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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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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바람


BY 동해바다 2009-04-08



일주일에 한번씩 안아보는 귀하고 귀한 나만의 휴식시간이다.
한달에 너댓번씩 찾아오는 휴일을 나름 흘리지 않게 보내려 애쓰고 있는데 오늘은 그저 방에서 
꼼짝마라이다.
벌써 사월은 일곱 날을 날려버리고 여기저기 벚꽃행렬에 취한 행복안은 사람들의 즐거움이 
매스컴을 통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이번 휴일은 여의도나 창경궁 남산 그중에서 한군데 
한번 다녀올까 생각했는데
아침나절 아이들을 내보내고 내려앉는 눈꺼풀때문에 TV를 켠 채 이불덮고 잠이 들었다.

늘 잠이 모자란 것 같고 아침마다 세식구 출근전쟁에 정신없는 하루의 시작이 피로가 
누적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휴일이라는 달콤한 시간을 어떻게서라도 아깝지않게
보낼까 궁리만 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힘듬에도 2주에 한번씩 삼척에 내려가 원기를 회복받고 
온다지만 아무렴 오십넘은 육체의 고달픔이 어찌 안팎으로 표시가 나지 않을까. 
원없이 잠이라도 실컷 자보자 맘먹고 잤는데 기껏 한시간 밖에 자질 못했다. 몸과 마음이 편해야
잠이란 것도 편히 오래 자는가보다. 일어나니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배부른 세탁기 속 내용물을 가동시키고 너저분한 탁자위 물건들을 모조리 방 한가운데 내려놓고
걸레들고 본격적으로 깔끔떨기 시작했다. 
남편이 나 먹으라고 챙겨 가지고 온 약통들과 열쇠꾸러미 그리고 내 물건과 아이들의
물건이 포개고 또 포개져 먼지와 함께 수북히 낮은 동산을 만들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지저분하여도 그 위에 올리고 또 올리고....
방과 주방이 분리가 되어 편리하면서도 좁디좁은 원룸형이기에 수납공간과 옷걸이 등 부족한 것이
참으로 많다. 남들이 버리고 간 멀쩡한 책장과 수납장 하나를 주워 와 그나마 책과 양말 등을
정리하고 아이들 옷을 수납하고 있는 박스 위에 아이들은 그대로 옷을 벗어 산더미처럼 
만들어버린다. 잔소리도 그때 뿐...
그럴듯한 아파트라도 전세얻어 깔끔하게 정리도 좀 하고 햇살 방긋 들어오는 베란다에
윤기나는 화초들도 몇개 키우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지만 그러기 위해 할수 있는 방법이라곤
삼척 집을 파는 수밖에 없는데 아직까진 그리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으니 불편함 감수하고 
살수밖에....
해 들어오는 1층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이들은 소망이란다. 채 1년 되지않은 원룸에서의 생활이
겉으론 밝게 생활함에도 방음이라곤 거리가 먼 1호 2호 4호 세 집에서 들려오는 갖가지 
소란스러움이 나와 아이들 모두에게 반지하 탈출에 대한 강한 욕구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점점 내면으로 파고드는 우울함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계약기간 두 달을 남겨놓고 새로운 
주거지로 옮기기 위해 방을 내놓았다. 
강남에서도 월세 싼 반지하 방이 넓어보여 덜컥 계약하고 입주하여 살면서 겪은 불편함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였다. 

내 집이 아니라 해도 내가 거하는 공간이라면 적어도 깔끔하게 정리하며 살아야 한다는 철칙이 잠시
부숴지곤 한다. 힘들다는 핑계로 말이다. 입주하여 자정을 넘어 자는 날이 허다하였다. 처음에는
나 혼자였기에 그리 손 갈 일이 많지않아 청소하는데만 시간을 투자했다. 곰팡이며 찌든 때를
닦고 또 닦고 보기싫은 얼룩진 공간은 접착용시트지로 감쪽같이 숨겨놓고 보니 그럴 듯한 새 집처럼
변모하였다. 남편이 2주에 한번씩  삼척에서 오기 시작하고 한달후 딸아이가 지방 하숙생활 정리하고 
취업되어 이곳 원룸으로 합쳐져 세집에서 두 집 생활로 줄여지게 되었다. 가끔씩 휴가나온 아들과 
네 식구 모두 잘 수 있을 만큼의 원룸은 6개월후 다시 아들아이가 전역하여 온 식구가 함께 
색다른 보금자리를 만들수 있었음에도 그 사이 덜커덕 남편은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슬픔은 세월이 거둬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나하나 먼지와 씨름하며 쓸고 닦고 있던 중 일을 시작하면서 쓰기 시작한 일기노트를 펼쳐보게 
되었다. 서투름의 시작에서부터 남편과의 애틋한 정이 새록 솟아올랐던 그때 그 감정, 손가락이 
퉁퉁 부어 언제까지 이 일을 할수 있을까 염려했던 날들이 칸 좁은 노트 위에 일 시작시간과 마침시간 
표시, 그리고 구입한 물건의 금액과 그날 그날 있었던 일들까지 세세히 메모되어 있었다. 불과 
8~9개월 전의 일이다. 
방 한가득 어지럽게 내려놓은 물건들을 밀춰내고 본 일기장 앞에서 또 울컥임이 일어 한바탕 울고
눈물 뚝뚝 흘리며 걸레질하다 보니 반나절이 지나가고 말았다. 혹 청소라도 빨리 끝나면 어디로든
나가볼 요량이었는데 포기하고 작정한 김에 화장실 대청소까지 마무리하였다.

신은 일주일중 하루를 쉴 수 있는 특권을 내려주셨다. 일년 삼백육십오일을 쉼없이 일만 한다면
사람들의 몸은 어찌 버틸수 있을까. 한주는 정기산행으로 또 한주는 나홀로 북한산으로, 
그리고 한 주는 삼척 이웃과 달콤한 시간으로 매주 나를 위한다 생각하며 채워졌던 일주일의 하루, 
오늘도 그 하루를 지내다 보니 말끔하게 달라진 방과 화장실이 흡족하여 절로 마음이 뿌듯해져 온다. 
주부란 이런 것 하나로도 행복을 채워가며 살아갈진데, 하 세월 지나며 참으로 많은 것들이 변하고 
또 변하여 공기좋고 맑은 지방의 내 집을 두고 이렇게 서울 한 복판에서 일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한 치 앞도 모르는게 세상사라는 그 말, 참으로 많이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쓸고 닦으며 삶아 햇볕에 널어놓은 빨래를 보며 말간 하늘에 온 몸 담구고 마음 평안했던 지난 날이 
생각났다. 이지가지 꽃으로 색색이 고운 꽃밭 만들어 내 시름 내려놓았던 마당에 남편과 부지런히 
흙나르던 그 날이 생각났다. 봄이면  \'우리 마누라 꽃바람 쐬어주러 나가야지\' 하며 벚꽃 유채꽃 들판인 
곳으로 나를 데리고 다녔던 남편이 생각났다.
나를 힘들게 했던 남편보다 조금 더 나를 잘해주지 못해 안달하던 남편모습이 더 생각났다.
해넘이는 벌써 임무를 마치고 제 자리로 돌아갔고 깔끔해진 방 구석 책상앞에 앉아 어스름 저녁나절 
치밀고 들어오는 그리움과 한바탕 몸살을 앓는다.

여보, 나 다음 주 쉬는 날엔 꽃바람 좀 쐬어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