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남편의 동의
남편은 내가 영어로 인해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어를 더 잘 했으면 좋겠다는 푸념이 일상이었으니까. 특히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이 높은 자리로 영입되었을 즈음 내 짜증은 최고조였다. 이 무렵 남편이나 애들은 나를 피하는 눈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작정하고 나는 남편과 술 한잔을 하자고 하였다. 남편도 선뜻 응하였다. 아마도 내가 왜 짜증을 그렇게 심하게 내는지 알고 싶어했을 것이다.
술자리를 갖던 날 나는 남편에게 일방적인 선언처럼 얘기했다. ‘영어 공부하러 외국에 1년 정도 가야겠다’고. 영어에 대한 내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남편이지만 이러한 폭탄선언은 예상하지는 못한 듯 했다. 놀라서 이유를 캐묻던 남편에게 내가 한 얘기는 대충 이랬다.
‘영어 때문에 더 이상 직장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영어만 배워오면 더 나은 자리도 충분히 얻을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지금 회사는 더 이상 자리가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되지를 않는다. 1년 정도만 갖다 오면 영어는 마스터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내 경력에 더하여 더 좋은 직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차마 훨씬 어린 두 친구가 나보다 높은 자리로 왔다는 얘기는 하지 못했다. 남편을 설득하는 자리임에도 그 얘기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은 여러 가지 우려를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비용문제, 애들문제, 자신의 생활문제 등등. 그런 여러 가지 문제제기에도 나는 내 결심이 확고하고 더 이상 다른 대안은 없다고 강하게 얘기하였다. 결혼 후 지금까지도 없었고, 아마 이후에도 없을 유일한 내 자신에 대한 시간과 금전의 과감한 투자라고 강변하였다. 그래서였던지 남편은 며칠 생각해보고 정리를 한 후에 다시 얘기하자고 하였다. 그리고 약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남편은 종이 한 장에 자신의 우려사항들을 적어서 내게 물었다. 현재 내 직장은 어떻게 할 것인지, 1년이나 걸려야 하는지, 1년만 갖다오면 영어는 정말 마스터할 수 있는지, 그러면 지금보다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갈 가능성은 충분한지, 자신과 애들은 어떻게 할 건지, 애들도 영어를 배워야 할 학년인데 같이 가면 얼마나 드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비용은 얼마나 들며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1년을 가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사실 해외에서 영어공부를 1년 정도해야겠다는 생각만 해왔지 이러한 구체적인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도 그 물음에 며칠을 달라고 했다. 알아보고 얘기하자고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인터넷이며 유학원이며 알만한 사람들이며 여기저기 물어보고 조사하여 그 질문들의 답을 생각하였다.
첫째, 현재직장은 퇴직을 한다. 1년 후 더 좋은 회사에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지금 회사에 적을 두고 가는 것이 바람직했다. 지금 봉급이라든지 근로조건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1년 휴직을 회사는 허용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배수진을 쳐야 가서도 더 열심히 공부할 것으로 생각되어 사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거기에 더해 이 회사에서는 더 승진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도 한 몫을 했다.
둘째, 확실한 기간을 알 수는 없으나 1년 정도는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6개월은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고, 1년을 넘기면 안될 것 같았다.
셋째, 생각만큼 효과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해왔던 터라 일반적인 대화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1년이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루 24시간 영어밖에 쓸 수 없는 환경에서 1년이면 기대한 만큼 마스터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였다.
넷째, 내 경력과 업무에 대한 지식은 누구와 경쟁해도 자신이 있었다. 다만 영어가 문제였으므로 영어만 잘 할 수 있다면 1년 후 나를 데려갈 회사는 많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다섯째, 남편은 내가 없는 동안 당연히 불편할 것이고 나 역시 이점이 가장 많이 걱정되었다. 밥이며, 빨래며, 청소며. 그러나 이 때문에 가지 못하게 되면 영원히 기회는 잃게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후회와 스트레스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남편과 애들에게 전이되어 행복한 생활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의 적극적인 동의를 필요로 하였다.
여섯째, 영어공부에 대한 필요성은 나 자신에서 출발하였지만 애들에게도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었다. 현재 애들의 영어성적은 물론, 애들이 향후 사회생활을 할 경우 영어로 인해 나와 같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와 함께 가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다만, 비용이 문제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지 알아 보았다. 유학원에도 물어보고 해외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엄마가 학생비자를 받으면 아이들은 공립학교에 무료로 다닐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일곱째, 국가를 선택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먼저 친구의 아는 사람이 캐나다에 이민가 있는데 한국사람들 유학관련 업무를 돕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북미발음에 익숙해 있었고, 치안차원에서도 캐나다가 미국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했다.
여덟째, 비용은 일단 내가 학생비자를 받을 수 있다면 애들은 숙식비용만 추가로 들어가면 될 것 같았다. 물론 큰 돈이었지만 영어를 하지 못해 받았던 스트레스와 영어를 마스터한 후 향후 더 나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회비용적인 측면에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홉번째, 내가 두 애들과 함께 캐나다로 간다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남편이 혼자 살면서 청소하기에는 좀 크다고 생각되었다. 남편만 오케이한다면 적은 오피스텔 같은 곳으로 남편이 옮기고 이 집을 월세로 놓는다면 연수비용에 적지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러한 여러가지 남편의 우려에 대한 나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남편과 다시 얘기를 하였다. 내 얘기에 모든 남편의 우려가 해소가 된 것은 아닌 듯 보였으나 남편은 일단 오케이를 해 주었다. 그것은 첫번째 갈수록 더 심해질 내 짜증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던 현실 때문이었을 것이고, 두번째는 아이들이 같이 간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안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도 사회생활에서 경험하였던 영어실력 약자가 가진 고충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기 싫다는 얘기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결혼한 남자들이 원하는 자유를 얼마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작용하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렇게 영어권 국가에 영어공부를 하러 가야겠다고 결심한 후 가장 장애라고 생각되었던 남편의 동의는 원칙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준비 과정이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