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제8회
엄니요, 우리 엄니요
시골 비워 둔 집엘 왔다. 온통 풀이 자라서 지붕을 덮을 지경이구먼. 엄니가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고 얼마나 비통해 하셨을꼬.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쓴 살림살이며, 앞뒤 뜰의 무성한 푸성귀에 며늘 년 욕께나 하셨겠다. 아들은 귀해서 생전에도 쓴 소리를 하지 않으셨으니……. 허긴, 며느리에게도 싫은 소린 안 하시는 성미셨지. 지난 달 성묘 때 남정네들을 따라 다녀가긴 했지만, 이렇게 마음먹고 오기는 엄니가 가신 뒤 처음이다. 엄니가 시골의 이 집을 버리고 서울의 내 집에 오신 지가 벌써 8년째. 돌아가신 지도 해수로 올해가 2년째다. 나도 참 모질기도 했구먼. 어찌 그리 무심했을꼬.
구태여 핑계를 대라면 바빠서거나 아픈 병 치례 때문이라고 해 두자. 장사꾼이라는 것이 옆집 장사치에게 지는 것을 못 보는 터라, 특별한 일이 아니고는 문을 닫고 시골에 내려간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워낙 큰 병을 얻느라고 나도 쉬엄쉬엄 들어 누우며 누우신 엄니를 수발했으니, 이제쯤이면 내 병을 알고 딱했다고 가슴을 치시려나. 어른은 어른이어서 누우셨다지만 젊은 아랫것이 들어 눕기는 나도 고역이었지. 나는 넘기기가 힘들어 먹지 못해도 엄니는 속이 멀쩡하셨으니, 내 집을 떠나시는 날까지 잘 잡수실 수밖에. 그러니 그게 나에게는 더 없는 고역이었다는 말씀이야. 그도 지나고 보니 엄니에겐 서러운 일이었으리라.
아무튼 오늘 시골 집 현관문을 들어서니 괴괴한 엄니 냄새가 와락 다가온다. 전번 성묘 때 안방의 장롱이며 거실의 소파를 들어 내놓은 터라 한결 널찍하고 깔끔해졌다. 영감이 그 사이에 다니러 와서 걸레질을 했다지만 ‘고양이 세수하기’지. 우선 안방엘 걸레질을 해야 쉴 자리를 만들겠다. 겨우 안방을 치우고 나오니 울랄라~ 별 일이네. 내 영감이 변해도 많이 변해 있다. 차라리 측은 해 보인다. 거실 걸레질을 하는데 그 모양새가 어색하기 이를 데가 없다. 생전에 어디 걸레질을 해 봤어야지. 엄니가 내려다보시면, 마누라를 잘 두어서 이젠 별 짓을 다 한다 하시겠구먼. 구석구석에 엄니의 잔상이 보인다. 윗목에 가지런히 놓인 다듬이 방망이에서도, 벽에 걸린 허리끈에서도…….
대충 짐을 내려놓을 곳을 마련했으면, 어두워지기 전에 밤을 먼저 따야 한다. 뒤채의 행랑방 옆에 선 밤나무가 궁금하다. 영감을 앞세워 숲을 헤치자 했더니, 떨어진 밤을 주워 가느라고 이미 번듯한 길이 만들어져 있다. 떨어진 밤은커녕 달린 밤까지도 진즉에 남의 손을 탄 모양이다. 손이 닿을 만한 높이에는 밤송이가 보이지를 않는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껍질을 벗은 알밤이 보이는데, 그 주워 담는 재미가 솔찮게 재미있다. 버려진 밤 껍질이 즐비한 것으로 보아 많이도 도둑을 맞은 모양이다. 오늘 아침까지도 다녀갔을 타인의 발걸음이 원망스럽지만 어쩌겠는가. 그동안 무심한 것은 우리였으니 그들을 나무라선 뭘 해.
남편은 어릴 적 추억이 꽤 많이 나는가보다. 장대(長大)를 찾으니 시방 장대가 어디에 있으려고. 긴 쇠파이프를 들고 나무에 오르니, 남편의 키가 장대(壯大)하여 마치 머리가 하늘에 닿을 것 같다. 팔을 들어 후려치는 대로 우수수우수수 밤송이가 요동을 치며 곤두박질을 한다. 성미가 급한 알밤은 미처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껍질을 벗고는, 빨간 엉덩이를 내 밀고 풀 섶에 처박힌다. 벌려진 껍질을 쓴 채로 까까머리를 숨기고 뾰족한 콧대를 내미는 녀석들이 과히 보기에도 더 풍요롭다. 한 구석에 셋씩이나 들었으니 참 오지지 아니 한가. 서슬이 시퍼래서 떨어지는 밤송이는, 고슴도치 같은 가시를 세우지만 어림도 없지. 두 발로 비벼 껍질을 벌릴 양이면 제까짓 게 어쩌겠어.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가시는커녕 홀라당(?) 껍질 채 벗어 던질 수밖에.
떨어지는 밤송이의 가시가 무서워서 겨울 털모자를 쓰고도 밀짚모자를 썼더니 땀이 범벅이다. 엄니는 이렇게 힘든 작업으로, 해마다 그렇게 많은 밤을 서울 내 집으로 보내셨나보다. 한 알이라도 남의 손 타는 게 싫어서 새벽이면 뒷길을 누비셨다지 않던가. 우리 밤나무 가지가 뒷길까지 뻗어 있어서, 남 좋은 일만 시킨다고 매일 투정을 하셨지. 그새 밤나무는 더 가지를 쳐서 뒷집 담을 넘게 생겼다. 영감이 톱을 청해서 쓱싹쓱싹 뒷가지를 잘라낸다. 내년엔 우리 마당 쪽으로 가지가 더 벌 것이라 한다. 에구. 진즉에 손을 좀 쓰시지이~. 허긴. 그이도 마누라 병수발로 밤나무에 손 쓸 여유가 없었겠다.
텃밭 모퉁이에 섰는 단감나무의 노란 감이 우리 부부를 유혹한다. 멀리서 바라보니 딱 귤만큼 익어 있다. 아직은 수확할 만큼 녹 익지는 않았지만, 그냥 둔 채 서울로 올라가면 언제 또 내려올지 모른다. 남의 손 타기 전에 따다가 곶감이라도 켜야겠다. 아구~. 목쟁이가 짧은 양말을 신었더니 발목에 모기가 덤비는 모양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밭골에서 엄니는 뱀에게 발목을 물리셨지? 에구머니~ 어서 나서야겠다. 모기가 문제가 아니라, 엄니의 퉁퉁 부었던 발목이 생각난다. 그때도 나는 잠깐 왔다가 죽만 끓여놓고 뒤돌아섰었지. 내일 병원 다녀오시라고 봉투만 내밀고는. 못 되도 못 되도 이 며늘 년은 참 너무도 못 됐구먼.
엄니요.
하루만, 더도 말고 딱 하루만 좀 벌떡 일어나소. 내, 세상에 없는 효부노릇 좀 할라요. 이도 엄니를 위해서가 아니겠네?! 내 맘 편하자고 하는 소리로구먼. 누구를 위해서면 어떻소. 꼭 하루만 살아나시오. 엄니가 남겨놓은 것들이 날이 갈수록 귀하게 다가와서 이리도 감사하니, 어째야 내 맘이 편할라나 모르겄소. 그래요. 나를 위해서 하루만, 딱 하루만.
아, 엄니 아들을 위해서라고 하면 벌떡 일어나시겄소? 그라소. 엄니 아들을 위해서 후딱 일어나시오. 엄니 아들을 위해선 내가 오래 살아야 하지 않겄소. 그라니, 살아나셨다가 다시 가실 때에는 내 병도 좀 싹 몰아가시오. 흐흐흐, 엄니가 또 욕하시겄네?! “이 년은 아즉도 욕심이 많은 채로 사는가 벼.”라고. 내가 진즉에도 말혔잖소. “내가 욕심 없는 년이었음, 이만큼도 못 살았다”고. 안 그라요? 큭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