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초 가꾸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뜰이 넓은 집을 항상 머릿속에 담아두고 살았다. 비좁은 아파트에서
살면서도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옮기고 싶다는 욕구를 털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와 무관하 지 않았다. 화초를 가꾸며 살기에 좋은 집터를 만나면
언제든지 미련 없이 떠날 거라는 생각이 너무도 확고하게 내 마음에 터를
잡아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욕구가 들어올 여지가 내 마음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내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친구가 사온 화분이
외로워 보여 하나 둘 이웃들의 화분에서 곁가지를 잘라다 심은 화분이
늘어나면서였던 거 같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그렇게
화분은 하나하나 늘어나 얼마 안 가서 비좁은 베란다를 가득 채웠다.
나는 어느새 화초 수집가 로, 화초애호가로 변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그런 다음 쌀뜨물을 들고
베란다로 건너가는 게 내 일상이 되었다.
‘잘 잤니? 밤새 별 일 없었지?’
내 하루의 시작을 열어주는 말을 건네기도 하면서 나는 그들에게 골고루
물을 나누어 준다. 그리곤 마치 그들의 흐뭇해하는 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뿌듯함을 안고 일상으로 빠져나온다.
그렇게 화초들과 몇 년을 함께 하고 나니 이제 난 꺾꽂이의 달인(?),
분갈이의 달인(?)이 되었다. 하지만 정말 내가 달인인지는 모르겠다.
꺾어서 꽂아놓은 화초마다 죽지 않고 잘 살아서 달인이 아닌데도 달인처럼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정작 화초들은 온갖 고통을 다 참아내느라 힘겨운데
말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난 그 앞에 서면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들이 겪는
고통을 생각하여 느끼는 미안함보다 그들이 주는 기쁨에서 오는 감사함에
난 더 끌린다. 자그마한 떡잎이 돋아날 때마다 다가오는 소소한 기쁨,
푸른 잎새 사이로 색다른 기운이 느껴질 때의 설렘, 그리고 그 기운이
눈으로 감지될 때 다가오는 부푼 기대, 꽃봉오리에서 꽃잎이 하나하나
벌어질 때의 그 황홀함. 난 그런 것들을 지켜보는 게 좋다. 끈기를 가지고
정성을 들여 가꾸다보면 나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자신을 다 보여주는
그들이 있어서 내 아파트가 외롭지 않아서 좋다.
오늘 난 내게서 삶이란 화초를 가꾸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씨앗 하나 마음밭에 뿌려놓고 화초를 돌보듯 돌보다보면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되는 것. 소중하게 마음에 품고 가꾸어야 내 것이 되어 만날 수
있는 것, 그건 바로 꿈이었다. 내게 삶이란 바로 꿈을 현실에서 만나기
위해 다가가는 과정이다. 그러고 보면 난 그걸 가슴에 품고 참 오래도
참고 견뎌왔다는 생각을 한다. 가슴에서 내려놓지도 못하고 온전하게
꺼내지도 못한 채 말이다.
오늘 나는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꿈을 들여다본다. 내 손길을 기다렸을
그에게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라는 윤동주의 시구처럼 나도 내
안의 꿈을 향해 손을 내밀어본다. 이제 물을 주면서 대화하면서 기다려야
하겠지. 그건 바로 화초를 가꾸면서 느끼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