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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거 별거 아녀~!(제2회) 도대체 무슨 소린지


BY 만석 2009-07-16

 2부 제4회


도대체 무슨 소린지


  도대체 뭘 하는 건지 환자는 알지도 못하고 끌려 다니기 일쑤다. 그저 명령하는 이들의 명령대로, 아니면 웅장한 기계 앞에서 겁을 먹은 채 로봇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다. 내가 가장 나약하고 작아 보이는 지금이다. 벗으라면 벗고 몸을 엎으라 하면 엎어 놓고 손을 머리 위에다 얹어놓으라면 그렇게 하고…….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다니며 하루가 그렇게 갔다. 그랬으면 바로바로 결과나 알려줘야지. 


  그런데 검사실에서 검사 자들의 주고받는 이야기를 주워들을 수 있었다. 자기들끼리의 이양기지만 나는 눈치가 10단인 것을.

  “아직 확정 안 났어요?”
  “응. 4대 1이야.”

  그들의 대화에다 아침에 담당의사의 전언을 믹서해서 보자면, 주판을 튀기지 않고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가 있다는 말씀이야.

  “의논이 분분합니다. 아직 암까지 가지 않았다는 쪽도 있고 이건 틀림없이 암으로 보아야 한다는……. 젊은 사람들의 의사도 무시할 수 없는…….”


  그러니까 이야기를 조합을 해 보자면, 의사 다섯이 내 상황을 두고 의견이 다른데 네 명은 암이 아니라고 하고 젊고 유능한 의사 한 명은 확실한 암이라고 우긴다는 것이다. 옳거니. 아무리 젊고 유능한 의사라고 하더라도 연륜이 있는 의사를, 것도 네 명이나 되는 하늘 같은 선배의사에게 반기를 들어? 그 연륜이 있는 의사의 편에는 내과에서 나를 40년 살펴 오던 내 전 주치의도 있을 것이고. 그래. 내가 암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했다. 아~암. 암이 아니지. 내가 왜? 아니, 내가 왜냐구. 자꾸만 좋은 쪽으로 끌고 가고 싶었다. 


  우선 어제 방방 뜨던 막내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자초지종을 듣던 딸아이는 또 방방 뛰며 소리를 질렀다.

  “정말? 엄마. 정말이지?!”
  “그래. 맞을 거야. 아빠한테도, 오빠한테도, 언니한테도 전화 걸어줘. 얼마나 걱정하겠니.”

  “예. 알았어요. 엄마 지금 우셔요? 우는구나. 나, 곧 갈게요.”

  정말 나는 울고 있었다. 당신이 암에 걸렸다는 선고를 받을 때에도 나는 울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자꾸만 눈물이 난다. 아니, 줄줄 흐른다. 아주 깜깜한 터널을 빠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이제 저만큼 터널의 먼 앞쪽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고 있었다. 


  암 병동이다 보니 내 침대의 맞은편에도 옆 침대에도 암환자들이 앉고 누어있었다. 나는 그들과 한 병실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 병실을 옮겨야 하지 않는가. 왜 나를 저 사람들과 같이 이곳에다가 쓸어 넣었담. 병실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1인실이라도 좋으니 병실을 옮기겠다고 남편에게 졸랐다. 남편이 기분 좋은 기색으로 병실을 옮겨주겠다며 간호사실로 향했다. 잠시 뒤 내일 아침에 병실을 옮겨주겠다는 약속을 받아왔다. 


  다음 날 아침. 밤 새 뒤척이다가 그래도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눈을 뜨니 다시 초조해졌다. 아직 확답을 듣지 못한 게 맘에 걸렸다. 특히 PET촬영 결과에 초조했다. 내겐 의료적 전문지식은 없었다. 그러나 CT나 MRI보다 고성능의 인체 해부학적 촬영이 가능하다는 PET촬영이고 보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연륜 있는 의사와 젊고 유능한 의학도의 세대차이라는 괴리가 내 머리에 떠올랐다. 새로운 장비에 대한 지식은 오히려 젊고 유능한 의학도에게 더 유리하게 적응이 되리라. 요상하게도 그 날 아침은 자꾸만 안 좋은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다음 날 아침. 회진시간에 담당교수는 차가운 얼굴로 내 보호자를 찾았다. 덜컥. 무거운 무엇인가가 내 가슴 위쪽으로부터 힘 있게 떨어지고 있었다. 주치여의사도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휙 돌아서서 나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전화를 받고 남편이 오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전화 속의 남편도 불길한 예감을 갖는 눈치였다. 조금 뒤 주치의가 다시 들어왔다.

  “보호자 아직 안 오셨어요?”

  “예.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요. 왜요? 결과 나왔어요?”
  주치의는 말없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