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31일부터 돌아 올 일정을 잡지 않고
판도라님이 살고 있는 에드먼튼 방향으로 여행을 가자고 남편을 꼬드겼다.
“너, 아줌마닷컴 사람 만나러 가려는 속셈인 줄 다 알아. 캐나다 동부나 알라스카 크루즈 갈거니까
그렇게 알아”
“싫어. 크루즈는 먹고 자고 바닷바람 쏘이고 댄스파티 아니면
꼼짝 없이 바다에 갇혀 있는 게 무슨 여행이야!”
평소 낯선 사람과 식사를 하거나 동행하는 걸 싫어하고 낯가림이 있는 그는
에드먼튼이란 방향만으로 내 속셈을 눈치채고 강한 거부의 몸부림(?)을 쳤다.
절대 아니라고 펄쩍 뛰며, 그의 눈을 피해 판도라님을 만나면 선물로 줄
도자기 하나를 도둑질 하는 사람마냥 한지에 곱게 포장을 했다.
에드먼튼을 가기 전 캘거리에 먼저 도착해서 쉬고 있는 교회 집사님과 친한 장로님만 잠깐 만나고
우리 일정대로 움직이자며, 온갖 감언이설로 겨우 에드먼튼으로 갈 기회를 잡았다.
그렇게 벼르고 별러 겨우 만나게 된 기쁨과 기대로 급해지는 마음을 감추려고
장로님께 수시로 전화를 걸어댔다.
“장로님! 알버타산 트리플A(AAA) 쇠고기 스테이크로 준비하셨다구요? 와인을 살까요??”
“네?
거짓말 하는 것도 재주다. 제 발 저린 도둑 콜라는 수시로 장로님과 통화하며
에드먼튼 행이 결코, 판도라님을 만나는 게 주 목적이 아니라
여행을 가되, 캘거리 장로님을 만나는 겸 지척에 사는 판도라님도 만나고 온다는 식의
주장을 세퇴시키느라 애절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판도라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설레임을 감추기 힘들었다.
솔직히 처음 이민 온 사람에게 외국은 얼마나 차갑고 냉랭하고 쌀쌀맞은 지 겪어보지 않으면
잘 이해하기 어렵다. 비록 조국 땅에서 애국은 커녕 평생 거리의 휴지 한 번 주워 본 적 없는 사람이라 해도
애국이란 말만으로도 가슴이 메이는 법이다.
그래서 정말 궁금하고 걱정했었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급여를 제대로 주지도 않던 트레이닝 기간동안
도대체 뭘 먹고 어떻게 살았던 걸까. 듣고 싶고 묻고 싶은 것이 태산이었다.
그러나 같은 나라에 산다는 건 말 뿐, 밴쿠버에서 애드먼튼까지는 비행기로도 4시간, 자동차로는
15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야 도착하는 거리이고 보니, 알량한 머그 컵, 수저 몇 벌이라도 전해 주고 싶은 건
늘 마음 뿐 만나기 조차 그리 녹록하지 않다.
아이들은 잘 적응하고 있을까… 염려만 하다가 어렵게 얻은 기회였다.
장로님은 내 마음도 모르고 빨리 오라고, 어디쯤 도착했냐고 수시로 전화를 하시는데
어디서든 마주치면 30분 이상 대책없이 기다려야 하는 웬수같은 캐나다의 기차를 만났다.
[열차를 만나 기다리는 동안 공놀이를 하는 캐네디언 청소년(좌). 길게 늘어 선 차량안에서 기다리는 어느 누구도 불평을 하거나 불만스런 표정
캐나다에서 도로를 가로지르는 철로 앞에서 화물 열차를 만나는 건,
한국에서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만나는 쥐포 오징어, 뻥튀기 아줌마를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대륙인 캐나다는 화물열차의 연결 칸이 보통 150개에서 200개가 맞물린다.
이 길고 긴 화물열차를 끌기 위해 세 개 정도 기관실을 연결하고 철로를 달리다가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살짝 굽어진 산 모퉁이를 돌아나오는 기차를 보면 흡사 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 길고 긴 칸을 연결해서 달리는 화물차는 웬만큼 달려도 그 길이때문에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아
배 부른 구렁이가 느릿느릿 기어가는 느낌을 준다.
이럴 땐 아예 자동차 시동을 끄고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라인을 타고, 아이들은 공놀이를 하거나 RV를 타고 여행다니는 노인들은 비치 의자를 내려 놓고 햇살을 쪼이며 기다리기도 한다.
[자스퍼 국립공원을 들어가면 록키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롭슨 마운틴’은 구름위로 솟은 정상을 보려면 1년 중 가장 맑고 햇살 화창할 때만 볼 수 있어 ‘도도한 산’이다. ]
캐나다 록키의 관문인 자스퍼국립공원을 들어서자 한 폭의 그림처럼, 그러나 웅장한 위세를 자랑하며
구름위로 봉우리를 감춘 ‘롭슨 마운틴’이 우릴 맞이 했다. 하늘 빛에 겹쳐 푸른 빛이었다가
햇살에 반짝거리는 빙하색으로 변하는 산은 녹색과 푸르름, 흰색이 착시현상마저 불러 일으킨다.
우리는 차례대로 산을 배경삼아 주민등록사진 찍히듯 얌전히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
카메라 렌즈 두껑을 닫고 ‘Off’로 바꾸었다.
인간이 만든 렌즈에 록키의 장엄함을 담아 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지난 여름 체험한 터라
천지를 창조한 신의 위대함에 도전하는 잘못을 범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내 능력의 부족함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일찌감치 기기들을 내려놓고,
공손한 호흡으로 산을 바라보기로 했다.
언제나 처럼 가슴을 활짝 열었다.
[모래에서 기름을 채취하는 ‘오일 샌드’ 생산으로 부유한 주에 속하는 캘거리. 알버타산 쇠고기도 최고의 맛과 품질을 자랑한다. 사진은 캘거리 다운타운 전경. 사진/ 콜라]
밴쿠버에서 캘거리까지는 자동차로 12시간 거리,
중간에 휴식시간을 감안하면 당일
출발 이틀 전부터 판도라님에게 수차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직장에서 일할 땐 전화를 꺼야 하는 캐나다에서 당연한 일이라 그냥 출발을 했었다.
장로님과 집사님은 알버타 산 ‘AAA’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에
대형 한정식집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사모님의 대표 메뉴 ‘해물 파전’을 해 놓고
직접 꺾어 말린 고사리, 샐러드, 새우튀김까지 거한 저녁만찬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긴 여행에서 오는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식탁에 앉기 전
거실에 걸린 사진 한 장이 눈에 확 들어와 카메라를 켰다.
1968년 10월 결혼 하신 두 분의 결혼사진이란다.
68년. 결혼 사진 속의 신부는 놀랍게도 미니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다.
한 해전 서울 정동교회에서 결혼하신 두 분의 결혼식에서 입었던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그것은 당시로서는 참으로 파격적인 일이었고, 두분의 집안과 성향을
단번에 파악 할 수 있는 자료였다.
[올해 65세가 되신 장로님과 사모님의 68년도 10월의 결혼 사진. 사진/콜라]
파티오에서 지글대며 구워지는 스테이크도 잊은채
결혼 비화를 듣느라 배고픔도깜빡 잊었다. 그리고 둘러본 집안은
한국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가구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세 개로 이루어진 장롱 문을 주인몰래 살그머니 열었더니
인간문화재 낙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큰 며느리, 둘째 며느리 하나씩 나눠주고 나머지 한 짝과 소품들은 돌아가신 다음
물려 예정이라는 말씀에 친정집 장롱이 생각났다.
부모님 돌아가시면 돈내고 동사무소 딱지 붙여 버려야 하기에
가져 가라고 할까 겁내는 우리 친정 장롱과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며느리들이 좋아한다니 신기하다.
벼룩시장서 물려받고 남의 것 얻어서 살아가는 소시민인 내 눈엔
오동나무나 대추나무나 소나무나 다 같은 나무같아 보일 뿐
도대체 가치를 분간하지 못하는 까막눈이니 맞장구를 쳐야 함에도 눈만 껌벅거리는 게
조금 죄송했다. .
캘거리에 도착하는 즉시 판도라님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내일 아침 애드먼튼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문자를 남겨도 도무지 소식 불통이다.
나를 만나기 싫은 걸까. 아니면 내가 뭘 실수해서 피하는 건가…온갖 상상을 하면서
퇴근시간에 맞춰서 또 아침 일찍, 한 밤중에도 이불 뒤집어쓰고
시간에 따라 메시지를 남겼지만 그 다음날 아침에도 가타부타 소식이 없었다.
[세계최대규모의 쇼핑 몰인 애드먼턴 ‘웨스트 몰 푸드코트에 있는 동상. 사진 /콜라]
캘거리서 판도라님이 살고 있는 에드먼튼까지는 시속 100킬로를 달리면 3시간 거리.
어쩌다 걸려 온 번호는 받으니까 뚝 끊어졌다.
시내구경을 하는 둥 마는 둥 전화에 매달렸다. 그렇게 애타게 메시지를 스무 번도 더 남기던
“나는 당신을 모른다. 전화 번호가 바뀐 듯 하다. 나는 한국 사람이 아니다”
이런… 이런…. 그러면 진즉 말을 했어야지. 그렇게 메시지 보낼 때
단 한번만 문자메시지를 보내주던가 전화를 해 주었더라면 판도라님에게 이 메일을 보낼 수도 있었고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당신 도대체 머야!!
화가나는 건 내 사정, 그쪽에서 받아 줄 이유가 아닌 줄 알지만, 화가 나서 통제불능이었다.
차마 욕 할 수는 없고 목소리에 있는 감정 없는 감정 잔뜩 털어 넣어 불만을 터뜨리고 나니
속은 시원한데 큰일났다. 내가 적어 간 핸드폰과 인터넷 폰이 모두 안 된다면 만날 방법이 없었다.
[에드먼튼 시청에서 바라본 전경. 사진/콜라]
아, 이번에는 만날 운명이 아닌가 보다…. 약간의 실망과 포기를 하고 우리는 애드먼튼 시내를 돌아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자스퍼\'를 향했다. 록키 산맥 깊숙한 산속에 있는 ‘미에타 온천’을 가는 길은 산과 계곡 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 미로처럼 40분을 달려야 했다.
가는 길목에서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꽃을 뜯어 먹고 있는 곰 가족을 만났다.
신기해서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으려고 내려가는 내 팔을 급히 잡는 남편, 하는 수 없이 차 안에서 창을 열고 사진만 찍었다. 우린 곰 가족이 신기하고 예뻐서 어쩔 줄 모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릴 짐승 취급하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 번만 만져보고 싶은데..... 새끼 있는 곰 가까이 간다는 건, 자살행위와 다를 바없으니 참을 수 밖에.
[도로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곰 세 마리. 반갑고 놀라서 야단인 우리와 반대로
태연히 풀을 뜯고 도로를 건너 가서 아빠곰과 합류했다. 사진/콜라]
드디어 도착한 자연유황온천은 53도의 온천물이 뽀얀 수증기를 뿜으며 솟고 있고
살짝 식힌 온천수 그대로 흐르는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록키를 바라보는 그 기분
선녀와 나뭇꾼? 아니면 뚱녀와 나뭇꾼이라 해도 웃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여행의 백미였다.
한국의 온천이 천연온천물에 수돗물을 섞어 온도를 맞춘다면 캐나다의 자연온천들은
온천수를 식혀서 적절한 온도로 맞춰져 나오는 게 다르다.
따끈한 온천물에서 목만 내 놓고 눈을 감았다.
“여보! 몇 시까지 문 연대?”
“9시라잖아”
문득 한국말이 들렸다. 이민 생활이 연차를 더해가면
한국어도 영어도 못하게 되어 바보가 된다더니 환청이 들리는 군….
그리고 눈을 떴을 때, 한국 아줌마 다섯명이 눈에 들어왔다.
노천 온천에 들어오면 햇살에 그대로 노출되는 얼굴에 기미와 주근깨가 진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한국 아줌마들은 온천이나 골프장을 갈 때도 진한 화운데이션에 강도같은 복면을 쓰기도 한다.
[미에타 유황온천. 노천온천으로 100% 자연 유황온천수로 채워진 온천물.
록키산맥 산중턱에 자리잡은 이 온천은 4월부터 9월까지만 영업을 한다. 사진/콜라]
한국과 미국 마이애미에서 형제들끼리 왔다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물속에서 수다를 떨며 즐거운 오후 시간을 보내고, 문을 닫는 밤
정각까지 버티다가 맨 마지막에 나왔다.
예약 해 둔 온천 아래 통나무 캐빈도 그분들과 앞 뒤로 있어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한국 같음 맥주파티라도 할 분위기였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이곳에서는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헤어져야 했다 .
큰 기대하지 않고 들어 선 통나무 캐빈은 또 다른 감동으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120불이라는 캐빈 내부는 커피포트와 식기, 깨끗한 침구가 호텔 못지 않게 갖춰져 있고
삼나무 숲의 맑은 공기와 더불어 통나무 목향과 벽난로에서 타다가 남은 참나무 숯 향이 어우러져
절로 피로가 사라지는 밤이었다.
벽난로에 장작을 넣어 불을 지피는 남편 곁에서 돌아오던 길에 동행한 집사님은 종이를 찢어
부채질을 하느라 공조하는 사이, 나는 식사 준비를 하는데 콧노래가 절로 났다.
이 콧노래는 저녁 식사가 끝나기도 전 눈물과 콧물로 바뀌었다.
여행지에서 나른함이 몰려 오는
맑은 공기 탓인지 온천욕 탓인지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못한 나는, 가벼운 몸을 흔들어대며 쌀을 씻었다.
메뉴는 된장찌개. 사 먹는 음식에 질릴 때면 먹으려고 준비 해 온 애호박과 무를
나박나박 썰어 대파도 잘라 멸치가루 넣어 한 소끔 끓인 후 된장을 풀려고 찾는데…. 없다.
덜렁이....
아, 풋고추를 찍어 먹으려고 가지고 온 양념된장이 손톱 두 개 부피만큼이 있다.
급한대로 된장에 참치를 넣고 부글부글 끓인 찌개를 가운데 놓고 \'예술\'이라는 칭찬에 입이 찢어진 나는
이 구수한 냄새에 곰이 올지도 모를 거라는 둥, 뒷 집 한국인들도 부러울 거라는 둥...
우리만의 자화자찬을 반찬삼아 밤 깊은 줄도 모르고 떠들며 신바람이 났다.
하긴 여행지에서 반찬이 무슨 대수랴. 아름드리 삼나무에서 사정없이 뿜어대는 피톤치드와
벽난로에서 활활 타오를 시간만 기다리며 대기 중인 참나무 향, 간간이 들려오는 밤새 울음 소리가 있는데 …
문제는 언제나 예기치 못한 것에서 부터다. 장작불을 피워 본 경험이 많지 않은 남편은 불쏘시개로
관광책자 한 권을 다 쓰고도 불꽃을 점화하지 못한 채 눈물 콧물만 흘려대고
저녁 밥값이라도 할 요량으로 종이로 부채질을 하는 집사님은 평생 일을 해 본적이 없는 분이라
종이 재만 날려대니, 연신 울려대는 화재경보기 달래느라 의자를 놓고 천정에 매달린 센스를 향해
부채질 하던 나는 추운 날씨에도 땀이 날 지경이었다.
밤늦도록 셋이서 중노동에 가까운 장작불 지피기에 실패하고
얼굴 군데 군데 시꺼멓게 그을린 검뎅이를 묻힌 채
먼저 포기한 남편은 옷을 잔뜩 껴입더니 곯아 떨어지고, 집사니도 슬그머니 건너편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불을 뒤집어 썼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못한 나만 불꽃 하나라도 생기면 바람불면 꺼질새라 기침 한번 크게 못하고
벽난로 앞에서 \'불님\'을 모시다가 지쳐, 남은 불씨를 끄고 잠이라도 자려고 했지만
잘 타지도 않던 장작이 이번엔 꺼지지도 않는다.
온 몸에는 연기내가 배어 쿰쿰한 내가 진동하는데 손만 대충 씼고
후드 티셔츠 모자를 머리 끝까지 눌러 쓰고
록키의 그 쌀쌀한 밤공기를 이기기 위해 최대한 몸집을 작게 만들어 웅크린채 잠이들었다.
다음날 아침, 춥지만 잘만 했다는 내 말에 집사님은
‘너네 둘이는 붙어서 잤으니 추위가 덜했기라도 했지, 나는 고드름이 됐다’면서
밥이고 뭐고 필요없다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온천탕을 향해 달려갔다.
\"에그, 나이는 못 속인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