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초라한 과거여서 그 기억을 붙잡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나 개인 한 역사 속에 분홍빛 꽃물로 그 기억을
가슴에 수채화처럼 채색해 밑 그림으로 뒀는지도 모른다.
어린 날 날 참 잘난 여자로 착각하게 만든 남자 아이
부끄러움이 뭔지 모르던 그때까지 신랑과 각시인줄 알았던
아이 당연히 자라면 그 아이에게 시집가는 줄 알았고
그 아이의 보호를 당연히 받아야 되는 줄 알았던 어린 시절
어느날 30년 가까이 가지못한 고향에 대한 글을 써 보려다
더 이상 보탤것도 뺄것도 없이 누군가 작곡한 고향에 봄 가사를
떠올리니 난 할말이 하나도 없더라.
고향의 그리움인지 그 아이를 향한 그리움인지 어쩌면 고향은
그 아이로 인해 나에게 존재하고 그 아이또한 고향 그 자체로
내 가슴에 존재한 듯 하다.
그 아이의 보호를 받았던 건 초등학교 5학년 무렵으로 끝이 났고
그 아인 전학을 갔다.
참 많이도 순진했던 나는 벌써 그 아이 가슴 속엔 딴 여자 아이가
자리잡은 줄도 모르고 그때부터 키워온 그리움을 변함없이 키우며
자랐던 것 갔다.
사는게 힘들어 외국에 나가 산 것도 아니면서 그 절절한 그리움 속에
고향을 두고 흘려보낸 세월이 30년 그 세월은 곧 그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과 알콩달콩 살면서도
가슴 속 진달래빛 그 그리움은 늘 내 삶의 바탕 밑그림이 되었든 듯 하다.
언젠가 살다가 우연히 라도 한 번 본다면 나 초라한 모습으로 비치고
싶지 않아 본다는 기약도 없지만 참 열심히도 살았지 싶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사십 중반의 나이에 동창카페에서 그 아이를
만나던 날 날 심장마비에 걸려 죽을만큼 놀래키더니 어느날 전화를 걸어왔던
그 아이 손한번 잡아보지 못했고 뽀뽀한번 생각도 못해본 그 아이를 상대로
내 절절한 그리움을 적어둔 일기장을 남편이 읽고 오래도록 우울증을 앓게한
원인이 되었던 그 아리고 저민 기억들....
그저 유년의 기억 하나로도 가슴을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것은 이성의
무한한 힘일 것이다.
동창회 때 마다 보는 그 아이는 rotc장교를 거쳐 법관의 꿈을 키우던 전도 유망한
청년이 아니였고 공부에 매달리며 흘려보낸 세월탓에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는
아들과 수없이 많은 생활고에 찌들린 그저 한없이 사람좋은 모습의
평범한 중년의 아저씨로 그렇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오랜 진달래빛 밑그림을 걷어 버릴 수 없었던 것은 내 초라한 과거 속에
그나마 예쁜 추억으로 두고 싶었고 너무나 소중했던 고향같은 그 아이의 존재
며칠 전 업무 중에 뜬 메세지 하나
000친구 뇌출혈로 서울대 병원 입원.
만우절인가 달력을 봤다.
믿기지 않지만 사실인가 보다.
당장 달려가 보고 싶지만 그 아이일로 남편에게 상처준 기억 때문에 눈치만
보자니 고맙게도 등 떠밀어 주는 남편덕에 그 친구를 찾았다.
시골에서 내려오는 친구를 위해 수도권 친구들이 많이도 모였다.
문병 간다는 내 메시지를 받고 온 몸이 마비되고 말도 못하는 상황에서
아내에게 이른 새벽부터 면도를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말과 000씨가
누구냐는 아내의 물음에 \"접니다\" 해놓고선 차마 아내 앞에서 흘릴 수
없는 눈물을 나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마음의 가책없이 친구를 끌어 안고
안아주며 울고 싶었다. 세상의 반이 남자라 지만 그저 남자일뿐 나에게
진정한 남자는 내 생에 몇 명이나 될까 그 빈약한 감정도 죄가 되어
한없이 초라하고 불쌍한 친구앞에 한 방울 눈물도 흘릴 수가 없다.
그 아이가 있어 내 유년의 가슴이 분홍빛으로 아름답게 채색 되었고
남편이 있어 여자인 내가 진정여자로 대접받고
남편 앞에서 난 늘 어리고 철없는 여자가 된다.
또 언젠가 우연히 한 번쯤 만날지도 모르는 그리운 남자라는 상대는
오늘도 내가 사는 힘나는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그들을 만나 뭘 어쩌자는 것도 아니다
같은 하늘아래 좋은 감정을 가진 아무에게나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남자라는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
날 사랑했던 남자는 내 가슴엔 없다.
어느 가슴에 나도 살아가다 우연히라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며
풋풋한 그리움으로 날 기억하는 남자가
있는지 모르겠다. 저 길거리 나완 상관없이 지나가는 저 남자도 어떤 여자에겐
살아가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세상의 남자들이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
기 죽지 않고 어깨 바로펴고 당당하고 씩씩했음 좋겠다.
이 세상이 아름다워 지는데 크게 공헌한 남자들 난 그 남자들을 사랑한다.
나와 상관없는 저기 저 길가는 남자도 어느 여자에게 듬뿍 사랑 받는 남자이길
바란다. 단 며칠 한없이 작아져 버린 친구는 오월의 동창회때 만나자는 알아
들을 수 조차 없는 말만 웅얼거렸다.
한 여자의 하늘같은 남편 한 아이의 아빠 그 어머니에겐 금쪽같은 아들.
그 소중한 남자 그들이 행복하길 그들이 건강하길 빌어본다.
소중한 친구의 빠른쾌유와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