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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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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골에서 생긴 일.


BY lala47 2010-10-20

지난 해 내가 처음으로 둥지를 튼 곳은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전원마을이었다.

그 집 여주인은 나와 동갑으로 내 친구의 친구였고 근이양성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장애인이었다.

나는 그 곳에 일년동안 머물기로 계약이 되어 있었고 일년간 장편 소설을 끝내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근이양성은 유전병으로 근육이 수축되어 가는 병이라고 했다.

늘 눕거나 앉아서 생활을 하는 그녀는 종일 T.V를 보며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국가에서 백육십시간 도우미를 보내어주는 일급 장애인이었다.

우리가 낸 세금이 이런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

오남매중에 혈액이 A형인 세명이 근이양성이라는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처녀적에 기계체조 선수였다는 그녀는 스물여덟살에 등산을 하다가 갑자기 다리에 기운이 빠져서 병원에 가게 되었다고 했다.

형제들을 다 데리고 오라는 말에 맏딸인 그녀는 네명의 동생들을 데리고 병원에 다시 갔다고 한다.

혈액이 O형인 두 동생은 병이 없었고 A형인 여동생과 남자 동생은 같은 병이라는 판명을 받았다.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고 병이 조금씩 진전되는 동안에도 열심히 돈을 벌었다.

근육을 아껴서 쓰면 진전이 늦다는 말에 그녀는 앉아서 하는 일을 선택했다고 한다. 내가 본 그녀의 동생 사랑은 부모 못지 않았다.

택시회사를 운영했고 병이 깊어진 다음에는 목욕탕에서 카운터 일을 보았다고 말했다. 전원주택을 장만하기까지 그녀는 많은 노력을 했고 건강이 좋은 동생 이름으로 집을 장만하였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부동산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이층에는 그녀의 건강한 동생 가족이 살고 있었다.

조카들은 이모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서 도움을 주곤 했다.

“좌절 하지 않았어?”내 물음에 그녀는 담담히 대답했다.

“조상 탓을 하면 뭐 할거며 비관을 하면 어쩌겠어. 해결 방법이 없잖아. 그냥 내 운명이려니 하는거지.”

나는 그녀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그녀는 나의 스승이었다.

내가 겪는 아픔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다리는 굳어서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고 두 팔중에 왼쪽은 굳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녀의 웃음소리는 나의 기를 죽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녀의 웃음은 밝았다. T.V프로를 보면서 깔깔대고 웃고 큰소리로 동생들과 통화를 한다.

“병신 육갑하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걸직하다.

말을 듣지 않는 동생에게 퍼붓는 말이었다.

여동생은 비관을 하여 매일 술을 마시다가 결국에는 간경화로 세상을 뜨고

남자 동생은 장애인 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잘 살아가고 있다.

장애인들의 데모에 주동이 된 동생에게 충고를 하고 있었다.

장애인 데모대 막다가 전경들이 몇 명이나 다쳤는줄 아냐?

병신들이 성한 사람 잡아먹게 생겼다. 병신들 육갑 하지 말고 작작들 해라.

국가에서 이만하면 잘 해주는거지 뭐냐.“

통화소리를 듣고 있던 나는 당황했다.

놀란 내게 말한다.

“사람들이 병신 육갑한다고 하지 않겠냐구.”

처음에 나는 그녀의 입담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술 한잔을 하자고 제안했다.

“내가 짬뽕 살게. 한잔 하자.”

그녀가 짬뽕값을 내었다.

중국집에서 배달해온 짬뽕을 놓고 우리는 소주를 나는 맥주잔을 들고 건배를 했다.

“한잔을 마셔도 독주를 마셔야 술맛이 나지.”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술이 오른 김에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소원을 말해봐.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야?”

그녀는 거침없이 말했다.

“남자랑 한번 자보고 싶다.”

너무도 뜻밖의 대답이었다.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자기는 자봤으니까 그런 말 하는거지. 난 이대로 죽으면 처녀 몽달귀신 될 것 같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주말이면 친구가 찾아온다.

내 친구이기도 하고 그녀의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한 친구도 말이 걸다.

“야! 네가 국가를 위해서 뭘 한게 있다고 우리가 낸 세금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잇냐?”

나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어서 슬며시 방을 나온다.

그녀는 내게 드라마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을 좋아했다.

“자기는 글을 쓴다면서 왜 드라마를 안 보는거야?”

“자기가 이야기 해주면 되지 굳이 볼 필요는 없잖아.”

나는 그녀가 신나게 들려주는 드라마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녀의 부모님 제삿날 나는 음식장만을 하여서 제사상을 차려주었다.

감동을 한 그녀는 동생들에게 내가 차린 음식을 자랑했다.

“내가 늙으막에 복이 있나봐. 일류대학 나온 사람의 시중을 받을 줄

어떻게 알았겠어.“

‘다음엔 서울대 출신을 만나도록 해. 서울대가 훨씬 나을거야.“내말에 그녀는 다시 깔깔댄다.

변호사로부터 이혼 판결 서류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외출을 하던 날 그녀는 내게 말했다.

“결국 그렇게 결정이 나는구나. 이왕 이렇게 된거니까 마음 굳게 먹고 다녀와.”

변호사 사무실에 들려서 서류를 받아서 구청에 신고를 하고 나오면서 예상치 못한 눈물이 앞을 가렸다.

공원에 앉아 한참동안 눈물 바람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양주로 돌아오니 그녀가 내 눈치를 살핀다.

“울었구나. 그래.. 오늘은 울지 않을 수 없겠지.”

“그래. 오늘만 울게.”

내가 육개월만에 그녀의 집을 나오게 된 이유는 그녀의 동생 하나가 누나의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했기때문이었다.

“멀쩡한 놈이 더 속을 썩여. 그래도 동생인데 어쩌겠어. 갈데가 없다는데 오지 말라고 할수도 없잖아.”

나는 그 말에 수긍을 하고 작은 빌라를 얻어서 오산으로 이사를 했다.

“에레베타도 없는 삼층으로 이사를 하면 난 갈수도 없잖아.”

그녀가 불평을 한다.

“이봐. 난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하느님께 감사를 해. 너 이래도 엄살 피울래 하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 가. 자기한테 난 많은 것을 배웠어. 이까짓 아픔쯤이야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긴거지.”

“이삿날을 왜이리 급히 잡았어? 급하진 않은데 말이야.”

“이왕이면 독립만세 부른 날 하려고 삼월 일일로 정한거야. 나 진짜루 독립만세 부를려구.”내 말에 그녀는 소리 높혀 웃었다.

가끔 그녀에게 전화를 한다.

“몸은 어때?”

“아주 좋지.”

“내 책 보내줄게. 읽어봐.”

“조카더러 사오라고 하면 되지 뭐 하러 보내. 한권이라도 내가 팔아줘야지.”

“그냥 내가 주는거 받아.”

“고마워.”

책을 읽은 그녀가 전화를 했다.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

“남의 아픈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으면 되겠니?”

오랜만에 그녀의 큰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내게 많은 것은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