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참 모질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그 당장 돌아가실 것 같던 할머니는 아직 생존해 계신다.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모든 의료기기를 몸에 주렁주렁 달고....
24시간 투석을 하시면서 .
하루 병실료만도 만만찮고 산소호흡기며 투석비용 또한 하루에 엄청난다니
숨만 붙어있는 상황에서 참 어려운 결정일 것 같다.
일가친척들은 유복자로 키운 아들인데 마지막 효도를 다 하길 바랄거고
아들 또한 그 동안 못 모신 어머님에 대한 불효했던 마음들을
알아보시든 못 알아보시든 살아만 계셔 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비용이야 얼마가 들든 어머니를 살리고 싶을거다.
그런데 정작 그 할머니는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형편이시다.
사람을 전혀 못 알아보시고 말씀도 못하시고 투석을 안하면 바로 돌아가실 극한 상황이시다.
폐나 심장까지도 찔리고 망가지셔서 회복이 불가능한 몸상태.
고통도 호소하지 못할 지경인 몸으로 겨우겨우 숨만 붙어 있는 할머니.
그런 어머니라도 살아계시기만을 바라는 아들의 비통한 마음과
그만한 연세에 덜 고통받고 편안히 돌아가시게 투석이나 산소호흡기 떼기를 바라는 며느리 마음.
가까운 친인척은 바쁜걸음으로 다 왔다 가셨을거고
이제 그만 생명의 질기고 질긴 끈을 놓으셔도 좋을 듯 한데
아직도 아들은 투석을 그만두지 못한다.
벌써 12일째.
불꺼진 등대처럼 할머니는 그렇게 중환자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신다.
아들 며느리의 사이만 점점 벌어지게 하고...
산소호흡기와 투석 둘 중 하나만 중단해도 목숨이 위태로우시다.
그런데도 그 둘 중 어느 하나도 그만두지 못하신다.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살아있다는 그 하나만으로.
아들이 그 실낱같은 의식이 살아있는 어머니를 포기하지 못한다.
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대화도 못하는데
그냥 살아계시다는 그 하나의 사실만이 위로가 된다.
어머니 살아 생전 마지막 십몇년을 모시지 못한 죄책감에
나머지 생을 함께 할 아내의 권유도 물리치고 어머니를 선택했다.
이 상태로 오래 가시게 되면 어떻게 해야하나?
아무것도 모르시니 그만 둬야 할지 그래도 살아계신데 계속해야할지
아들의 고민과 며느리의 고민은 정반대선상에서 골만 깊어간다.
아무런 유언 한마디도 마지막 인사도 못 나누고 그렇게 누워만 계신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 같으면 수술도 다른 치료도 가능하지만
그 할머니는 그야말로 숨만 붙어 있으시다.
수술은 애시당초 불가능했고 갈비뼈 사이를 뜷어서 호스를 꽂아서 고인 피를 뺀 상태.
회복가능성도 거의 제로인 몸으로 정신력으로 버티고 계시다.
월남하시고 혼자 유복자를 키우시던 그 모질고 독한 마음으로....
이쯤에서 안락사를 가족끼리 의논했을수도 있을 것 같다.
고도의 의료행위를 하는게 아니라 그냥 치료를 중단만 해도 돌아가시지 싶다.
살아있음이 고통이라면 치료를 하고 회생이 가능한 환자도 아닌데
연세도 높고 다른 장기들이 다 엉망인 할머니를 그만 놔 드리자고.....
가까운 일가친척들은 열흘 동안 다 만났을거니까 이제 그만 평안히 보내드리자고...
살아있는게 살아있는게 아닌 할머니도 마지막 효도는 특별나게 받은 셈이다.
다른 할머니들처럼 조금씩 받으신게 아니라 한꺼번에 왕창 받으신게다.
유복자 아들이 살림이 좀 그만하니 다행이지 그렇지 못한 형편이라면
중황자실의 경비며 나머지 치료비용도 큰 걱정거리겠다.
할머니의 회복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아들은 어머니의 형제분들이며 주변분들의 따가운 시선
그리고 못 다한 효도때문에 어머니를 놓지 못한다.
과연 어느 쪽이 현실적인가?
생명연장술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이쯤에서 그만두게 하고 편안히 보내드리는게 맞는가?
어느 다른 자식이 있어 의논도 못하고 아내와도 갈등만 커 지고 의논도 안되는 아들의
입장이 참 난처 할 것 같아 안타깝다.
어쩌다가 이 곳의 어머니를 방문할라치면 달아나듯 도망치듯 황급히 돌아가곤 했다.
한분 어머니를 잘 모시지도 못하고 이런 시설에 맡겨 둔 불효자라고.
닭장같은 아파트에 아무도 없이 혼자 오두마니 앉아서 임종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이 곳의 생활이 그 할머니한테는 오히려 더 행복이었지 않았을까?
그래도 오매불망 아들을 기다리셨고 며느리 자랑에 손자손부자랑이 큰 소일거리셨는데
10 년이 넘도록 기다림과 그리움만 키우시던 할머니.
이제 그만 고통에서 해방되셨으면....
아들의 마지막 효도를 그나마 받으셨으니 덜 억울하실거고
억지로라도 며느리가 중환자실 곁을 지키니 괘심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