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나름대로 말조심을 하면서 산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나도 모르게 말실수를 할 때가 종종 있다.
원래 말수가 적었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갑자기 말수가 늘다보니
미처 준비가 안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한참 지난 후에야 앗차! 싶을 때가 있는데 다시 주워담을 수도 없고,..ㅠ
게다가 영영 모르고 지나가는 말실수는 또 얼마나 많을까?
요즘 들어 갑자기 아주 오래 전에 한 말실수가 자꾸만 떠오른다.
그녀를 만나면 꼭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떤 실수인고 하니,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대신 만족시켜줄 딸을 하나 꼭 낳고 싶었다.
처음부터 이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내가 갖고 싶었던 것들, 누리고 싶었던 것들,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 등등
모든 것을 내딸에게 쏟으며 대리만족하고 싶었던 것같다.
둘째로 그렇게 바라던 딸을 낳고 보니 나는 눈에 뵈는게 없었나 보다.
더구나 모든 면에서 나보다 훨씬 나은 것같은 딸을 보면서
기세등등했다고 해야 옳을 것같다.
겉으로 유난스럽게 굴진 않았지만 속으로 그런 마음이 가득했던 탓일 것이다.
그녀가 아들만 둘 가진 엄마인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그 앞에서 \'아들만 둔 엄마들은 참 불쌍하다\'는 말을 내뱉은 것이다
그녀가 \'우린 둘째가 딸노릇을 해\' 그러면서 웃어넘길 때도
\'딸노릇을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아들은 아들이야\'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녀가 그 때 어떤 상처를 받았을까? 아니면 다행히도 그냥 흘려들었을까?
자꾸 마음에 걸린다.
아들이든 딸이든 내가 잘 나서 낳은 것도 아니고 사람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닌데
내가 왜 그랬을까?
이제는 입을 열 때마다 여러 번 생각하고나서 해야지...결심하지만
잘 지켜지는지 어떤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들 딸이 장성하고 보니 아들 딸 성별의 문제라기 보다
각각의 성품이나 개성에 따라 다른 것같다.
내딸은 어려서부터 남의 딸들처럼 재잘재잘 밖에서 일어난 일을 다 얘기해주거나
애교를 부리는 일도 없었지만 그냥 나 닮아 그러려니 흘려넘겼는데
커갈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해지는 것같다.
한마디로 시크한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라고 할까?
아마 남의 집 과묵한 아들에 비유하면 딱 맞을 듯하다.
뭔 비밀이 그렇게 많은지 생전 밖에서 일어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법도 없고
불필요한 말을 하는 법도 없어서 하루종일 가야 대화 한 마디 안 나눌 때도 있다.
뭘 물어도 늘 단답형이다.
\'네, 아니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도 아무리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른 부모 입을 통해서 들을 때가 많았다.
\'좋은 일은 왜 얘기 안 했니?\' 물으면 \'그걸 굳이 뭐하러 말해?\' 그게 전부였다.
이제는 그런 말을 해줄 다른 학부모들도 없다
내가 아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잘 참다가도 어떤땐 도대체 얘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밖에 나가선 누굴 만나고 뭘 하고 다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얼마나 답답한지 모르겠다.
오죽해야 내가 \'크렘린성\'이라고 부를까?
친구들이랑은 마음을 터놓고 살긴 하는건지? 시집을 가면 딸로서도 나아질건지?
아후..답답해
내가 아들만 둘 가진 엄마 마음 아프게 한 댓가인지도 모르겠다.
이제와서 내딸을 통해 내 잘못을 깨닫게 된다.
그나마 아들이 미주알 고주알 다 이야기 하는 성격이고
붙임성있게 말시중을 잘 들어주니 낫지, 만약 아들까지도 그랬더라면
어쩔 뻔 했을까?
그녀의 둘째 아들도 어쩌면 딸노릇을 잘 하고 있을텐데
할 수만 있다면 내가 한 말을 취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