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봄비가 촉촉하기를 넘어서 추적추적 오래도 내린다.
어제 오늘 제법 많은 봄비가 언 대지 속을 스며든다.
잠자는 씨앗들을 흔들어 깨우고 알이 굵어져야 할 마늘이며 양파들을
감싸안으며 땅이 부드럽게 일어나도록 한다.
제법 싸늘한데도 그 빗소리가 좋아 거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앉았다.
추녀끝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내다보면서 일주일 앞으로 다가 온 큰 딸의 귀국을 기다린다.
대학 4학년 되던 해 식목일에 결혼을 하고 그해 9월에 사위와 함께 먼 나라로 갔던 큰 딸이 돌아온다.
원래 계획은 3~5년쯤 공부도 하고 사회생활도 배울 겸 나갔는데 그 나라(과테말라)가 너무 허술해서
뻑..하면 총질에 피살사건이 메스컴을 때리는 통에 도저히 불안해서 두고 볼 자신이 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벌써 가게 셔터는 내려지고 집 밖으로 외출도 어렵다는 치안이 불안한 나라.
공권력보다는 폭력이나 범죄자들의 수효가 훨씬 많다는 나라에 아이들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귀국소식이 처음 있을 무렵 아르헨티나에 계시던 지인 한분이 아이들을 아르헨티나로 초대했지만
그 나라도 우리 나라와는 너무 먼 거리고 한번 떨린 가슴은 쉬이 가라앉지가 않아서 그냥 귀국을 재촉했다.
과테말라에 딸의 시숙되시는 분이 교회를 맡아 계셔서 전혀 생면부지의 땅은 아니었지만
그 외의 여러가지 어려운 점들이 너무 많았던 딸은 귀국을 결정했다.
사돈되시는 분들도 한국에서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아진데다 사남매 중 삼남매를 외국에 두시려니
그립기도 하시고 우리 사위가 막내여서 더 보고싶으시다며 귀국을 환영하셨다고 그러셨다.
이미 창원에 22평형의 작은 아파트를 마련 해 두셨고 신혼살림은 우리집 빈 방에 차곡차곡
포장 이삿짐이 올 때 그 모습 그대로 보관 중이니 아이들이 들어와서 살림을 하게되면 짐차로 실어다 주면된다.
퍼질러 주기 좋아하는 이 엄마가 다 없애버린 큰 살림들을 다시 해 넣어줘야 하니 목돈이 들어가게 생겼다.
신혼살림을 그냥 창고에 두자니 아까워서 필요한 집에 다 날라다 줬으니.....ㅎㅎㅎㅎ
덩치 큰 신혼가구를 다시 해 주려고 혼자서 가만히 계산을 뽑아보니 허그걱~~~`
장난아니네~~~ 이리 일찍 귀국해서 올 것 같았으면 그냥 두는건데...
시댁이나 친정인 우리나 다 나눠 가지고 퍼 날라줘 버렸으니 두 사돈이 큰일났다고 한바탕 웃었다.
곧 아이들이 들어 갈 아파트 도배 장판을 다시 하고 집 구경을 가야겠다.
어디에 무슨 짐을 옮겨다 줘야할지 미리 봐 뒀다가 가구며 가전제품들을 배치해야겠다.
남편은 가능하면 딸네집을 못 가게 하는 요즘 아빠가 아니라 옛날 사랑채에 머무는 근엄한 아버지같다.
평소에는 아이들하고 친구처럼 지내고 나랑도 친구처럼 연인처럼 쉽게 지내지만
친정엄마가 딸네로 자주 나다니며 살림에 간섭을 하면 사위가 부답스럽고 사돈댁이랑 껄끄럽다며
가능하면 멀리서 조언이나 해 주고 꼭 필요한 방문이 아니면 삼가하라는 좀은 섭섭한 아빠다.
너무나 어린 딸이 결혼생활을 어떻게 하나 궁금했어도 남편이 싫어하고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다.
그 대신 미니홈피를 통해서 자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살림의 노하우도 알려주고
조리법까지 이것 저것 알려 주는 모녀지간을 유지한다.
4월에 결혼하고 9월에 출국할 때 까지 한시간 거리에 있었던 딸집에 두번 정도?
섭섭하고 야속한 남편 덕분에 딸집에도 놀러 못 가고 간섭하러 가지도 못한다.ㅎㅎㅎ
그래도 너무 시시콜콜 사위의 이모저모를 알고 간섭하는 장모보다는 적당한 간격도 좋을 듯하다.
이제 귀국하면 애기도 낳을 계획이라니 아이고~~언제 내 딸이 저리 컸다냐???
임신을 하면 맛있는 음식도 해 줘야 하는데 그 때도 친정엄마의 출입을 막기만 해 봐라~~!!
눈 짝짝이 손주가 보고싶지는 않을 터.
입덧이 이 엄마처럼 없으면 좋겠지만 만약에 입덧이 있더라도 조금만 있었으면....
1년 하고도 5개월만의 귀국인데 마음이 좀 커져서 오려는지.
신출내기 주부에서 폼 좀 나는 주부가 됐을라는지?
애기도 안 낳은 몸매니 아직은 아줌마티는 안나겠지?
일주일 후면 나를 더 많이 닮아서 실망스럽다는 작은 그대향기 리틀향기를 만나겠다.
짐은 대충 다 정리했다고, 비행기에 몸만 실으면 된다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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