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년 전 만났던 가게 주인(68세)을 다시 만났다.
반찬가게를 새로 하게 된 이들이 가게 계약을 하기 위해 네 여인이 만난 것이다.
오년 전 돈 많은 귀부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얼굴 한쪽 눈 주위는 엉성하게 꿰맨 상태의 초라하기 그지 없는 할머니가 보여 못 알아볼 뻔 했다.
그래도 낡을 대로 낡은 명품 핸드백이 과거의 영화를 조금은 대변해 주었다.
제법 많았던 부동산은 며느리가 오년 동안 거의 해치웠고 이제는 이혼수순만 남겨둔 채
네살바기 아들을 시어머님께 떠넘긴 상태고,
딸도 어찌된 상태인지 여섯살 난 딸을 친정엄마께 떠넘긴 상태라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부랴부랴 상경한 터란다.
얼굴의 상처는 온갖 근심걱정으로 새벽에 휘적휘적 돌아다니시다 시멘트 수로로 실족하여
오른쪽 눈 주위가 다 찢어진 상태였는데 어느 목사님 도움으로 꿰매셨단다.
38세된 아들은 취직은 했다는데 월세를 아들 통장으로 넣어 달라고 하셨다.
우리 세 여자는 기함을 했다.
제발 그러시지 마시라고... 손주, 손녀 키우시려면 생각지도 않은 돈이 들 일이 많을 텐데
한푼이라도 지니고 계시라고 할머니 통장번호를 기어이 받아 냈다.
평생 억척스레 돈을 벌어 남편 의사 만들고 자식들 앞으로 부동산도 물려줬건만
자식들이 그 재산을 지키지도 못하고 자신들의 분신만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엄마에게 떠넘겼단다.
그 와중에 92세로 노인전문병원에 입원해 계신다는 친정엄마 건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병원식사를 마다하고 딸이 보내주는 죽으로 연명하신다는데 죽이 떨어졌다고 빨리 죽 보내라는 거다.
할머니는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할머니 대신 죽을 세개만 사서 병원에 우선 넣어주라고 하신다.
전화를 끊더니 \"아들은 다 소용 없네. 어쩌다 한번 심부름 시킨건데 불만이 많네.\"
우리는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오셨을 할머니께 식사대접을 해드리고
우산도 하나 사드렸다.
당뇨가 심해 걸을걸이도 시원찮은 할머니를 부축해 다시 내려가시도록 해 드렸다.
할머니는 우리들에게
\"난 어쩌자고 댁들같은 며느리를 못 얻었나 몰라.\" 하셨다.
할머니께서 앞으로 고생하실 걸 생각하니 마음이 짜안해졌다.
할머니처럼 자식에게 올인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