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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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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야기


BY 새봄 2012-02-29

겨울의 끄트머리 햇살이 참 좋던 월요일

상록이는 누나가 쓰던 30인치 빨간 캐리어에

8절지 스케치북만한 무거운 노트북을(이것도 누나 거) 실고 새로운 이야기로 떠났다.

교복을 입고 늦은 밤까지 자율학습을 하던 이야기는 끝을 맺고

새로운 이야기를 쓰려고 말이다.

 

누나와 일곱 살 차이가 나서 어릴 적부터 누나 하는 것은 뭐든 따라하고

누나가 하는 것은 뭐든 옳다고 생각하는 상록이는 누나를 무척 좋아한다.

둘이 싸우지도 않고, 싸움이 되지도 않지만 말이다.

누나가 사다주는 양말을 신고

누나가 사준 가방을 매고 고등학교를 다녔었다.

새로운 출발지로 가기 위해 준비를 하면서 딸아이가 챙겨주어서

난 아주 편안하게 상록이를 대학기숙사로 보낼 수가 있었다.

 

상록인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잘하기는커녕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 시험 때만 조금 할 뿐 평상시에 책한 권 읽지 않는 학생이었다.

뭐하고 싶니? 꿈이 뭐야? 어떤 일을 하고 싶니? 하고 물어보아도

한참 뜸을 들이다가는 모르겠는데요.” 속 터지게 이렇게 대답을 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3학년이 되더니 교과서를 펴들고 문제지를 사고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더니 학교에서 자율학습시간에

상록이만 제일 열심히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온다고 했다.

담임선생님이 그 모습을 지켜보시며

오늘도 상록이네.” “역시 상록이구나.” “대학가서도 이렇게 하면 뭐든 된다.”하셨단다.

졸업식 날 상록이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졸업장과 함께 뭔가를 보여주었다.

자립상?

이런 상 누구나 주는 거 아니냐? 했더니 아니에요 나만 받았어요.” 한다.

아마도 자율학습 열심히 했다고 주셨나보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몰랐던 상록이는 화학공부가 재미있다고 하더니

화학공학과를 들어가겠다는 꿈이 생겼다.

고삼 때는 성적이 오르고 화학은 일등급이었지만

그 전까지 성적이 좋지를 않아서 서울에 있는 대학은 원서도 내지 못했다.

다행이 강원도에 있는 국립대가 되어 학비도 사립대에 비해 반밖에 되지 않고

정시로 합격이 되어서 2인실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상록인 대학을 들어가기 전에 많은 일을 하고 떠났다.

한 달반을 밤낮으로 일을 해서 학비를 벌었고,

상록이 아빠가 큰 수술을 해서 이주일 동안 병간호를 했다.

아빠와 떨어져 살았고 가장노릇도 제대로 못한 아버지였지만 상록인 매일 병원에 갔다.

병원비와 생활비 걱정에 우린 한동안 우울했지만

걱정한다고 되니? 우리 힘내자며 서로를 위로했다.

아빠를 퇴원 시킨 후 상록이 물건을 챙기면서 대청소를 같이했고

대학으로 떠나기 전날인 일요일엔 분리수거를 했다

남편 없는 살림살이를 상록이가 대신 다 해주었는데....

 

변기 뚫기, 일요일마다 분리수거, 같이 장보기 빨래 개주기. 자상한 아들이었는데...

엄마랑 누나 신경질 받아 주기, 꽃순이랑 놀아주기 다정한 아들이었는데...

청소기 밀어주기, 설거지 깨끗이 하기, 겉옷에서 음식 냄새나면 햇볕에 널기. 참 깔끔한 아들이었는데...

알아서 밥 차려 먹기, 알아서 옷 챙겨 입기, 아빠 없는 외로움 달래기,

웬만한 아픔은 잘 참기, 혼자서 병원가기, 바지 두 개 신발 하나.

그래도 불평 안하던 착한 아들이었는데...

 

대학기숙사로 가면서 우린 차가 없어서 태워다 주질 못했다.

그래 어차피 인생은 혼자다.

딸아이가 상록이에게 그런다.

우리 집은 자신이 쓸 돈은 자신이 벌어야 해. 이제부터 네 용돈은 네가 벌어 쓰도록.”

상록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괜히 안쓰러워

학비는 누나랑 엄마가 해줄 때까지 해 줄 테니까 용돈은 네가 벌어야 한다. “

 

상록이가 떠나기 며칠전, 딸아이가 아주 획기적인 계획을 세웠다.

여행경비 마련 계획.

매 달 일일에 삼만 원씩 회비를 모아서 가을이나 내년 봄에 여행을 가기로 했다.

상록인 학생이니까 50%할인 만 오천 원으로 결정.

3월 달 치를(칠만 오천 원) 미리 받아 길쭉한 플라스틱 통에 넣어 싱크대에 보관중이다.

 

항상 집에 붙어 있던 상록이가 없으니 좁다란 집이 30평은 돼 보인다.

방이 두 개라서 상록인 거실을 자기 방으로 꾸며 살았었다.

완력기랑 아령을 갖다 놓고 운동을 했고,

누나가 사준 기타를 소파 옆에 놓고 딩가딩가 기타를 쳤다.

베란다에 옷을 갖다 놓고, 베란다로 나가 옷을 갈아입으며

바지가 참 시원하다며 농담을 했다.

엄마를 웃기고 누나와 장난치던 상록이가 새로운 이야기를 위해 떠났다.

12, 버스는 잘 탔을까? 누나한테 잘 탔다고 문자가 들어왔다.

오후 5, 기숙사에 도착했을까? 도착해서 짐정리를 했단다.

9시엔 마트란다. 세재랑 빗자루를 샀고 일산보다 강원도는 더 춥다고 한다.

 

12년 전에 혼자되어 아이 둘을 키웠다.

상록인 앞으로 군대생활까지 합하면 6년 동안 타지 생활을 하게 된다.

아들이 떠난 어제도 오늘도 혼자 집안에만 있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가 되는 연습이 필요하고,

혼자 있기예습 복습을 충분히 한 난 한가한 여백을 즐겼다.

딸아이는 이년동안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 직장을 알아보고 있고,

얘들 아빠는 생과 사를 넘기고 새 삶을 살고 있고,

나는 새로운 직장을 얻기 위해 신청을 해 놓고 있다.

새로운 이야기를 쓰려하는 우리에게 험난할 길보다는 고운길이 더 많길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