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를 가져 해산달이 다 되었을 때 남편이 최전방으로 발령을 받았었다.
보따리를 싸들고 친정으로 갔는데
올케도 임신5개월 째였다.
시누이가 해산을 하고 갈 눈치다 싶으니 안좋은 기색이 역력했다.
\"한 집에서 애를 둘 낳는법이 아니라는데..\"
속으로 \'그럼 언니도 친정가서 낳으면 되지\'
자기 친정엄마, 안사돈이 와서 해산구완을 할거란다.
그러니 시누이인 나는 딴데 가서 알아보라는 뜻이다.
며칠동안 가시방석에 앉은 꼴이 되어 결국 엄마는 남산만한 배를 한 나를 데리고
대구에 있는 큰언니 집으로 갔다.
마침 언니는 형부가 젖소를 키운다고 버스도 다니지 않는 오지중인 오지인 시골에
살고있었다.
아직 사택이 비지않아 남편에게 갈 처지도 못되었다.
할수없이 언니집에서 해산을 하기로 하였다.
엄마의 다출산 경력(?)으로 미련하게
산파도 없이 집에서 낳기로 했는데 양수만 터지고 아이는 나오지않고..
급히 택시를 불러 대구시내의 산부인과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출산을 했다.
그후, 8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친정 나들이를 갔는데
기저귀를 빨때마다 올케의 눈치속에 하룻밤을 겨우 자고 친정을 나섰다.
자기는 물을 아끼기 위해 개울에 가서 빨래를 한다는 둥, 세숫물을 모아 빤다는 둥..
안절부절하는 엄마가 안쓰러워 뒤도 안돌아보고 친정을 나왔다.
엄마만 돌아가시면 절대 친정에 안간다고 맹세를 하면서..
2년후 엄마가 돌아가시고 친정에 발걸음을 끊었다.
사위가 출장을 간다기에 딸보고 집으로 오라고 했다.
4개월된 외손자와 머무는 동안 최대한 딸이 편하게 쉬었다 가게 해주고 싶었다.
멀리 있으니 도와주지도 못하고 항상 마음이 걸렸다.
친정엄마가 해줄수 있는거, 외할머니가 마음껏 외손자를 안아보고 업어보고.
얼르고.. 다 해보는 중이다.
친정엄마가 아직 건강하고 딸이 언제라도 오면 편하게 유할수 있게
팔을 벌려 준다면 딸은 얼마나 마음이 든든할까.
새벽에 아이가 깨서 칭얼대면 더 자라고 손자를 업고 마루에서 얼른다.
내가 누려보지못했던, 엄마가 되어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지 못한 한을 딸에게
마음껏 베풀고 싶다.
잠도 실컷 자게 해주고,먹고싶은 것도 마음껏 해주고...
남편과 친정에 갔을때 엄마는 빈약한 밥상이 사위보기 민망해 올케에게 반찬을
조금 더 만들었으면 했다.
야박한 올케의 한마디.
\" 우리 먹는대로 먹으면 되죠 뭐. 시장도 먼데..\"
\"그럼 술이라도 한잔 내오던지\"
\"어째 이 집 식구들은 죄다 술타령이예요?\"
33년이 지난 지금도 올케의 그 말, 눈빛이 잊혀지지않는다.
딸이 두명인데 자기 사위에게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타.
내 사위가 오면 긴장이 되는건 사실이다. 그러나 내 소신껏 잘해주고 싶다.
이것 저것 만들어 한 상 차려 남편과 술한잔 하니 얼마나 좋은지..
비록 말은 못하지만 사위하고 술잔을 부딪히는 남편을 바라보니 흐뭇한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딸에게, 손자에게 푸근한 엄마가 되고 넉넉한 할머니가 될 것이다.
딸들은 친정이 울이다. 언제라도 기대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것이다.
나는 마음껏 퍼주는 친정엄마가 되고 싶다.
언제라도 사위와 딸이 오면
맛난 반찬을 신나게 만들고 잘 익은 하수오 술을 주전자 가득 담아 철철 넘치도록 사위잔에 부어 주고,
외손자를 업고 동네 한바퀴 돌면서 허허 바보웃음을 날리는
그런 할머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