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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행복


BY 카라 2010-07-20

주말마다 남편은 일하러 나가고 몇주째 야외 나들이를 하지 못했다.

나들이라고는 주말농장가기에도 바빠 꿈도 못꾸었는데 이번 주말은 남편이 쉰다고 한다.

그동안 집안일을 무척 잘 도와주는 남편이었기에 주말마다 그것도 밤샘작업을 하고 피곤해서

돌아오는 남편을 보니 집안 청소를 감히 도와달라는 말이 안나왔다.

욕실이 2개라 그것 청소는 이미 내게 넘어온지 오래되었고 옷다림질도 최근에는 내가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미 집안일은 거의 전부 내 일이 되고 말았다.

직장에서 돈을 버니까 돈을 벌지 않는 내가 당연히 집안일은 하는 것은 맞지만

한편 생각해보니 그렇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다 싶다.

그리고 피곤하다면서 애들이 책 읽어달라는 것도 못하겠다고 드러눕는 것을 보니 한편으로

마음이 좀 그랬다.

사실은 나들이를 안간지 오래돼서 일요일만큼은 함께 나서고 싶었다.

비가 온대서 스파를 갈까 하다가 갑자기 성수기 요금이 적용되면서 이제는 아이들도 입장료를

받는 개월수가 되고 보니 길어야 겨우 2시간 하고 오는 스파를 20만원이나 내고 갈 것은

아니다 싶었다. 가까운 데 한강 수영장도 4천원밖에 안하는데 그깟 스파 참자.

그리고 서울 근교 나들이 장소 몇개를 골라서 남편한테 내밀었다.

이중에서 어디 가면 좋겠냐고...남편은 거리를 생각하더니 서울안으로 가자 그런다.

내가 내민 곳 중하나는 서울시내에 있는 홍릉 수목원이었다.

사실 남편이 피곤해하는 것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일이 피곤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은 새벽마다 빠지지 않고 간다.

체력관리,건강관리를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은 나 역시도 찬성이다.

문제는 체력이 고갈될 정도로 축구나 야구를 하고 와서는 피곤하다면서 쓰러지는 것때문이다.

\"가까운데 갈거니까 우리 청소하고 가자!\"

했더니 남편이 이미 샤워했는데 진작 이야기하지! 하면서 발끈한다.

여태껏 한번도 그러지 않았는데 나는 이게 뭠미? 깜짝 놀랐다.

야근때문에 그동안 청소를 도맡아 했더니 이제는 으레 집안일은 모두 내 것이라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아뿔싸!! 나의 실수다.

나는 남편이 돈버는 기계로 전락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최소한 집안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청소기를 돌릴줄 알고 아이가 읽어달라는 책 한권쯤은

아무리 피곤해도 해주는 아빠였으면 바라기때문이다.

어쩌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에서 팡팡 놀고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너는 이렇게 편하게 지내는데 나는 주말에도 야근하면서 힘든데 그 정도도 이해못해주나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어젯밤에 달콤한 목소리로 사랑한다 어쩐다하는 것은 다 뭘까?

사실은 잘 모르겠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면서

순간 오싹해지기 시작했다.

글쓰기 모임에서 어떤 아줌마의 말이 생각난다. 자신의 남편이 그랬단다.

나는 당신을 딱 오십까지만 먹여살려줄 수 있다. 그 뒤부터는 네가 나를 책임지고 먹여살려라.

어쩌면 우리 남편도 이런 생각으로 시한부 직장생활을 견디며 연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 복잡한 생각을 하며 홍릉수목원을 향했다.

숲에서의 상쾌한 산림욕을 기대하며 가벼운 산책을 생각했던 우리는 숲속을 걸어들어가면서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숲이 생각보다 오르막길이 반복되는 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피곤해하던 남편은 힘들어했다.

오히려 애들은 뛰어다니고 난리였다.

언제 한번 산행 한번 가자고 했던 그의 다짐은 산산조각이 될 것 같다.

나는 굽이 있는 샌들에 원피스를 입어서 힘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운동화신고 올 것을...

그것만 아니면 뛰어다닐 수 있는데...

남편은 누가봐도 착실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다.

집에서는 꼼짝도 하지 않고 새언니만 부려먹는 울 오빠같은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더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점점 갈수록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차이가 나는 것은 내가 잘할수 있다라고 항상 격려를 해주는 것이다.

나..사실은 요즘은 너무 행복하다.

오랜 직장생활에 너무나도 힘든 시기를 지냈고 쌍둥이 낳으면서도 그랬다.

내 평생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 얼마나 고맙고 기쁜지 모른다.

그래서 일에 지친 남편이 안쓰러울때가 많다.

하지만 예전만큼 남편도 내가 고생한다, 수고한다 그런 말을 요즘에 와서는 잘 하지 않는다.

나의 사악한 온갖 생각들이 남편의 숭고한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아니면 정말 자격지심인걸까?

다른 집은 어떨까? 집에서의 가정주부란 위치가 이렇게 존재감을 위축시키는 일일까?

나의 이런 행복한 시간이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