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큰 딸은 별거에 들어갔다.
딸은 강원도 춘천, 사위는 경남 창원.
결코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가고 싶으면 금방 달려가서 볼 수 있는 거리도 아니다.
사위가 연애할 때 그 먼 거리를 오가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사돈댁에서 얼른 결혼을 시키자고 하셨던건데
결국 대학 졸업을 못하고 4학년 봄학기에 결혼을 했었다.
결혼을 하기 전에 후회 안할 자신있냐고 다짐을 받았는데
사랑에 죽고 살기를 했는지 후회 안 할 자신있다고...
오빠(사위)만 있으면 세상 다 가진 것 같을거라고 하더니만
사위도 마찬가기 우리 딸만 곁에 있으면 아무 욕심도 안 낼거라고 그러더만
연애는 연애고 현실은 어디까지나 냉정한 현실.
결혼과 동시에 머나 먼 과테말라에 파랑새 비슷한 것을 잡으러 가더니
파랑새는 커녕 낯선 나라에서 고생만 바가지로 하고 인생공부 오지게도 비싸게 하고 돌아왔다.
약 2년 동안 낯선 나라에서 이것저것 경험도 했겠지만 현실이 결코 녹녹한 것이 아니란 걸 깨닳았으리라.
사기란 것도 당해 봤고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른 이중의 얼굴도 만나봤단다.
둘 다 세상에 시달리지 않았었고 곱게만 자라 세상물정 모르고 뛰어 든 결혼생활과 외국생활.
2년이 채 되지 못했던 외국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을 때
돈을 벌었다기 보다는 몸만 성해서 돌아 온게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했던지...
철부지가 혼자도 아니고 둘씩이나 좌충우돌했으니...ㅋㅋㅋㅋ
귀국 후 바로 직장이 되어 둘 다 이삿짐을 정리 할 시간도 없이 맞벌이를 했었다.
딸도 집에서 노는 것 보다는 생활비라도 번다는 생각으로 직장엘 갔었는데
의외로 보수도 좋았고 보람도 있엇지만 대학 졸업반인데 그 남은 공부가 아깝고
대학졸업장이 없이 자존심이 상해서 약 오르더라며 남은 학년을 마져 공부하기로 했었다.
그래도 며느리고 누구의 아낸데 쉽게 가정을 비우기도 그렇고 해서 주저하고 있던 차에
사돈 듣는데서 사위가 대학졸업장없이 직장 구하기가 그런데 대학을 마치도록 해 주자고
별거를 자청했단다.
큰 반대없이 별거에 동의를 해 주셨고 드디어 오늘
딸은 큰 박스로 세 박스의 짐을 챙겨 들고 인사차 우리집에 왔다.
집은 대학동기가 세 들어 사는 투룸에서 같이 동거하기로 했고
다른 큰 짐이 없으니 그나마 이삿짐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 친구는 딸애의 절친인데 대학에서 만나서 아주 친하게 지내는 선이 고운 여자친구다.
딸의 결혼식 때는 그 친구의 엄마도 먼 길에 참석해 주셨고.
춘천에서 공부할 때 현지모로 임명해 두었던 맘씨 착한 친구 엄마가 계셔서
3년 동안 어려운 일 없이 잘 있었는데 또 신세를 지게 생겼다.
물론 내쪽에서 고마움의 표시로 물질적인 공세는 많았지만 아이 곁에 맘 편히 기댈 어른이
계시다는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던지.
결혼은 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어린애 같다.
그저께 사위가 휴가를 맞아 둘이서 같이 와서 하룻밤 쉬다갔는데
엄마 집에 오니까 너무 편하고 좋다는 말에 남편이 그렇게 좋으냐고 했더니
대답이 웃지도 못하겠고 참...ㅎㅎㅎㅎ
\"그럼요~~오빠 신경 안써도 되고 밥 안해 줘도 되는데 얼마나 좋아요~~ㅎㅎ\"
남편이 떾끼 이놈아~~`하곤 웃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이란 걸 해 놓고 보니 여러가지로 힘들고 어려웠으리라.
한창 애들하고 멋내고 대학 다니며 놀러 다닐 나이에 결혼이란 족쇄를 달았으니...ㅋㅋㅋ
일이 잘 풀렸으니 망정이지 결혼했는데 대학 졸업장이 무슨 대수냐고 딸의 소망을 묵살해 버렸다면
앞으로 결혼 생활 내도록 딸은 자존심 상해 했을 거고 시부모님을 향한 마음이 누그럽진 못할 것이다.
순순히 별거를 허락하셨고 사위도 적극적으로 밀어 줬다.
곁에 사신다는 작은 시누님네가 딸애를 많이 이해해 주셨고 딸애의 시댁에서의 입장을
유리하도록 배려 해 주신다고 했다.
가령 사위가 요즘 계절 탓으로 땀을 많이 흘리고 얼굴이 좀 안되 보여서 우리 아들 요즘 많이 말랐네~~
그런 말씀을 안사돈께서 하신 날 작은 시누님이
\"엄마는....며느리 듣는데서 그런 말 하면 며느리가 잘 못 해 먹여서 그런 줄 알잖아요~~
나도 우리 시댁가서 시어머님이 내 듣는데서 그런 말씀하면 기분 엄청 나쁘겠는데
다신 며느리 듣는데서 그런 말씀 마세요 지발.\"
그렇게 딸애의 입장을 대변해 주신단다.
사위 역시도 자기 엄만데도 며느리 듣는데 그런 말씀 하시면 안된다고 그런다니 고마운지 미안한건지...
어린 며느리의 입장을 잘 이해해 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시는 시어머님이신데도
작은 시누님네나 사위까지도 철부지 딸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개강은 8월 말 쯤이라고 했는데 오래 휴학을 했고 다니던 대학교에 가서
이것 저것 준비할 것도 많다면서 오늘 짐을 싣고 둘이서 춘천까지 간다고 들렀다.
남편하고 둘이서 딸의 대학 등록금을 대 줘야 하나 마나로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있자로 결론 내렸다.
결혼한 딸이고 또 둘이서 그런 정도의 시련을 견디면서 인생공부하는 것 또한 사회생활공부라 여겼기에
잘 다녀오고 혼자 남은 생홀아비한테 전화나 자주하고 시댁에도 전화 자주 드리며
공부할 기회를 일찍 줘서 고맙게 여기며 효도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결혼생활에 안주하기를 바라고 졸업장의 의미를 간판정도로만 알면 어쩔건가?
부부란 서로 떨어져 있어도 애틋하고 그리워야 하는데
아직 신혼의 베일이 채 벗겨지지도 않은 햇부부들인데 올 겨울까지 그리고 내년 여름까지
중간에 겨울 방학이 있긴 하지만 많이도 보고플건데 잘 이겨나가겠지 뭐...ㅎㅎㅎㅎ
왜 그런지 사위는 모르게 딸애의 손에 비상금을 챙겨줬다.
친정에서 뒷돈을 챙겨 준 걸 알면 사위가 딸애의 뒷바라지에 소홀할까 봐
아무도 몰래 너 혼자 어렵고 힘들 때 요긴하게 쓰라며 남편이 봉투를 전해주란다.
큰 딸은 다른 두 아이들보다 더 잘 안다.
엄마나 아빠가 그걸 마련하기까지 이 여름에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하는지...
모양만 사람무늬로 살지 완전 개념없는 사람들처럼 엉망진창으로 살아간다는걸....
그래서 통장번호를 불러라고 그래도 굳이 마다했다.
그래도 염치는 있다 싶어서 그럼 춘천 올라갈 때 인사나 하러 집에 들리라고 우회적인 방법을 썼다.
페키니즈를 키우고 있었는데 춘천 다녀 올 때 까지 빈집에 혼자 두기 그렇다고
우리집에 맡기러 왔길레 사위 몰래 딸의 손에 돈을 줬더니 미안하다며 울먹인다.
\"김서방 알라...그만 빨리 나가 봐.
그리고 아껴쓰고 티 내지 말고...
생활비는 네 스스로 알바 뛰면서 해결해라.
학비만 해도 박찰건데 알았지?\"
분홍색 원피스에 하얀 볼레로를 받쳐 입은 딸은 영락없이 앳된 여대생이다.
하얀 면 티셔츠에 베이지색 반바지 차림의 사위 또한 젊은 대학생폼인데 부부라니 그것도 3년차ㅋㅋㅋㅋ
가을학기와 내년 봄학기만 마치고 졸업하면 아기도 가질 계획이라고....
성질 급한 편이 아닌 난 벌써 앙증맞은 아기 신발을 두 켤레나 선물 해 줬다.
이 신발에 맞는 애기 얼른 낳아주라고..ㅋㅋㅋ
기분 좋은 별거에 들어간 큰 딸은 가정이라는 짐을 훌~훌~벗어 던진 홀가분한 몸과 마음으로
춘천가는 차에 몸을 싣고 얼굴 표정도 밝게 인사도 가볍게 떠나갔다.
선이 고우며 하얗고 긴 손가락을 하늘하늘 흔들기까지하면서 ...ㅎㅎㅎㅎ
\"엄마 아빠 잘 다녀 올께요~~건강하세요\"
어젯밤 소나기가 내린 뒤의 밝고 뜨거운 햇살 속으로 딸이 탄 차는 반짝이며 멀어졌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온 딸의 문자 메세지.
\"아빠... 웬 돈을 이렇게나 많이 주셔요?
잘 쓸께요...
아껴쓰고요.ㅠㅠㅠㅠ사랑해요~~~~ 엄마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