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댕강나무
가장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꽃댕강나무였다.
작은 종 모양의 하얀 꽃댕강나무는 어느 지인에게서 몇 가지 얻어와 꺽꽂이로 뿌리를 내린 여린 나무였다.
살 수있을까 의심하면서 정성들여 키운 결과 드디어 흙 속에 단단히 뿌릴 내리고 다음 해 아주 작은
종꽃을 매달게 해 주었다. 그 후 성장속도가 무척 빠르게 느껴질 정도로 웃자라 모두 가지치기 해
주었더니 이번엔 내 키만큼 자라 온 몸에 앙증맞은 흰 종을 수없이 매달아 금상첨화 꽃향까지 선사해
주는게 아닌가. 라일락향 처럼 그윽한 향이 코를 자극할 때면 그 어떤 행복이 이렇게 달까 싶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몇 년을 키우면서도 전혀 몰랐던 꽃 향이여서 더욱 달게 느껴졌을 것이다.
란타나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푸짐한 란타나를 보면서 난 희열감이 극에 달했다.
3천원에 산 화분 하나로 여러 명이 이 꽃으로 행복감을 맛보았고 건드릴수록 향내나는 허브의 특성이
제대로 나타나는 꽃이다. 이것 역시 가지꺾어 뿌릴 내리고 분분 몇개씩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었다. 손가락 굵기 정도의 가지 하나에서 수십 개의 잔가지가 뻗어 노란 꽃이 풍성하게 핀다.
벽돌로 만들어놓은 베란다 꽃밭에 옮겨심은게 3년전, 그 꽃 역시 해가 갈수록 꽃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수국 기생초
금계국 버베나파라솔
작가 박완서님은 지인들에게 키우고 있는 식물들이 100여가지나 된다고 말을 했다 한다.
놀러온 사람들이 저것도 가짓수에 넣었냐고 했냐면서 웃었다고 할 정도로 미미한 풀꽃도 소중히
여기며 가꾼 내용을 읽으면서 어쩜 나랑 똑같을까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디에선가 날아와 뿌리내려 핀 개망초꽃이나 괭이밥도 내가 키우는 160가지 화초 속에 이름을 집어
넣었으니 말이다. 언젠가 수첩에 나의 정원에 핀 꽃 이름을 적다보니 그 정도가 된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 꽃들이 많아지고 누가 주인인지 모를 정도로 잡초와 이름모를
애물단지들이 동거를 하고 있으니 이제 내려가 시간만 되면 앉아 풀을 뽑아주며 예전의 관심을
다시 가져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중이다.
허접하고 엉성한 초록정원을 가득 메운 꽃들로 나는 다시 희망을 갖는다.
복잡한 서울 도심지에서 얕은 뿌리를 내리며 1년을 부지런히 살았다.
슬픔을 접으며 열심히 앞만보고 달려온 나의 노력에 이제 많이 안정되어 가고 있는 가족들이다.
제대하여 2학기 복학을 앞두고 있는 아들은 쉴 틈없이 알바하여 등록금도 스스로 마련해 두었고
딸아이도 취업한지 1년여 동안 사회초년생이 겪는 어려움도 무난히 이겨내고 이제 자그마한
회사에서의 입지를 굳히면서 밝고 씩씩한 숙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담아있을 슬픔의 지우개는 아마 많이 닳아졌을 것이다. 내것과 마찬가지로...
꽃들에게서 희망을 읽듯, 착하고 예쁜 내 아이들에게도 희망을 읽는다.
언젠가 나를 떠나 한 가정을 갖게 될때까지, 성실함과 책임감 강한 사회인으로 우뚝 설 때까지
보살핌 없이 잘 커 준 꽃처럼 나의 아이들에게도 밝은 앞날이 올것을 약속해 본다.
쓰러져 누워있는 꽃들을 세워주며 버팀목 하나 분에 쿡 찔러 보기좋게 묶어 주었다.
그리곤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 다음 날 서울행 첫차에 몸을 실었다.
엔젤윙베고니아 (목베고니아) 부처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