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야금수업 끝나고 회식을 했다.
평생학습을 주관하는 곳이 바뀐 후 입이 자주 호사를 한다.
어떤 곳을 운영하는 관장의 능력 여하에 따라 돈 씀씀이가 달라지는 이유를
어떤이는 능력이라고 칭한던디 능력있는 관장...
제대로 잘 가르치고 있는가
배우는 사람들에 대한 성과가 어느 정도인가를 알려 하지 않는 걸 봐
돈 가져오는 것만 능력자일까 아리송하다.
큰 댐이 있는 이곳에서 잡아올린 민물 생선을 고아 만든
어죽을 먹고 집에 돌아오니 가야금도 판소리도 놓아버리고
이불속으로만 기어들어가게 만드는 추위란 넘의 힘.
티비 이곳저곳을 돌리다 모 사이트의 영화방을 기웃거려 본다.
그래서 고르게 된 카운트다운...
영화는 시작 초반인데 간암말기 선고를 받은 남자가
치료 불능이라는 의사들의 말을 오진이라며 거부하다가 여러 곳을 전전하며
진찰을 받아도 똑같은 대답이니 행여 하는 마음에 웃음 치료사를 찾아간 모양인데
오랜시간 채권추심하는 일을 하면서 웃음과 담을 쌓아버린 탓에 웃을 줄을 모른다.
아니 웃는 것을 잊었다는 표현이 맞을까.
올 봄
치매노인이거나 누군가의 힘을 빌어야만 생활이 가능한
중증 어르신들의 시설로 봉사를 간 적이 있었었다.
그 날 느낀 게 희노애락의 감정들 창을 닫아버린 사람들과 오랜시간
함께 생활하면 그들도 그렇게 닮아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두 해 전 요양사 자격증을 따면서 그 시설에서 실습을 한 적이 있는데
그날 만났던 지금의 그 요양사들의 표정은 지금보다 훨씬 생기있고 밝았었다.
요양시설에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 중엔
돈의 필요에 의함만이 목적인 사람도 있겠지만
일부는 본인들의 힘이 더하여져 어르신들의 생활이 편해지실수 있다면의
봉사심이 그 일을 하게 만든 사람들도 있을 터인데
감정을 실어 행동하는 것을 허락하도록 만들지 않는 시설의 분위기가
그 속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들을 굳어가게 만든 것이리라
공연 끝내고 돌아오며 생각했던 기억이 나 영화를 잠시 멈추고
수다방으로 고우~~~~~~해서 토독토독 자판을 두드려본다.
글감이 떠오를 때 잡아두지 않으면 지금의 느낌들을 다시 끄집어내기 힘들어지는,
감성들을 저장하는 무뎌가는 기억력의 한계를 극복하는 행위랄까.
치매 어르신이나 몸이 불편한 어른들이 행여 다칠세라
휠체어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채워놓아 걸어 들어오신 어른들이
오래지않아 다리 힘을 못 쓰게 되어가는 일부 시설들...
넘어져 아주 작은 멍이 들어도 면회온 가족들이 문제를 삼아
시설장에게 시말서를 쓰는 등 불이익을 당하니 그걸 미연에 방지하고자
행동을 제약할 수 밖에 없다는 말들이고 보면
병아리가 먼저일까 알이 먼저일까...헷갈리는, 살아간다는 일의 어려움.
실습을 끝내고 난 후
그날의 느낌들을 기억할 때마다
내 의지대로 행동이 가능할 때 죽음을 맞게 하소서 간절히 기도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