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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거 별거 아녀~! (제14회) 목숨을 맡겼기에


BY 만석 2009-08-01

 

1부 제14회


목숨을 맡겼기에 


  간호사들이 들락날락하고, 젊은 여의사가 왔다 갔다 하느라 수선스럽다. 그들 누구도 바른 해명을 하지 못한다. 기계가 조작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주사약이 빠른 속도로 주입 됐다는 이야기다. 말이 되지 않는다. 1차 항암 때도 빠른 속도로 주입 된 약으로 환자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가. 주사약이 거의 두 배인 12시간 만에 주입이 됐다면 나는 이미 죽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멀쩡하지 않은가. 약봉지가 찢어져서 교체 할 때에 용량이 미달 된 것이 주입 되었다는 게 남편의 주장이다. 아니면, 이미 찢어진 약봉지에서 남은 약만을 쏟아 부어 다시 주입했다는 이야기도 가능하다. 의사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한다. 찢어진 봉지를 반납하기 위해서 그대로 보관한 것이라며 터진 약봉지를 들고 온다. 그것이 그것인지도 우리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아니. 이미 바닥을 낸 약봉지를 다시 보니 처음 것과는 다르다. 처음 것은 비닐봉지였는데 지금 매달린 약은 유리병이다. 의심을 하기 시작하니 것도 이상하다. 장장 몇 시간을 실강이를 하는데, 4년 차인 펠로우가 잠을 자다가 왔는지 부스스한 모습으로 이제야 나타난다. 다른 침대의 보호자들의 말대로라면, 간호실에서 여의사와 간호사로부터 이미 브리핑을  끝내고 온 것이라 한다. 몸집으로 보나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기죽은 모습으로 보나, 확실한 선배임이 틀림이 없다. 정중한 사과부터 해 온다.

  “약봉지를 떨어뜨린 데서부터 이쪽의 실숩니다. 사과드립니다.”
  “여보쇼. 이게 사과한다고 될 일이오?”

  남편의 반문에 기분이 상했는지, 의사는 젊은 여의사와 간호사에게 호된 꾸지람을 한다.

  “진즉에 알렸어야지! 이게 지금 니네 선에서 해결이 되겠니? 아니면 내 선에 해결이 되겠냐고.”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소견으로는 별 문제가 발견 되지 않는데요.”

  “다 그만 두고 24시간 투여 될 약이 12시간 만에 끝난 이유만 설명하세요. 그게 설명이 되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해합니까?”

  남편은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는 게 역력히 보인다. 그이인들 어쩌겠는가.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해명을 하라는 수밖에. 쉽게 끝날 일이 아님을 느낀 펠로우는, 젊은 여의사를 째려보고 가운 자락을 날리며 육중한 몸을 가볍게 돌려서 병실을 나선다.

  “참. 나, 원.”
  그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침대 옆을 서성거린다. 어째야 하는가를 목하 심사 중이다.


  일단은 내 팔의 주사기가 제거 된다. 아들과 딸들이 눈을 동그랗게 굴리며 출근길에 병실로 들어선다. 자초지종을 들려주지만 그들이라고 이해가 되겠는가. 결국 간호사를 통해서 퇴원을 하라는 연락이 오고, 남편의 감정이 폭발한다. 다시 펠로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들어선다. 남편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지만 펠로우에게 대 들 듯 말한다. 

  “퇴원을 해요? 이 대로 퇴원을 해요?”

  “우리로서는 하자를 찾을 수가 없으니…….”

  “그럼 우리가 약을 들이마셨소? 그 소리잖소. 왜 시간을 못 채웠냐는데 하자 없다는 소리만 하니 답답하잖소. 그리고는 퇴원을 하라고?”

  “이게 지금 2차 항암이 제대로 끝났다고 믿기가 어렵잖아요.”

  아이들도 거들고 나선다.

  “담당교수 좀 뵙시다.”
  “오늘 세미나가 있어서 일찍 나가셨는데요.”
  “그럼 기다리리다. 오시는 대로 연락 주세요.”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다. 하자가 없는데 24시간 주입 될 약이 12시간 만에 끝이 나? 기계의 오작동이면 환자가 못 견뎠을 터인데…….


  하던 말만 자꾸 되풀이 해 듣기도 진이 난다. 의료진도 난감하다는 말만 한다. 드디어 내 담당교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타난다. 나는 아무 조치도 없이 이틀이나 이 사람을 기다린 게다. 가장 높은 지위의 책임자인 그가 점잖게 말한다.

  “기록상으로는 아무 하자가 없습니다. 2차 항암도 무사히 끝난 것으로 보이고요.”

  허긴. 실무자가 기록해 놓은 것을 들여다보는 것에 하자가 있게 해 놓았으려고.

  “2차 항암이 끝났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교수님이 책임 있게 말씀하시면 믿겠습니다.”

  우리는 왜 24시간의 약물 투여시간이 12시간 만에 끝이 났는지를 모른 채 그렇게 퇴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목숨을 그들 손에 맡겼으니 더 보채 봐야 득이 될 게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환자를 죽이고 살리는 건 그들 손에 달리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