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란 목표를 앞에 둔 아들의 일상은 늘 부산했다.
만날 새벽까지 공부하는 건 기본이었다.
흡사 대입을 앞둔 고 3의 수험생의 모습을
보는 것, 아니 어쩜 그 이상인 경우도 잦았다.
그같이 열심히 하는 아들을 보며 반드시 취업에
성공하길 바랐음은 아비로써 당연한 것이었다.
어느 날 입사지원서를 쓰던 아들이 학교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왜?”
이는 재학증명서를 첨부해야 하는 까닭이라고 했다.
그렇게 동분서주와 노심초사로 진력한 아들은
올 초에 마침내 자신이 목표로 한 기업에 너끈히 취업했다.
얼마 안 되어 아들의 대학 졸업식이 도래했다.
많은 친구와 선,후배들도 아들을 찾아와 졸업과 취업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아들에게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교육을 모티프로 한 현상공모가 있어 얼마 전 원고를 완성했다.
규모와 상금이 큰 때문인지 여하튼 작성한 원고는
다소 까다로운 규정의 의거하여 따로 5부씩을 철(綴)하고
별도로 원고가 내장된 CD도 함께 등기로 우송했다.
한데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오기를 재학증명서를 추가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유추하건대 고작 초졸 학력의 무지렁이가 그러나 현재는
사이버대학을 다닌다고 하니까 아마도 확인 차원에서 그리 요구하지 싶었다.
하는 수 없어 대학의 행정실장님께 부탁하여 나의 재학증명서를 팩스로 받았다.
그걸 다시 봉투에 넣어 등기로 보냈는데
보내기 전엔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토록이나 하고팠던 공부를 하지만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극명한 지난 풍상의 세월이 파노라마로 펼쳐진 때문이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입사하여 앞만 보고
뛴 결과 전국 최연소 영업소장의 위치에까지 오른 적이 있었다.
이후 신입사원을 뽑아 교육을 시키는 몫도 나였는데
그럴라치면 신입사원들이 제출한 이력서 외에도
첨부한 졸업증명서 내지는 재학증명서를 열람하기도 다반사였다.
그러자면 ‘나는 왜 이들처럼 많이 배우질 못 했던가?’ 라는
고민의 먹구름에 함몰되고 하였다.
그렇긴 하더라도 그들을 부러워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부러우면 지는 거니까.
뜻한 바 있어 재작년부터 사이버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같은 만학(晩學)의 토대는 수십 년 간 축적한 방대한 독서와 더불어
나이는 고작 숫자에 불과하다는 우쭐한 자신감이란 이중주가 빚어낸 합작품이다.
얼마 전 모 문학회를 통하여 수필가로 등단했다.
나의 등단작품이 실린 책을 50권 받았는데 오프라인 수업 때
다시 만날 사이버대학 동기생들에게도 건넬 요량으로 갈무리를 해 두었다.
재학증명서(在學證明書)는 이 사람이
어느 학교에 적(籍)을 두고 있음을 증명하는 문서이다.
돌이켜보건대 따지고 보면 아무리 허섭스레기같은
삶일지라도 우리네 인생에서 버릴 건 없다고 생각한다.
단점은 버리되 장점만을 모아 취한다면 이는 분명
후일에 있어선 성취와 성공의 자양분과 시금석(試金石)까지도 되는 것이기에.
그래서 말인데 현재의 삶이란 현장의 ‘학교’에서도 여전히
열심히 공부하는 ‘재학생’이 되고픈 건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