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놀러 왔기에 슬며시 소매를 걷어보니
언니의 그 가느다란 팔목을 꼭 빼닮았다.
지금은 더욱 야위어 있을 언니를 생각하니
조카를 부등켜 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바로 위의 언니다. 네째언니.
학교 다닐 때 줄곧 우등생 자리를 놓지 않던 언니였는데
집안일을 돕겠다며 야간 고등학교로 학업을 마치고
사회생활 하면서 함께 자취했다.
형제들 중에 내 곁을 가장 오랫동안 지켜준
언니라고 해도 과장됨이 없으리라.
자취하던 시절, 월급날이면
통닭 한마리를 먹으며 언니는 \'껍데기는 싫다\'하고
나는 \'껍데기가 맛있다 \'라며 한 마리를 둘이서 거뜬히 먹어 치우곤 했다.
결혼 후에도 내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고 지켜주던 언니,
저녁 먹으러 가면 언니의 긴 수다에 잠시 쉬고 싶다고 투정을 부리면
\"너도 하루종일 집에 있어봐! 사람이 얼마나 그리운가\"
라며 고른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어주던 언니.
노량진의 그 언덕배기에서 연년생 남매를 키우며
큰애는 기어서 부엌쪽으로 가고(방과 부엌이 문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작은애는 똥싼 기저귀를 풀어 놓으니 발버둥을 치지.
난리도 그런 난리도 없었다.
조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자리를 잡겠다며 이사한 곳은 도시와는 외진 곳이었다.
휭하니 아이를 들처업고 가서 보리밥을 먹고 오기도 하고
봄이면 쑥을 캐서 쑥떡을 해 주던 막내언니.
그 모든 일들이 어제의 일처럼 흐르건만
그 모든 것을 계속 함께 할 수 없는게 속상하다.
오늘이 그 네째언니의 생일이다. 48번째.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모시던 날 보고 못 만났다.
언니야, 많이 보고 싶데이. 싸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