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생고생을 했더니 녹초가 될 지경이다.
남편은 봄바람에 시달리고 용접불똥에 얼굴이 데여서
잘 익은 홍시같이 붉다 못해 아예 이젠 검다.ㅎㅎㅎ
어느 날 갑자기 찾아 든 분재병에 감염된 우리 부부는
드디어 큰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일년초들을 봄을 맞아 밖으로 내 놓다가
뭔가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든다며 화원엘 구경간게 잘못이었다.
하나쯤은 근사한 나무로 장식하자던 것이 이런 대형프로젝트가 될 줄이야....
이 곳으로 직장을 잡으면서 우린 참 많은 걸 포기했어야 했다.
문화생활은 거의 전무.
도시에서만 살다 온 우리는 처음 이 곳의 생소한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참 많이 힘들었고 특히 애들이 고생을 많이했다.
학교 등하교나 친구들문제 학용품 구입까지.
집이 워낙에 넓고 행사가 많다보니 시장 보는 일 외에는
바깥출입도 거의 못하고 지냈다.
할머니들 식사도 문제였고 처음에는 다른 직원이 없었기에
우리 두 부부가 모든 일을 다 하다보니 더더욱 시간이 없었다.
애들은 어리고 일은 많고 외부와의 소통은 전혀 안 되고.
그런 환경에서 우리가 찾은게 꽃가꾸기.
젊음을... 싱그러움을 보상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보살펴 주면 보살피는데로 건강한 모습으로 꽃을 피워주고
푸르름을 선물해 주는 꽃들이 너무 좋아서 하나 둘...
집 앞 마당에 모으기 시작하다가 세월이 꽤 지나고 부터는
분재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가격이 비싼 분재는 손도 못 대고 작은 소품을 보너스 받는 달에
하나씩 모으기 시작하며 꽃살림도 많이 늘었다.
진열대가 하나가 넘치더니 둘~둘이 넘치면 셋으로~~
그렇게 근 10 여년이 지나고 나니 엄청 많은 화분들이 모이고
큰 돈이 없을 때는 자주 가던 화원에서는 분할도 해 주는
우스운 거래가 이루어지기도.ㅎㅎ
믿고 분재부터 주시고 돈은 차차로 갚으라시던 고마운 화원아저씨.
우린 그렇게 꽃과 분재를 모았는데 건축일이 커지면서
많은 분재를 헐값에 팔아야만 했다.
아깝고 서운했지만 어쩌겠는가?
한 두 동도 아니고 집을 완전히 새로 건축하게 생겼는데...
겨울에 관리도 그렇고...
개인한테 한 두점 따로 판게 아니라 한꺼번에 화원에 다 팔아야해서
좀 싼 가격으로 넘겼지만 그런데로 목돈은 들어왔다.
남편은 그 돈을 헐어서 집안 살림에 보태지 말고 아내를 위한
위로와 격려금으로 하사한다나?
근 10 년을 시골생활을 하면서 도시에서의 사업의 실패도 있었지만
시골에서 애들 키우면서 큰 선물을 못 해 준게 미안하다며
다른 곳에 쓰지 말고 그 돈은 오로지 날 위해서만 쓰라고 그랬었다.
고맙고 감사했지만 난 그 돈을 다른 곳에 쓰고 싶었다.
나 한사람의 허영에 쓰기 보담 더 의미있는 일에.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나는 남편하고의 찻집 데이트를 신청했다.
작은 언덕에 있는 풍경이란 고전 찻집.
은은한 음악이 흐르고 향긋한 차 냄새가 정겨운 풍경.
우린 두 잔의 전통 차를 시켰고 나는 남편을 바라보는 눈빛이 갑자기 흐려졌다.
분명 남편은 나를 위해 쓰라고 준 돈을 이미 다른 곳에 줘 버렸기에....
\"있잖아요....난 당신만 내 곁에 있어주면 돼.
그 돈..분재 판 돈...내가 다른 곳에 기부하고 말았어요.\"
갑자기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남편은 마시던 찻잔을 손으로 감싸쥐고 가만히 날 건너다 본다.
한참 동안 말도 않고...
난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마주보고 앉았고.
\"진짜야?
그 돈 어디 기부했다는게?\"
\"응...벌써 내 버렸어요.
나 혼내지 마....
난 당신이 내 곁에서 살아만 있어 줘도 감사해서....
그래서 ....이야기도 안하고 그랬어.\"
그냥 침묵이 흘렀다.
마시던 차도 안 마시고 날 보는 남편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거린다.
가만히 탁자 위에 놓인 내 두 손을 잡는 남편.
\"그렇게 날 사랑해 주는 당신이 있어 난 세상 거 다 얻은 기분이야.
돈이야 젊었으니 또 벌면 되지 뭘.
잘했어...나 눈물이 나려 그러네~`ㅎㅎㅎ\"
고함지르지 않아서 감사했다.
철없는 여자라고 야단치지 않아서 감사했다.
내 진심을 알아준 남편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어색하게 씨익~웃으면서 손등으로 눈 언저리를 닦던 남편.
우린 그 밤 그 찻집에서 서로를 더 행복하게 해 줘야겠다는 다짐을 각자 했었다.
물질이 다는 아니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그렇게 세월은 가고 애들이 커서 돈도 많이 들고
우린 분재를 잊고 살았었다.
일년초야 장날만 되면 있고 언제든 한둘 정도 사도 가정 경제에 큰 부담도 안되고.
그렇게 화초 사랑만 했었는데 남편이 허전함을 달래려고 간 화원에서
잘 아시는 분의 분재들을 일괄처리하는 조건으로 아주 싼 가격에
주시겠다는 말을 듣고는 우리 둘 다 한꺼번에 자제력이 무너졌다.
그 분은 수십년 동안을 자식처럼 키우던 부재들을 갑자기 큰 돈이 필요해서
팔아야했기에 싯가 보다 엄청 낮은 가격으로 처리하게 된 것이다.
분재는 가격이 따로 없는 분야다.
임자만 잘 만나면 그 가격은 천차만별~~
우린 내다 팔 목적이 아닌 오로지 지금도 잘 감상하고 나중에 나이 들어
진짜 우리들의 노후에 살 집에 진열해 두고 평생을 볼 그럴 생각이었다.
근데 돈이 없는거다.
목돈이 없어.
좀 큰 목돈이어서 우린 조금씩 서러울려고 그랬다.
이 나이 되도록 뭐하다가 그만한 돈이 없다니... .. 그래도 그 분재들은 가물거리고 돈은 당장 없고.
어디 꾸러 갈 자존심은 없고.
먹고 살 일도 아닌데 그런 돈을 어찌 꾸러가냐고..
사람에 따라서는 가치기준이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달라서
누구는 입는 옷에 가장 큰 비중을 두기도 하고
어떤 이는 먹는 음식에 또 어떤 이는 꾸미는 일에....
우리 부부는 그런 일에는 남들보다 많이 뒤 쳐진다.
먹고 입는 것은 기본이면 되고 꾸미는 일에도 큰 신경을 안쓴다.
남편 말마따나 호박에 줄 그으면 수박이 되냐고~~
본 바탕이 어느 정도 되야 꾸며도 폼 나지....
지극히 남성스러운 외모로 그냥 한 남자한테만 사랑받고 사는 걸 행복으로 아는 여자.
남성스러운 여자한테 사랑받는 걸 최고로 아는 남자가 어울려 산다.
그러면서 분재는 너무 갖고 싶어하고.
우리의 노년을 위한 투자쯤으로.
지금 충분히 즐겁게 바라보고 은퇴 후에 작은 연못이 있는 집에서
자리 봐 가며 진열하고 볼 수 있는 그런 분재들이 너무 갖고 싶어서
나는 대단한 결심을 하게됐다.
먼저 난 결혼생활 25 년 동안 남편으로 부터 받은 금붙이란 금붙이는 다 팔기로 했다.
그래봤자 애들 돌백일 반지며 팔찌는 이미 오래 전에 다 팔았고
몇 캐럿짜리 다이야몬드는 애시당초에 없었고
18K 목걸이며 반지 .
있는 사람한테는 패물도 아닌건데 우리에겐 큰 재산이다.ㅎㅎㅎ
그러니 이걸 팔아서 하자고 그러지.ㅋㅋㅋ
엄마가 내게 주신 작은 금괴까지.
사실 이게 없었다면 생각을 접었겠지.
요즘 금값이 많이 올라서 큰 덕을 본 셈이다.
아마도 엄마가 이런 날이 올 걸 미리 아셨을까?ㅎㅎㅎㅎ
고마우셔라~~
엄마 너무 고마워요~`ㅎㅎㅎ
금괴라기엔 좀 그렇고 엄마는 내가 드린 용돈을 몇년째 모으셨다가
저번에 친정에 갔을 때 장롱에서 뭘 부시럭 거리시더니
작지만 제법 무게가 느껴지는 묵직한 상자를 주셨다.
낮은 목소리로 ..
\"이거..나중에 급할 때 요긴하게 쓰라..암말말고 얼른 넣어 둬라...\"
아~~
엄마.
우리 엄만 그랬다.
아프면 병원가시라고 드린 용돈을 몇년째 모으셔서는 작은 금덩이를 만드시다니..
엄마가 생각나면 한번씩 꺼내 보던 그 금이랑 내 반지며 목걸이..
결혼 20 주년 때 기념으로 해 주던 반지까지 다 팔았다 . 미련도 후회도 없이.
남편은 처음에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웃기만 했었다
어찌 장모님이 주신 걸 파냐고...결혼20 주년 기념일에
겨우 제대로 된 걸 하나 사 준것까지
팔아서 서운하지 않겠느냐고...
난 아무 상관없다고 주르륵..거실바닥에 쏟아 줬다.
좀 더 없나?
겨우 이거야?ㅋㅋㅋㅋ
싹슬이로 다 내다 팔고 돼지 저금통도 배 가르고
동전을 세는데 아우...돈은 더러워라~`
손가락이 새까맣도록 세었네.
어쨋거나 동전이라도 많으니까 너무 좋다~~ㅎㅎㅎ
돼지에 한 3년 정도를 모았던 거 같다.
은퇴금도 미리 좀 달라고...
세상에 퇴직금을 가불하는 우리.ㅎㅎㅎㅎㅎ
그렇게 긁어 모을데로 다 긁어 모으니 애당초 그분이 달라시던 돈에서 조금 모자랐는데
흥정의 귀재 남편이 깍아서 우리가 마련한 돈으로 해결~~
어쩌면 우리가 마련 할 수 있었던 돈이랑 딱 맞아 떨어지냐?
꼼꼼쟁이 남편은 계약서며 인수증을 만들어 도장 받고.
쇠파이프를 제단해서 진열대를 맞추려니 너무 비싸
남편하고 친구분이 둘이서 이틀이나 걸려서
옥상에서 용접해 만드는데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꽃샘 추위는 엄청나게 쌀쌀하고
바람은 왜 그다지도 심하게 부는지....
두 남자가 얼굴은 용접불똥과 햇볕에 벌겋게 익었고
2층으로 올려야 하는 자재들이며 분재들 운반하느라 나까지 동원되서
닷세동안이나 중노동에 시달렸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더 행복하단다.
아내를 기쁘게 해 주기위해서 분재를 사면서
이번에는 자기가 더 행복하단다.
분재들을 다듬고 손질하면서 다른 무언가도 많이 배우게 된다며
기쁨을 줘서 고맙다고까지 한다.
그 때 그 분재들을 판 돈으로 기부를 하고 나니 우리한테 더 좋은 이런 기회가
오지 않았을까? ....싶어 기분이 좋다.
남편은 힘들여 용접도 하고 무거운 분재들을 들어 올리느라
허리며 팔에 파스까지 바르고 강행군.
남편 친구분도 아는 이웃집 아저씨도 모두 손을 빌려주셨다.
고마운 이웃들...
진열대는 철재들이라 무거웠고 분재화분은 거의 돌 화분들이라 얼마나 무겁던지...
가정집에서 취미로 수십년 키우던 분재들이라 그런지 화분들은 다 좋은 걸 쓰셨던가보다.
우리에게 주시던 분도 사랑해 줄 사람한테 가게되서 기쁘다고 그러셨다.
분재들이 소품이 아니라 좀 큰 분재들이 많아서 옮기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
우린 빈털털이가 되고 말았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먹을게 있다는데 기본이 없는 우리는 그야말로 알거지.
알거지거나 말거나 둘이서는 헤벌죽~~`
누가 또 아냐고~
우리처럼 좀 덜 계산적인 사람이 또 있어 우리집 분재가 탐난다고 삽시다~~할지?
팔까?
돈 좀 남기고?
고생한 거 생각하면 아니올씨다.
대신 이사할 때를 걱정해서 포장이사값 적금은 들어야겠다.
난 이제 이사는 내가 못하겠다.
아니 안해~~!!
얼마나 무겁고 힘이 들던지 다리가 후들후들....
진열대 쇠파이프며 진열대 위에 깔 인조대리석 옮기는 일이며..
좋아서 해서 그렇지 이건 완전히 무식한 해병대와 마누라의 무대뽀 삶의 현장인거여~`
남편은 이제 계단만 보면 겁난다고 그런다.
하루에도 수십번을 무거운 걸 들고 오르락 내리락,,,,,
나도 계단이 무서버.
돼지도 잡아버렸고
금붙이는 작은 귀걸이 두엇?
그런거는 하나도 안 아깝다.
분재들이 이렇게나 많이 생겼는데 뭘.
남편은 분재원에 공부하러도 오래 다녔었다.
취미로 한다고 물 주고 청소해 주면서 배운 어깨너머 솜씨로 이젠 본격적인
작품을 만들어 보시라구요~`
부부가 똑 같이 하나에 깊이 빠졌으니 망정이지
어느 한 사람이 그랬다간 좀 어려울 거 같다.
누구는 땅에다 투자를 하고 아파트에다가 투자를 하는데
우리 부부는 분재가 좋아서 그만 ..그럴 여유자금도 없고.
그냥 무대뽀 정신으로 무식하게 분재만 샀다.
분재가 밥을 먹여주지는 않겠지만 정신은 풍요롭게 해 줄 거같다.
시간 짬짬이 둘러보고 물 주고 꽃이나 열매가 맺히면 즐거워하는
그런 생활은 충분히 될 것 같다.
우린 둘 다가 같이 많이 계산적이지 못하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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