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정엄마가 우리 차 트렁크에 올망졸망 싸 주셨던 작은 보따리를 풀다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서 울컥 목에 뭔가가 콱~~막히는 것 같았다.
색색의 나일론줄이며 일정하지 않은 물건들의 조합.
혹시라도 흘러 내릴 까 봐 두번세번 겹겹이 싼 비닐 봉지.
찰옥수수 말린 것 50여 자루
검은 콩 두유 스무봉지
잔파 대여섯뿌리
나물거리 한줌......
몇달 전 만나뵈었던 엄마보다 더 힘들어 보였고
걸음도 말씀도 다 어둔하셨다.
대문 밖 출입은 거의 못 하셨고
집 안 에서만 맴을 돌 듯 그렇게 생활하신다던 엄마.
수천평 노른자위 금싸라기 땅도 토지사기꾼한테 다 날리고 바늘 하나 꽂을 땅조각도 없는 엄만데.....
그런 엄마가 빈터에 손수 농사 지은거라시며 애기 손가락만한 옥수수서부터
제법 어른 팔뚝만한 옥수수까지 올망졸망....
익은 족족 말리신 모양으로 크고 작은 옥수수가 나일론 줄에 대롱대롱 말라 있었다.
알이 제법 토실토실 익은 옥수수에 설 익은 옥수수
큰오빠가 엄마 드시라고 사 주신 것 같은 두유박스를 급하게 우르르르
쏟아 넣으신 듯 뒤죽박죽으로 비닐 봉지에 담긴 두유
대문 앞 고무다라이에서 뽑아 넣으신 잔파며 나물거리 한줌.
엄만 내가 주방장인 줄 모르시나 봐.
시장가면 단돈 천원어치도 안되는 그 나물들을
사위가 나물밥 비벼 먹는 걸 좋아한다시며 연하고 연한 나물을 뽑아 넣으셨다.
트렁크의 비닐봉지에 담겨 털썩거리며 달려 온 나물들은 거의 곤죽이 다 되어 있었다.
올케는 누가 그런 나물을 먹느냐며 엄마를 서운하게 했다.
그런 올케한테 내가 아무 소리 말고 엄마가 나한테 뭘 주신다면 다 넣으라고...
우리집에 가서 풀어 보고 못 먹게 되면 내가 버리거나 태우더라도
엄마가 주시는거면 뭐든 기쁜 마음으로 가져 갈 테니 다 넣어 달라고 했다.
화초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친구네 집에 가서 얻은 옆가지며
꽃씨들을 낡은 종이 봉투에 싸고 또 싸 두셨다가 내 놓으셨다.
기왓장까지 엄만 딸이 좋아할 만한 모든 것을 수집해 두셨다가 주셨다.
가뜩이나 비좁은 도시 단독주택의 마당에는 올케가 불편하고 화 낼만한 여러가지가 잡동사니로 모여 있었다.
엄마는 딸이 좋아하는거니까 잠깐만 복잡하면 된다시며 군자란까지 몇 화분이나 포기나눔을 해 두셨다.
다른 올케들은 아파트생활에 화초 가꾸기는 번거롭고 싫다며 아무도 안 가져간다며 서운해 하셨다.
숨이 가빠 쎅쎅..하는 소리가 나는데도 엄마는 마당을 둘러 보시며 뭐가 빠지지나 않을까 연신 바쁘셨다.
며느리 중에서 마당 있는 집에 사는 사람이 막내 혼자 뿐이다보니
엄마가 분갈이하고 포기 나눔을 해 둬도 가져 갈 며느리가 없음에 많이 서운해 하신다.
화초를 좋아하는 딸이 마침 마당도 넓고 집도 넓으니 이것저것 많이도 챙겨 주신다.
큰 돈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야말로 잡동사니들 천지다.
그래도 엄마는 엄마 보는 앞에서 늘 감사해 하고 기쁘게 받아오는 딸이 좋으신 모양이다.
젊은 날에는 음식솜씨도 맵짜던 엄만데 이제는 간도 안 맞고 이상한 맛이 나는
국적불명의 퓨전음식을 만들어 내시곤한다.
인사치레로 맛있다고 했다가는 그 음식은 내가 다 가져 와야한다.
며느리 듣는데서
\"야..야...
창녕 딸이 맛있단다.
다 넣어줘라.
집에는 내가 또 만들어 놓으마.\"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올케는 크린팩을 두겹세겹 뜯기 바쁘다.ㅋㅋㅋ
\"고모야.
이거....\"
집에 가져 와서 다시 상에 올리면 남편도 아이들도 아무도 못 먹어낸다.
우리 엄마가 요즘 그렇다.
기억력도 음식솜씨도 상황판단도 다 흐리고 약해지셨다.
그런 우리 엄마를 모시고 사는 올케가 너무너무 고마워서 추석 전에 제법 큰 선물을 미리 해 줬다.
요양병원도 있지만 아직은 아니라며 집에서 모시기를 마다하지 않는 오빠도 고맙고.
밤낮 지나친 사랑으로 때 아닌 잔소리에 시달려야 하는 조카들도 이뻐서....
어쩌다 만나는 시누이한테 우리 엄마 흉을 한바가지도 모자라 말떼기로 해도 난 다 들어준자.
고맙고 안스러워서.
내가 우리 할머니들을 모시면서 느끼고 겪는 일을 한두가지 들려주며 위로한다.
수고한다고..그리고 그 끝은 있을거라고.
이번에는 올케도 내게 제법 근사한 선물세트를 내 민다.
고맙구로....
엄마가 싸 주셨던 나물거리는 풀어 본 그 당장 찬물에 넣어 살..살...살려서 밥 비벼 먹었다.
씹을 것도 없이 더운 밥에 닿는 순간 풀이 죽어 연하고 연했다.
그 연한 맛을 보라고 넣으셨나보다.
옥수수는 까 뒀다가 밥 할 때 마다 압력솥에 한줌씩 넣고 고소한 옥수수 밥을 해 먹어야겠다.
거의 팥 색깔이 나는 찰 옥수수였다.
알이 자잘하고 씹으면 쫀득쫀득한......
시장가서 한두접한 사면 물리도록 먹을 수 있는 옥수수지만 엄마의 사랑은 그게 아니신 모양이다.
엄마 용돈으로 사 줘도 되고 돈으로 사 먹으라해도 되지만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손수 심고 물줘서
익힌 옥수수라며 할머니들하고 한번이라도 삶아 먹으라셨다.
너무 딱딱해서 삶아서는 못 먹게 생겼는데도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언제라도 친정에 다녀 오는 날이면 마음이 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