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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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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구가 아닌 \'이 탁구\'


BY 수련 2011-06-18

4년 전, 뜻하지 않게 남편에게 찾아온 뇌경색의 후유증은 본인에게는

물론 우리 가족에게 청천 벽력같은 일이었다.

언어에 관한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말하기, 읽기, 쓰기, 듣기를 잃어버린 브로카 실어증이었다.

언어장애는 평생을 몸담았던 공직마저 명퇴를 하게 만들었다.

언어는 물론 모든 기구를 다루는 기억조차 사라져 버려

일상생활을 제로(0)부터 시작하는 참담한 현실 앞에 남편은 좌절했다.

무시로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남편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없는 나는 속울음을 꾸역꾸역 삼키며

남편의 등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좌 뇌의 경색은 언어와 신체의 절반인 오른쪽으로 마비를 동반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다리는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마비가 살짝 비켜갔다.

현실을 원망하며 비관만 할 수는 없다.

재활을 위해 운동을 하기로 했다.

 

우리아파트 근처에 국민 체육관이 있다.

탁구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탁구를 치는 모습을 보더니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추운겨울을 피할 수 있고,

한 여름의 뜨거운 햇빛도 가릴 수 있는 실내 운동이라 남편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막상 탁구테이블 앞에 서자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거짓말처럼 탁구 라켓을 쥐는 방법도, 치는 법도 깡그리 잊어버린 것이다.

렛슨을 받기로 했다.

다시 처음부터 초보가 되어 시도를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가 왔다.

오른손 소 근육에 힘이 없어 본인의 뜻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탁구를 능숙하게 치는 모습을 보며 상대적인 박탈감에

다시 좌절하면서 탁구라켓을 놓아버렸다.

 

원점으로 돌아왔다.

공백시간은 우울증을 동반하면서 남편을 한없이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탁구장을 찾았다. 마비가 오지 않은 왼손으로 하면 어떨까.

코치선생님과 의논하여 왼손에 라켓을 쥐게 했다.

옛날에 남편은 펜 홀더(Pen Holder)라켓으로 쳤지만

왼손으로 치면서 쉐이크핸드(Shake Hand) 라켓으로 바꾸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익숙해졌고 단식, 복식 경기를 할 만큼 실력이 늘어났다.

 

말을 할 수 없다는 상실감에 자존감을 잃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남편은 탁구로 인하여 다시 세상과 소통하게 되었다.

 

자신에게 닥친 비참한 현실을

분노-원망-좌절-타협을 거치면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탁구장에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웃기도 하고,

더듬더듬 한마디씩 하는 남편에게서 희망이 보였다.

탁구를 통해 지난날의 고통과 절망을 극복하며 말문이 트이는 ‘그 날’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