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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오랫만이에요~


BY 그대향기 2011-03-17

 

 

오늘도 한창 바쁜 시간에 그 할머니가 뒷문을 열고 빙그레~웃으시며 들어섰다.

언제나처럼 구부정한 등에는 낡은 초등학생 가방이 짊어져있었다.

부스스한 머리칼

우는 듯 웃는 얼굴

나 들어가도 돼요?..하는 몸짓

그러면서도 슬금슬금 들어서는 발걸음

 

언제부턴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없다.

어느 날 주방 뒷편에서 궂은 일을 하던 그 할머니.

몇년 전부터 그 할머니는 그렇게 내게로 다가오셨다.

수백명씩 오는 행사인원에 끼어서 낡은 가방 하나를  달랑 짊어진 모습으로

주방뒷문 앞을 서성이다가  주방으로 스며들 듯이 나타나셨다.

그리곤 누가 하라고하지도 않은 궂은 일들을 도맡아하셨다.

 

음식물 쓰레기통 비우기

여기저기 나뒹구는 소쿠리나 밥솥 제자리에 옮겨두기

주방 행주 빨아널기

식당바닥 물걸레질하기

한쪽구석에서 수저씻기

 

그러면서도 그 할머니는 단 한마디도 없이

조용조용 혼자서 그림자처럼 그렇게 일을 하셨다.

식사시간에도 같이 식사를 안하시고

밥솥을 씻으면서 나오는 밥알을 소쿠리에 받혀서 그걸 잡수셨다.

반찬도 없이.

바쁘게 돌아치다가 내가 발견하고는 놀래서 식판에 밥을 차려다 드리면

\"미안해서...돈도 안주는데 미안해서...\"

억지로 주방에 딸린 방에 식판을 갖다드리면 못 이기는 척 밥을 드셨다.

 

같이 온 일행들의 이야기로는

그 할머니의 남편이 젊어서부터 노름을 하면서 노름뒷돈을 안 가져다 준다면서

그 할머니를 구타를 했고 잦은 구타로 머리에 이상이 생겼다고 했다.

장성한 아들도 딸도 있지만 집에는 안 들어가시고 어디 비 피할 곳만 있으면  잠을 청하고

남의 집 허드렛 일을 하면서 겨우겨우 연명한다고 했다.

결혼한 아들이 집에 들어가시길 강권해도 온전한 정신이 아니신지라

혼자서 바람처럼 훌~훌~떠돌며 사신다고 했다.

남의 물건을 탐한다거나 해꼬지를 하는 일 등은 일체 안하신다.

 

몇 년 전 내게 처음 모습을 나타내시던 그 할머니가 어느 날  부턴가는 연락이 뚝.....

일가친척은 아니었지만 일년에 많으면 서너번 적게는 한두번 주방에 모습을 보이시다가

3~4년 전부턴가 그 할머니가 보이지 않으셨다.

행사관계로 우리집에 오시던 그 단체는 여전히 오시곤해서

그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더니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고 했다.

혼자서 그렇게 사시니 영양도 영양이지만 다리가 많이 아프시다고 했다.

몇천원짜리 월간지를 아는 분들을 찾아다니시며 팔았는데 요즘 누가 월간지를  쉽게 사 주나?

비록 온전한 정신은 아니시지만 남의 돈 그저 얻자는 것도 아니었고

월간지 한권 팔아야 단돈 500 원 남는 책장사를 하시다가 다리가 크게 나빠지셨단다.

 

여름에 그 할머니곁을 가면 쉰내가 푹푹 났다.

머리에서는 오래된 기름내도 났다.

주방일이 좀 정리가 되면   집으로 올라 와 그 할머니한테 맞을만한  속옷이며

겉옷을 대충 챙겨서 샤워장으로 모셨다.

옷을 벗기고 새 수건을 갖다드리면서  목욕하고 나오시라고 샤워장으로 인도했다.

\"할머니...이렇게 몸에 땀냄새나면  같이 온 사람들이 방에 안 재워줄지도 몰라요.

 이 옷  벗고 목욕 다 하신 다음 새옷으로 갈아입으세요.

 신고 온 운동화도 벗고 이 구두 좀 헐렁해도 갈아 신으시고요....\"

 

수줍은 산골처녀같이 몸을 사리셨지만 보송보송한 새 옷을 들이미시니

샤워기의 물을 온 몸으로 받으며 목욕을 하셨고 갖다드린 샴푸로 머리를 감고

향긋한 냄새를 풍기시며 젖은 머리로 어색하게 웃으며 한참 후에 주방에 다시 오셨다.

헐렁했지만 내 구두를 신으셨고 내 옷을 입은 모습으로.

벗은 옷들을 보물처럼 가슴에 꼬옥 안은 모습이 안타까웠다.

정확한 나이도 잊은 그 할머니.

그렇게 나와의 인연이 몇년 동안 이어지다가 소식이 끊어지고 또 몇 년이 지났었다.

궁금했지만 찾아나설 그런 특별한 관계는 아닌지라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없는 것으로만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 할머니가 오늘 더 구부정한 모습으로 낡은 가방을 짊어지고 다시 나타나셨다.

400 명 쑥국을 끓인다고 쑥을 씻어 건지다가

\"어머 할머니~~

 너무 오랫만이에요~~

 건강하시니 다행이네요.\"

꼭 친한 친척을 만난것처럼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니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다 놀래서 돌아봤다.

수줍은 듯 어색하게 웃으시는 얼굴이 많이 상해있었다.

또 쓰레기부터 치우고 이런저런 잡일을 스스로 찾아하셨다.

다리도 안 좋은데 그만하시라고 해도 이만한 건강도 감사하다셨다.

언제나 감사가 몸에 베셨다.

 

점심을 거르실까 봐 얼른 식판에 노릇노릇 구운 조기랑 조갯살 넣은 햇쑥국, 도토리묵, 겉절이, 김치를

차려서   주방에 딸린 작은 방에 차려 드렸다.

\"밥값이 없는데 미안하잖아...\"

이번엔 큰 거절없이 밥을 드셨다.

그리곤 또 주방일을 소리도 없이 사브작사브작 하셨다.

일하는 중간중간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내셨냐고 물으니 그냥 책이나 판다고하셨다.

집에는 여전히 안 들어가셨다.

아들이나 딸들이 가끔 와서 도와 드린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혼자셨다.

파시는 책을 보자시니 월간지 달랑 두권.

다 합해도 만원도 안되는 책값이었다.

 

\"할머니 이 책 제가 다 사 드릴께요.

 그리고 이건 영양제니까 하루에 두번씩 드시고

 속옷도 자주  갈아입으시고요...얼굴에 바르는 영양크림은 손에도 좀 바르세요.

 요즘 밤에 혼자 주무시면 춥지요?

 봄 내복인데 얇아도 따뜻할거에요.

 이건 작은 담요고 참 따뜻해요.

 이불 안에 덮으시던가 그냥 이것만 덮어도 따뜻하니까 꼭 덮고 주무세요.\"

 

그 할머니가 오신  조금 후에  얼른 2층 집으로 올라갔었다.

그 할머니한테 소용될 물건 중에 내게 있는게  뭘까?

나는 나중에라도 또 생길지 모르는데 할머니는 안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챙긴게 피로회복영양제와 물건너 온 화장품, 포장도 안 뜯은 속옷, 봄내의 한벌,무릎담요 등.

할머니는 책값의 거스름돈을 줘야 한다셨다.

그냥 두시라고 했고 건강하셔서 자주 만나자고 하니 곧 천국가실거라셨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이 얼굴 이뻐져서 남편한테 사랑받아야 한다셨다

난 충분히 이쁘다고 하면서 한바탕 웃었다.

할머니의 낡은 가방 깊숙히 영양크림을 밀어넣었다.

후줄근하던 낡은 가방이 뺑뺑하게 배가 불렀다.

혼자서 저녁 잡수실 걸 생각해서 남은 반찬을 챙겨드리려니 그러면 정말 미안해서 안된다셨다.

 

오똑한 콧날에 서글서글한 눈매

쌍꺼풀진 커다란 눈이 너무너무 선해보여 사슴처럼 외로워 보이셨다.

한 여자의 인생이 이렇게 사라지려나......

아들딸들이 다 자랐고 남들이 알아주는 직책에 있어도

한 많은 여인이 되어버린 엄마의 인생을 되돌려 주진 못한다.

늘 그 자식들 걱정하는 마음은  여늬 엄마들과 같은데

집으로의 기억은 그 할머니를 떠돌이로 만들고 말았다.

내년이나 아님 올해 말쯤 또 그 할머니의 방문이 이어질지는 나도 모른다.

그 할머니의 예언처럼 정말 천국으로 가실지....

내게 있는 선물들이 더 줄어들더라도 그 할머니가 건강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