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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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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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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입니다


BY 선물 2010-05-14

시어머님은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탓을 잘 하신다.

더구나 나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일이라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내 탓을 하신다.

아들이 잘못해도, 손자가 잘못해도 결국은 며느리 탓이 된다.

정말 황당하고 어이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당연히 나는 억울하다. 예전엔 속으로만 억울했는데 요즘에는 잘 참아지지가 않는다.

겉으로 내색한다.

연세 많으신 어머님은 그런 며느리가 참 싫으시다.

한 마디 하면 그냥 예 할 것이지, 전후 사정을 따지고 드는 며느리가 당돌해서 정이 떨어진다.

내가 늙고 병이 드니 며느리까지 나를 무시 하는구나 서럽기도 하다.

그래서 그러고 싶지 않지만 참을 수가 없어서 종종 딸자식에게 며느리 흉을 하기도 한다.

딸들은 대부분 그냥 묵묵히 듣기만 할 뿐이다.

그래도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감정을 수습하려고 애쓴다.

많은 경우, 며느리가 먼저 잘못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나름대로 애쓰는 며느리와 아주 등 돌리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운 것은 밉다.

그래서일까, 며느리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상하게 자꾸 며느리가 듣기 거북해 할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요즘엔 며느리가 그런 자신의 말을 숫제 못 들은 척 하려 하는 모습까지 볼 때가 있다. 참 괘씸하다.

 

나는 그런 어머님이 정말 밉다.

20년 넘게 함께 살면서도 늘 남이다.

며느리는 결국 남이다.

그건 어머님이 미리 못 박아두신 선이다.

효심 지극한 따님이 네 분이나 계셔서 새로운 딸 같은 것 전혀 아쉽지 않은 어머님.

워낙 매운 시집살이로 시어머니께 미움만 가득 가지셨던 당신.

그래선지 당신 며느리를 늘 당신 잣대로만 재시고 신뢰하지 못하신다.

물론 오랜 세월 함께 했음에도 여전히 나에 대한 신뢰 없음에는 내 탓이 클 것이다.

내가 성의를 다해, 진심을 다해 사랑으로 모셨다면 절로 감복 하셨을 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내겐 사랑의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결혼하자마자 우리 부모님을 흉보시고 당신 아들에게 무조건 복종하기를 바라시는 봉건적 사고를 가지신 어머님께 애정이 생기질 않았다.

사실 시어머님이 자식에게 자애와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하신 훌륭한 어머니이심은 충분히 인정되었다.

내 친정 부모님을 생각해도 우리 어머님만큼 자식에게 헌신적이진 못하시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당신 자식들에게 지극한 효도를 받으심은 당연하리라.

그래서 진심에서건 의무에서건 그런 것을 굳이 따지기 전에 나도 며느리로서 할 도리 다하고자 노력하며 살았다.

하지만, 어머님의 사랑은 당신 피붙이에 제한된 것이었다.

아니, 사위 분들에 대한 지극한 섬김을 보노라면 사위자식은 피붙이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이 처음 선을 그으신 것처럼 며느리인 나는 남이었기에 철저하게 다른 대접을 받아야 했다. 나는 당신이 희생하시고 헌신하시는 일을 대신 해야 할 사람에 불과했다.

 

이번에 아버지의 병을 알게 되면서 어머님과 나는 더욱 멀어진 느낌이다.

내 아픔을, 내 애달픔을 전혀 알아주시지 않는다.

남 얘기하시듯 하시는 것이 그동안 밉든 곱든 맺어온 어머님과 나와의 인연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어머님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지만 최소한의 배려나 속으론 다를지라도 겉으론 나를 측은하게 여기시는 모습을 보이시는 것이 당연한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으시다.

 

나에 대한 마음이 어떠하시기에 저토록 드러내놓고 남처럼 표현하실까.

 

그렇다고 천성이 그러신 분은 아닌 것 같은데.

경우 바르고 예의 바르고 사랑도 많은 분이신데 나와의 관계에서는 정말 말 그대로의 옛날 고부관계 그 자체다.

 

그래서 내 맘에 찬바람이 분다.

미움이 자꾸 생긴다.

무엇보다 싫은 것은 미움 많은 내 맘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미워하기 싫다.

예전 어느 때까지는 그래도 연민이 남아 있었는데 왜 지금은 그마저도 사라진 것일까.

어머님이 내게 말씀을 건네시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어머님과의 자리를 피하게 된다.

그냥 평범한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되어도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면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채 어머님으로부터 상처 받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내 감정이 긁힌다.

어쩜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남편의 어머니를 미워하는 내가 나는 싫다.

툭 하고 받아치는 내 말에서도 분명히 가시가 느껴진다.

어머님 또한 나 못지않게 다치시리라.

 

죄 같다.

이 모두가 죄 같다.

 

얼마 전, 신부님께 고백성사를 보았다.

내 미움을 말씀드렸다.

서로 사랑하라는 가장 큰 계명을 어기고 미워하는 내 맘을 고백했다.

 

<정상입니다.>

 

내 고백을 들으신 신부님의 짤막한 답이었다.

아, 순간 뭔가가 나를 감싸오는 느낌이었다. 따뜻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아주시는 것 같은 큰 위로.

툭 눈물이 났다.

 

오늘 새벽미사에서 그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다시 위로를 받았다.

일상 속에서 짓는 소소한 죄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플 때 어쩔 수 없이 내지르는 비명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

그것을 지르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말씀이었다.

그런 것들은 일상 속에서 모두 용서 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무엇을 느꼈을까.

그래, 미움이 죄가 아니래.

아니, 죄는 죄이되 스스로를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는 것이래.

그러면서 미워하는 내 맘에 면죄부를 주자고 생각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좀 자유로워질 것 같긴 했다.

미움이 생기면 미워하고 어머님도 나를 얼마든지 미워할 수 있음을 수용하며 좀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마음대로 미워하자 생각하니 오늘은 어머님의 얄미울 수 있을 말씀들이 그냥 그러려니 들린다.

 

무언가 획기적인 변화로 내가 편해질 수 없다면 지금으로선 이렇게 받아들임이 그나마 살아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도.

 

그리고 가만가만 끄덕인다.

그래, 미우면 미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