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싸움을 아주 크게 했다.
아니 지금도 진행중이다.
앞으로 얼마나 갈지 나도 모르겠다.
쉽게는 풀리지 않을터,아니 겉으로는 화해가 될지 모르지만 아주 오래갈 것 같다.
나는 친구들로 부터 이런말을 듣곤 했다.
\"시\"자 들어가는 음식은 먹지도 않는다고.
시금치 나물 내지는 시루떡 같은것을 말했다.
오늘밤은 나도 그 말에 동조 하리다.
시집일로 크게 싸우고 남편이 집을 나갔다.
아니 내가 내 쫒았다. 제발 나를 위해 집을 비워달라 사정했다.
남편이 집을 비운시간이 한시간 가량되었나.
내 분노에 기름을 붙은 남편이 보이지 않으니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조금은 시원하기도 했다.
요즘 시어머니가 병이 나시면서 사는게 말이 아니었다.
거기에 시아버지가 더 환자임을 자처하고 어머니보다 더 길게 누우셨다.
그러니까 한방에는 시어머니가 꼼짝도 않고 누워계시고
거실 가운데는 시아버지가 길게 누워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정도.
속을 썩어봤자 그렇고 어느만큼 마음이 정리가 되기도 했지만
가야할 곳을 서두르는 시어머니 인생이 너무나 가엾어서 시키지도 않는 병간호를 자처하면서
고생도 고생이지만 양쪽 살림을 거드르려니 몸도 바쁘고 돈도 이만 저만 바쁜게 아니었다.
그러나 꾹~ 눌러 참고
오직 내 남편의 사랑을 믿으며
그래도 최소한은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으로 잘도 견뎌냈었다.
그런데 오늘밤 그 남자의 사랑이 아무것도 아니라는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여러번 있었던것 같다.
분노가 확확 일어나서 삭혀지지가 않는다.
아까의 일이었다.
시어머니 병간호때문에 그 동안 가꾸어 오던 밭일이 밀렸다.
풀이 산처럼 우거졌기에 동내 어르신께 품을 얻어 매었다.
노인들 병환으로 인하여 돌보지 못한 밭때기가 버려져서 그리 하지 않을수 없었다.
점심 해드리고 중간 중간\"참\"해드리고 밭에 심어진 배롱 나무 전지를 하였다.
늦게서 동창회게 갔던 남편이 돌아오고 되는대로 밭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시아버지의 추상같은 전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느이 친정에서 우리를 아주 무시하는구나.\"목소리에 분노가 부글 부글 끊고 있었다.
이유인즉 우리 친정엄마께 어느 노인이 시어머니 병세를 물었는데
우리 친정 엄마가 잘못알고 조금 망언을 하셨다.
지난주였다.당뇨가 있으신 친정어머니께 \"파푸리카\"를 드리라 하였다.
그런데 시집을 돌보다보니 미처 같다드리지 못했다. 딤채안에서 슬쩍 얼어버렸다.
때때로 친정 부모가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 친정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
\"새끼 고이 길러 사돈네 봉사만 했다고.\"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요즘 특히 더 시부모 병간호를 하다보니 더더욱
소홀한지라 늘 가슴이 먹먹했다.
그러던중 시집에 갔을때 시부모님 점심 식사가 생각보다 빨리 끝이났다.
서둘러 시어머니 목욕 시켜드리고 빨레 빨아 삶고 청소하고 그리고는 친정으로 전화를 했다.
\"엄마 점심 드셨어,맛있는거 사드릴까.\"
그러나 때가 기울은지라 이미 드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래 외식할랬더니 그냥 먹어야되겠네.\"하고 말한것을
친정엄마는 시부모와 외식중인걸로 알아들으셨나보다.
시어머니와 가까이 지내시는 분이 쫒아오셔서 묻는 말씀
\"댁의 사돈 어떻쑤 많이 아프다매.\"
\"아~예 많이 좋아지시고 아들 며느리하고 외식도 하시던데요.\"
그렇게 말씀 하셨나보다.
그걸 전해들은 시아버니 왈
\"느이 친정이 우리를 너무 무시한다,어떻게 외식을 하러 다닌다고 떠들고 다니느냐 그럴수가 있느냐
내가 그소리를 들으니 .....\"
문병한번 안오고...기타 등등...
문병은 왜 안와 금일봉까지 가져다가 받쳤는데
그리고 한참 사경을 헤맬때 오셔서 딸이 귀저기 찬 시어머니 지방 침대에 덩그라니 모셔놓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밥 다해주고 차 대접하고 정신을 못 차리는 딸을보고 기가 막혀서 돌아가셔서
잠을 이루지 못하셨는데.
내 그럴줄은 알았지만 우리 시아버지 본시 그럴줄을 알았지만
그동안 한게 있기도 하지만 몸이 너무 고달프다보니 화가 불 같이 났다.
이럴때 우리 남편이 나를 위로해줬어야 되는건데
여자가 성질이 지랄 같다느니 하면서 나를 막 욱박 질렀다.
성질이 난 남편은 나를 두들거 팰거같은 코너로 확확 밀어부쳤다.
남자의 사랑을 믿는게 아닌데
내가 왜 남자의 사랑을 믿어 그 고생을 자처했던가.
나는 우리 남편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걸로 믿었었다.
그야말로 우리 아버님 52세에 명예퇴직하시고 그때부터 줄기차게 생활비대고
시어머님은 외손을 기르느라 혼이 빠저 우리 딸들 근처도 오지 않았음매
그리고 외손 다 길러놓고는 딸들한데 실망하고 외손한테 실망하여 그야말로
우리딸들 근처도 오지 않았는데
그뿐인가 우리 남편한테 \"일억\"이라는 돈을 뜯어다가 막내아들한테 \"였쓔\"낼름 바치고
우리 남편도 동생놈께 \"일억 삼천\"받치고
나는 차가 없어 운전을 못한다는 죄로 맨날 자전거 타고 비비고
시댁갈때 차비 아끼려고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다니고
어느때는 반쯤 걷고 기본 요금 되는 자리에서 택시타고 버스도 타고
그야말로 묘기 대행진을 버리면서도 불만은 커녕 동방 예의지국인 대한민국의
귀감이되는 며느리가 되고자 ...
지난번엔 2000원을 아끼다가 망신도 당했는데...
아~! 억울.
정말 이 남자하고 살기 싫타.
그러나 어쩌나 우리 어머니를 어째야 되는건지
그냥 버려두어야되는건지
지금 같아서는 죽이되든 밥이되는 그냥 될대로 되라 놔버리고 싶다.
무릎을 끓고 싹싹 빌어도 용서가 될것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