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26회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오다
큰딸아이가 집으로 오더니 내 잠 자리 걱정이 태산이다. 남편이 침대 사용을 거부해서 우리 부부는 저녁마다 방바닥에 이불을 펴는 수고를 한다. 물론 그이와 내 이부자리가 갈라진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이제 내 이부자리라는 것이, 명의가 이르는 대로 이불을 반 접어서 둘둘 말고 그 위에 베개를 얹었더니, 딸아이가 보기에 영 맘에 들지 않는 눈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자겠느냐는 것이다. 당장에 허리가 꺾이는 침대를 들여놓아 주었다. 도우미도 부르자 한다. 자기들이 신경이 쓰여 맘이 편치 않다고도 회유한다. 무조건 싫다. 내 집에 타인이 드나들면서, 내 병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과장된 소문을 물어내는 일이 싫기 때문이다. 그러면 방배동에서 사람을 사서 보내겠다고도 한다. 그도 싫다. 그냥 이대로 조용히 지내고 싶다.
배에 꽂힌 먹이관만 조심하면 생활에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관의 소독은 하루에 한 번만 하면 되는 것이고, 그도 내가 직접 할만하다. 아침에 그이가 죽을 주문하면 배달까지 해다 준다. 남들은 한 끼 식사지만 나는 점심까지도 족하다. 메뉴가 다양해서 오히려 집에서 끓이는 것보다 나은 점도 있다. 더운 날씨 덕분에 점심까지도 찬 기운이 없어서 식사는 그렇게 해결이 된다. 저녁에 퇴근한 아들이 청소는 맡아서 하니 걱정도 아니다. 빨래야 세탁기가 돌릴 것이고, 다림질거리는 세탁소가 대문을 마주하고 있으니 일도 아니다. 그럭저럭 그냥저냥 큰 아쉬움 없이 이렇게 지낼 만하다.
문제는 내가 하루 종일 입을 열어 볼 일이 없다는 데에 있다. 말 상대가 없으니 하루 종일 입을 닫고 있기가 일쑤다. 한 숟가락 죽을 떠먹고 나서 침대에 누우면 약을 먹는 시간이나 화장실 출입을 하는 시간 외에는 꼼짝도 않고 그렇게 누어있게 된다. 딱히 할 일도 없거니와 움직이기도 싫다. 전화가 아무리 울어도 상관을 않는다. 대문 벨이 시끄럽게 딩동거려도 그러거나 말거나. 식구들은 간간히 핸드폰으로 별 일이 없는가 하고 전화를 건다. 그건 안 받으면 걱정을 할 터이니 받아는 준다.
꼼짝 않고 누었으니 하루에도 만리장성을 열 번씩은 쌓았다가 허문다. 이제야 병원비가 얼마나 들었는지 어떻게 마련을 했는지 궁금하다. 병원비를 챙겨놓고 입원을 하지는 않았었으니까. 퇴근 해 온 남편에게 병원비를 물으니 별 걸 다 신경을 쓴다고 오히려 타박이다. 의료보험제도가 잘 돼 있어서 덕을 많이 본 모양이다. 중증환자로 등록이 되어서 이제는 국가보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만큼은 어느 선진국도 따라 올 수 없는 경지에 있다고. 특히 늘어나는 암환자에 대해선 예전과 달리 혜택이 많은 모양이다. 다행한 일이다. 그래. 접자. 이제 걱정을 한들 무슨 소용이고 알아서 뭘 어쩌겠는가.
아~. 이런이런. 문제는 또 있는데 내 생각만 했구먼. 남편의 식사가 문제다. 그이는 워낙 외식을 싫어하는 양반이라, 그동안 병원에 있을 때에도 식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김치 하나에 밥만 이라도 집에서 먹기를 원하는 그이다. 문제는 그이가 도통 주방 출입을 안 하던 사람이라는 데에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의외로 주방 일을 잘 한다. 그이에게 내가 40년을 모르고 살았던 이런 면이 있었나 싶어서 놀랍다. 허긴.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해서 공부할 때에, 시누이들을 늘 따라 붙였다고는 하지만, 농본기에는 스스로 해결도 했겠지? 아들이야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오는 날이 많고, 그렇지 않은 날도 들어오면 주방엘 잘 들어가는 녀석이니 걱정은 없다.
그럼, 식구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항암도 필요 없다 하니 그냥 이렇게 죽을 날만 기다리라는 걸까? 언제 까진데? 재발이 언제 오는데? 아니, 혹시 절개를 해 보니 손을 쓸 수가 없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래서 항암도 필요 없겠다 싶어서 퇴원을 시킨 겨? 수술을 하지 않으면 6개월 시한(時限)이라 했으니, 그럼 수술을 받았으니 일 년? 아니면 이 년? 아무도 사실대로 알려주지 않을 것이니 생각을 접자고 도리질을 해 보지만 이내 또……. 차라리 집요하다는 표현이 옳겠다. 등에 욕창이 생기겠다 싶어서 일어나 보지만, 엉덩이도 들어보지 못하고 이내 눕고 만다.
들어놓은 계는 끝나야 하는데. 계주는 내 병을 알면 계가 끝나기 전에 죽을까 싶어서 얼마나 걱정을 할까. 선불이라도 하라고 달려들지는 않으려나? 오빠와 돈 문제가 아직 해결이 안 됐는데. 오빠는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으니까 어서 갚으라고는 안 할 터이지. 아니, 내가 죽으면 복잡해질 터이니 당장 갚으라고 닦달을 하시려나? 세탁소에 맡긴 식구들의 겨울 코트도 찾아다 놓아야겠구먼. 내가 여차하면 찾아다 입지도 못하겠지? 그보다는 내 옷을 좀 정리해야겠지? 장 속에 서재의 행거에 그득한 저 옷들을 어쩌누. 웬 옷 욕심은 그리도 많아서, 제 철에 걸쳐보지도 못하는 옷이 얼마인고. 나, 죽으면 다 불사를 것들을…….
자궁암 치료 5년 만에 암이 유방으로 전이(轉移)돼서, 재입원을 한 젊은 애기엄마는 지금쯤 어떻게 하고 있을까. 수술 뒤에 마취에서 깨며 심하게 앓는 소리를 하던 그녀를 넘겨다 보며, 펑펑 우는 나를 내 남편은 기이하게 바라보았지. 당신이 그녀의 그 아픔을 짐작이나 할 수 있느냐고, 공연히 죄 없는 내 남편을 나무라던 일이 생각난다. 저만치 내 앞 쪽에 있던 골수암 환우는 지금쯤 어떻게 하고 있을까. 사우나를 운영하던 그녀는 뜨거운 부항을 즐기다가 암을 더 키웠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었지. 수술을 받고 퇴원하는 나를 그토록 부러워하며, 나는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느냐고 절규했었는데. 또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아들에게 모진 구박을 받으면서도,
“내 있는 돈 바닥 날 때까진 있을 겨!”하면서 병원생활만을 고집하던 옆 병실의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을까. 하지 않아도 좋을 걱정까지 꿰차고는 천정에 구멍이 나도록 시선을 고정하고 있으니……. 이러다 병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