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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자라다


BY 동해바다 2009-08-12

  

 어미없는 아이처럼 마땅히 기댈 곳 없는 가녀린 꽃들이 모두 누워 있었다.
씨 뿌리지 않아도 저들끼리, 이리 날고 저리 날아 여기저기 뿌리 내리고 피어있는 꽃들은
풀어놓은 망아지마냥 제멋대로 남의 땅에서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다.
잡초가 반을 차지하고 있는 분마다 영역싸움에서 이긴 화초들이 꽃을 피우며 승전보를 울리고 있었다. 
 챙겨주고 보다듬어 주고, 아프기라도 하면 안절부절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게 모성일 것이다.
꽃들은 내게 분신처럼 키워 온 자식과도 같은 일부분이었다. 마음 둘 곳을 초록 앞에 내려놓았고
초록은 내게 값진 보답으로 나를 안정시켜 주곤 하였다. 하지만 남편이 내게서 훌쩍 떠난 것처럼, 
나도 꽃들에게서 마음의 반만 할애하며 조금씩 멀리하려 노력했다. 생각할수록 그것들은 내게 있어 
쓸데없는 집착이나 염려를 불러들일 뿐 삶의 우선순위는 절대 아니었다. 

 서울로 올라와 언니 일을 도우며 지내온 날도 어느 사이 일년이 넘었다. 
일주일 후면 그가 떠난 지 365일 되는 날이기도 하다.이제 2주에 한번씩 삼척을 내려가 빈집을 
청소해주고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돌아오곤 하는 일이 몸에 베인 일상으로 자리잡혀 가고 있다. 
그런데 마음떠나 외면하려 했던 꽃들이 마음을 주지 않았는데도 피고지고, 멀리있는 내게 
시위라도 하는 듯 물오른 색으로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겨울 지나고 새봄이 오면서 대지 위에, 빈 숲속에 봄의 새싹들이 기지개를 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 흙이 있고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풀꽃들이 새롭게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씨앗들이 날려 엉뚱한 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싹들이 올라오고 봄지나 여름이 되면서 절정을 
맞는 꽃들이 백화난만, 무질서 속에서도 그 화려함을 맘껏 자랑하고 있었다. 풀 뽑아주던 정성이 
많이 부족해 씨가 말라버린 화초들도 대다수, 채송화 맨드라미 금잔화 마아가렛 등등 정이 많이 
가는 꽃들은 볼 수가 없고, 몇 촉 되지않던 기생초가 씨앗이 날려 화분마다 더부살이로 낑겨 살면서 
여기저기 노란 꽃으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좋아라. 애면글면 꽃들 생각으로 늘 
안타까웠는데 마음 반 떠났다고 말한 거짓이 들통나고 말았다. 질서없다고 누가 핀잔하랴. 피어 주는 
그 고마움만으로도 백배 천배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베란다에는 넓은 정원 못지않게 실내용 화초들이 즐비하다. 다행히 올봄부터 지인에게 열쇠를
맡겨두어 일주일에 한번씩 물을 주고 가는 고마움으로 죽어 나가는 화초들이 없어지고 있다. 
마당에 피어있는 야생의 기질이 강한 풀꽃들은 너무 양이 많아 그냥 두라고 일러두었다.
미안한 마음에 그것까지 부탁하기엔 많은 시간을 요했기 때문이다. 비도 많이 와 주었고 
그동안 동해안의 냉해로, 그리 뜨겁지 않은 날씨 탓으로 꽃들은 잘 버텨주고 예년보다 더욱 
풍성하고 화려한 꽃을 피어내고 있었다. 고맙게도 정말 고맙게도 말이다. 

꽃댕강나무

 
 가장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꽃댕강나무였다.
작은 종 모양의 하얀 꽃댕강나무는 어느 지인에게서 몇 가지 얻어와 꺽꽂이로 뿌리를 내린 여린 나무였다.
살 수있을까 의심하면서 정성들여 키운 결과 드디어 흙 속에 단단히 뿌릴 내리고 다음 해 아주 작은
종꽃을 매달게 해 주었다. 그 후 성장속도가 무척 빠르게 느껴질 정도로 웃자라 모두 가지치기 해
주었더니 이번엔 내 키만큼 자라 온 몸에 앙증맞은 흰 종을 수없이 매달아 금상첨화 꽃향까지 선사해
주는게 아닌가. 라일락향 처럼 그윽한 향이 코를 자극할 때면 그 어떤 행복이 이렇게 달까 싶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몇 년을 키우면서도 전혀 몰랐던 꽃 향이여서 더욱 달게 느껴졌을 것이다. 
 
란타나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푸짐한 란타나를 보면서 난 희열감이 극에 달했다.
3천원에 산 화분 하나로 여러 명이 이 꽃으로 행복감을 맛보았고 건드릴수록 향내나는 허브의 특성이
제대로 나타나는 꽃이다. 이것 역시 가지꺾어 뿌릴 내리고 분분 몇개씩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었다. 손가락 굵기 정도의 가지 하나에서 수십 개의 잔가지가 뻗어 노란 꽃이 풍성하게 핀다.
벽돌로 만들어놓은 베란다 꽃밭에 옮겨심은게 3년전, 그 꽃 역시 해가 갈수록 꽃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수국 기생초
금계국 버베나파라솔

 
 작가 박완서님은 지인들에게 키우고 있는 식물들이 100여가지나 된다고 말을 했다 한다.
놀러온 사람들이 저것도 가짓수에 넣었냐고 했냐면서 웃었다고 할 정도로 미미한 풀꽃도 소중히 
여기며 가꾼 내용을 읽으면서 어쩜 나랑 똑같을까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디에선가 날아와 뿌리내려 핀 개망초꽃이나 괭이밥도 내가 키우는 160가지 화초 속에 이름을 집어
넣었으니 말이다. 언젠가 수첩에 나의 정원에 핀 꽃 이름을 적다보니 그 정도가 된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 꽃들이 많아지고 누가 주인인지 모를 정도로 잡초와 이름모를
애물단지들이 동거를 하고 있으니 이제 내려가 시간만 되면 앉아 풀을 뽑아주며 예전의 관심을
다시 가져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중이다. 

허접하고 엉성한 초록정원을 가득 메운 꽃들로 나는 다시 희망을 갖는다. 
복잡한 서울 도심지에서 얕은 뿌리를 내리며 1년을 부지런히 살았다. 
슬픔을 접으며 열심히 앞만보고 달려온 나의 노력에 이제 많이 안정되어 가고 있는 가족들이다.
제대하여 2학기 복학을 앞두고 있는 아들은 쉴 틈없이 알바하여 등록금도 스스로 마련해 두었고
딸아이도 취업한지 1년여 동안 사회초년생이 겪는 어려움도 무난히 이겨내고 이제 자그마한
회사에서의 입지를 굳히면서 밝고 씩씩한 숙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담아있을 슬픔의 지우개는 아마 많이 닳아졌을 것이다. 내것과 마찬가지로...
꽃들에게서 희망을 읽듯,  착하고 예쁜 내 아이들에게도 희망을 읽는다.
언젠가 나를 떠나 한 가정을 갖게 될때까지, 성실함과 책임감 강한 사회인으로 우뚝 설 때까지
보살핌 없이 잘 커 준 꽃처럼 나의 아이들에게도 밝은 앞날이 올것을 약속해 본다. 

쓰러져 누워있는 꽃들을 세워주며 버팀목 하나 분에 쿡 찔러 보기좋게 묶어 주었다.
그리곤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 다음 날 서울행 첫차에 몸을 실었다.
 
엔젤윙베고니아 (목베고니아) 부처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