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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기고 싶었던 날의 단상


BY 蓮堂 2010-01-30

나를 이기고 싶었던 날의 단상

아침부터 이상하게 이유 없이 화가 나고 짜증스러운 날이 더러 있다. 간밤에 꿈을 잘못 꾼 것도 아니고 전날 못마땅한 일이 맘에 걸려 다음날 까지 달려 나온 것도 아닌데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비위에 거슬렸다. 이런 날 만든 음식은 모두 짜다는 학계의 발표를 뒷받침하듯 짜다 못해 쓴맛이 더 강한 반찬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했다. 좀처럼 음식 타박을 하지 않는 남편도 이날만큼은 은근한 잔소리를 반찬삼아 밥 한 공기를 억지로 비우는 시늉을 했다. 미안함 보다는 입맛 까다롭다는 말로 남편을 몰아세운 뻔뻔함은 아침부터 부글거리는 속이 식지 않은 탓이리라.

하루를 잘 보내려면 아침이 즐거워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당연한 이치를 정면으로 거부한 속내는 다분히 미필적 고의에 속한다. 이렇게 온몸에 가시가 박힌 날은 더없이 조심하고 자중해야 하겠지만 누군가를 찔러서 상처를 줘야 속이 후련할 것 같은 위험한 발상이 좀처럼 수그러들 것 같지 않아 속으로 구겨 넣으려고 음악을 틀었다. 그러나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평소에 그렇게 좋아하고 흥얼거리던 비틀즈의 ‘yesterday\'가 목에 가래 소리를 내면서 듬성듬성 마디를 만들어 내는 것 같아서 사그라지려던 김이 다시 뜨겁게 목을 달구었다. 계속 듣고 있으면 몸속에 내장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불안했다. 가래소리를 뱉어내던 비틀즈가 놀라서 노래를 멈추었다. 녹차를 마시려고 물을 얹었다. 현미녹차의 원산지가 중국이라고 쓰인 친절한 문구에 또 화증이 났다. 언젠가 소비자 고발 프로를 본 게 화근이다. 독성이 강해 사용이 금지된 파라티온을 먹고 자란 녹차 잎과 석탄가루로 범벅된 현미를 버무려서 티백을 만들어 아주 위생적이고도 맛있게 만들었다는 제조회사의 사탕발린 광고문구가 끓는 속에다가 기름을 부었다. 여태까지 두고두고 맛을 음미했던 녹차가 목을 타고 다시 기어오르는 듯이 목이 근질거렸다. 나쁜 놈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세상이지만 그 나쁜 놈들 밑에서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목을 대고 있는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미친 건 아무래도 시사프로를 보고 서둘러 조치를 한 내 센스에 점수를 주면서 팽창해 있던 화증이 조금은 빠진 덕분이다.

베란다 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버릇은 이렇게 속이 끓는 날은 어김없이 나온다. 하늘 색깔은 그날 기분에 따라서 달라 보이게 마련이다. 하늘이 코발트색을 띤 날은 기분 좋게 출발할 수 있는 날이지만 반찬이 짜고 노래에 짜증이 묻어있는 날은 어둡고 칙칙해 보인다. 싸리 빗자루에 쓸려진 새털구름도, 솜사탕같이 달고 부드러워 보이는 뭉게구름도 화증이 박힌 날엔 아무런 감흥이나 의미도 주지 못한다. 감성지수가 아래로 추락한 시점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짓이다. 아래로 내려다보니 주차라인 두개를 차지한 채 버티고 서 있는 간 큰 승용차와 하느님 말씀 운운하며 벨을 눌러대는 어느 종교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의 틀에 박힌 전도는 하늘색을 더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매사를 비틀고 꼬아서 벼랑으로 몰고 가는 듯한 두려움과 내 안에서 끓고 있는 화기가 밖으로 새어나와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 것 같은 불안함이 기어이 나를 밖으로 내 몰았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홧김에 서방질 한다’는 속담도 공연히 생긴 게 아닌 모양이다. ‘화’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정을 앞세우는 시한폭탄이다. 그러므로 살인이나 방화 그리고 자살로 이어지는 우발적인 행동을 저지른 밑바닥엔 ‘화’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죄의식이나 거리낌 없이 저지를 수 있는 것 같다.

틱낫한 스님의 저서 ‘화(anger)\'에서도 ’눈 돌리면 화나는 것 투성이다.‘라고 했다.

나를 염두에 두고 씀직한 그 책을 감명 깊게 읽었지만 한 구절이라도 새겨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얕은 지각으로 ’화‘를 삭이려니까 이렇게 힘이 들 수가 없다. ‘화’는 차가운 머리로 식히는 게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녹여야만 잔여물이 남지 않는데 화증이 나는 날일수록 서늘하다 못해 냉기가 도는 가슴이다. 그 가슴을 달구기 위해 아파트 뒤 야트막하게 엎드린 산으로 올라갔다. 감정을 추스르고 다스리려면 시간과 지혜 그리고 내 주변에 둘러쳐진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고 깊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지론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산은 아침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한달음에 올라간 나를 밀어내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늦게 왔다고 나무라고 있었다. 이왕 왔으니 몸에 박힌 가시와 터질 듯 팽창 해 있는 화기 다 털고 가라고 했다. 숨을 고르고 갈비가 수북이 쌓인 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무엇이 나를 그렇게 날을 세우게 했는지를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집히는 게 없었다. 어쩌면 어느 날부터인가 솜에 물 스며 들 듯 알게 모르게 내 정신세계를 점령한 지천명의 나이가 가져온 정신적인 병일지도 모르겠다. 정확히는 내 나이쯤에서 만만하게 둘러 댈 수 있는 갱년기 증세가 그 한계점을 못 이겨 아침부터 가시를 꽂고 불을 뿜었던 건 아닌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산에서 내려다 본 먼 땅바닥이 화만 나면 울렁거리는 내장을 지그시 눌러주고 있었다.

아침 일찍 산을 찾은 사람들의 무리가 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여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인사를 받고 보니 황당했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저들이 산을 찾아서 기를 받고 가슴을 열고 있는 동안 난 좁은 울타리 안에서 손톱 세우고 하늘 향해 종 주먹 들이대며 심지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터뜨릴 자신도 용기도 갖지 못한 불발탄이었지만 말이다.

불교의 경전에서도 이르기를 ‘백만 대군을 이기는 것 보다 나를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했지만 질 줄 알면서도 난 아침부터 나에게 도전을 했던 것이다.

패자는 말이 많은 법이지만 산은 말없이 들어주고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무척이나 낯이 설고 어색해서 사돈네 안방에 들어 앉은 기분입니다.

그러나 반가운 님들의 이름이 보여 그나마 한귀퉁이 차지한 자리가 그리 불편치는 않습니다.

종종 뵙겠다는 말 공수표가 아니길 바라는 맘으로 슬며시 글 한편 올립니다.

건강들 하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