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이모!! 수건 주세요!!!\"
\"작은 엄마! 드라이어 주세요!!\"
\"칫솔 없어요?\"
\"선생님! 우리 홈스테이 맘에게 전화 좀 해주세요!\"
시댁 조카만 있던 조용한 집에
가슴성형수술한 친구의 딸이 어제 어학연수차 들어오고
후배 유학원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싶다는 아이들 둘에
후배까지 몰고왔더니 식탁에 차린 음식보다 재잘대는 수다가 더 맛깔스러운 저녁이었다.
20대 때부터 알고 지내는 LG홍보실 사보기자였던 후배 하나가
먼저 밴쿠버로 와서 유학원을 차렸었다.
도와 줄 것도 없고 가끔 김치 담궈 가져다 주는 일이 고작이다가
최근들어 가끔 들려보면 엄마 떨어져 공부하느라 지친 아이들 틈에서 엄마 노릇하느라 애쓰고 있다.
아직 싱글인 후배가 아이들을 잘 다둑거리며열심히 사는 모습이 이래 저래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또 엄마 떨어져서 지내는 외로운 티 내지 않고
어떻게든 부모님들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어찌나 대견한지
아줌마의 오지랖이 또 발동한다.
엄마가 해 주던 반찬 중에 뭘 먹고 싶냐고 물어봐서
어쩌다 갈 일이 생길 때 담아다 주면 좋아서 팔딱 팔딱 뛴다.
그 모양이 꼭 어린 토이푸들 마냥 귀엽다.
마늘 장아찌랑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가 먹고프다는
열 다섯살 유나는 중학교 졸업하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
유학을 와서 필리핀인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다.
어쩌다 나를 보면 한국에 계시는 엄마를 만난 듯 반가워하는
귀염둥이에 제법 영어도 잘하는 재간둥이다.
친구 딸을 데리러 갔다가
이왕 차리는 밥상에 수저 한 벌 더 놓으면 된다며
한식 먹고 싶은 사람 따라 붙으라고 했더니 넷이 일어섰다.
아이들이 원하는 메뉴는
애호박전, 두부 된장찌개, 갈비찜, 매운 닭불고기, 김치...
마음이 급했다.
음식 기다리는 시간을 특히 못 견디는 게 우리 한국 사람들인데
아이들은 더욱 말이 필요없다.
집에 도착해서 바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출발해서 장을 보고 돌아 와 요리를 시작한 우리집은 난리가 났다.
가스레인지 4구가 뿜어내는 열기를 감당하지 못한 후드는
결국 화재경보기 센스를 울리게 만들었고, 웽웽대는 경보음에 소방차가 출동하기 직전이었다.
불법이지만 비닐 랩을 잘라 경보기 센스를 막고 온 집안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며
남편은 양파를 까서 생강과 사과를 갈아 선인장 꿀가루를 넣어
익숙하게 양념장을 만들어 갈비찜을 올리고
나는 손이 휘날리게 된장찌개에 매운 닭불고기, 애호박전을 만들었다.
엄마 떨어진 아이들의 메뉴는
다행히 우리가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만 원해서
조리하는데 큰 시간 소요없이 손 발 맞춰 뚝딱 차릴 수 있었다.
진짜 뚝딱이다.
갑자기 급조된 계획인 만큼, 시장보기에서 식탁까지 즉흥적이었지만
손발 맞은 동서 셋이면 부엌에서 시어미 몰래 소도 때려 잡는다고
십 수년 손 발맞춘 부부는 돼지정도 잡지 않을까 싶은 속도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갈비 국물에 밥 비벼서 알뜰히도 먹어치우는 유나는
학교에 갔다가 도시락 가방 흔들며 유학원 들어오는 걸 보면
엄마가 돈 벌러 나가고 텅빈 집안에 들어서던 내 어릴 적 생각이 나서 콧등이 시큰해 지곤 한다.
(이럴 때마다, 엄마는 왜 나를 혼자 놔 뒀냐고 따지고 싶어진다. 나는 정말 그 기억이 싫다. )
\"자 ~~ 밥 먹자!!\"
원래 형제 많은 집 아이들이 반찬투정 없고 씩씩한 법이다.
어리버리 했다간 제 밥 그릇도 못찾아 먹으니까 본능적으로 필살기를 하기때문이다.
와~~~~~~~~~~~~~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식탁에 둘러 앉아
각자 자기가 원했던 반찬을 집중 공략하며 정신 없다.
오늘 처음 온 대학 3학년인 은정이에게 초딩같은 유나가 유학 선배로서 브리핑을 한다.
\"와~ 여기서도 한국 처럼 이런 음식을 다 해 먹는구나~\"
\"언니! 이 집만 먹는거야. 다른 집 가면 아침에 우유랑 시리얼 먹고 점심엔 샌드위치 먹어\"
곁에 앉은 쑥이가 또 거든다.
\"그래서 홈스테이를 해봐야 어떻게 좋은지 안다니깐~ 저 언니 홈스테이 가라고 해요~\"
\"이태리언 홈스테이를 가야 해. 맨날 면만 먹다가 얼굴 누렇게 되어 봐야 알지!\"
ㅋㅋ
아이들이라고 생각까지 없는 게 아닌 듯
각자 그간 경험을 떠들며 먹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식탁이 금세 초토화 되고 수박까지 먹고 나서도 수다의 맥이 끊어질 기미는 없고
돌아가고 싶어하는 기색이 없다.
하는 수 없이 각자 홈스테이에 전화해서 외박 허가를 받고
한국 엄마에게도 전화해서 밖에서 잔다고 허락을 받으라고 했더니
신나서 각자 전화하는 소리가 수다만큼이나 재잘재잘 들린다.
빨리 자라고 이불 하나씩 안겼더니
방에서 거실에서 붙어서 또 수다떠느라 날 새는 줄 모르는 아이들...
아이를 낳을 바엔 열명쯤 낳고
아니면 아예 낳지말자고 연애시절 남편과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제 아침되면 또 두 개뿐인 욕실이 복닥거릴테고또 한번의 소란이 생길 터.
산 속같은 고요항을 좋아하지만
어쩌다 어쩌다 한 번쯤 이런 부산함이 또 즐거운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는
아이들 웃음소리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