다.
기름진것만 빼고는 무엇이든 먹어도 된다고 의사가 말했다.
나는 그말만 굳게 믿는다.
살아남기위해서 모두 애쓰고 있다.
그 대열에 앉아 있는 나를 본다.
너는 무엇을 위해서.. 자신에게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 질문 뒤에는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라는 말이 숨어있다.
영화란 애초에 없었지.
그건 신기루였다.
주말을 맞아 오산에 돌아왔다.
집은 같은 폼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침대에 누웠다.
누추한 집이지만 역시 내집이 편하다.
된장찌게가 맛있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마트에 들려 포도를 샀다.
맛있다. 식사 대용으로 충분하겠다.
수박철에는 수박이 최고이고 포도 철에는 포도가 최고이니 과일없는 세상은
못살것 같다.
복숭아는 비싸서 그림의 떡이다.
얼른 치료가 끝나서 집으로 돌아와야겠다.
원고 청탁 두개중에 하나는 못보내고 말았고 하나는 써보내야할텐데 막연하다.
머리속이 깡통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방사선 치료에 후유증일까 생각하다가 혼자 웃는다.
핑게가 생긴셈이다.
어쨌든 살아야겠다.
살아서 무엇을 할지는 살아남아서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은 하던 일에 충실해보기로 한다.
또 하나의 산을 넘었으니 부지런히 걷는 일이 남았다.
가봐야겠다.
혼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