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 때도 난 입덧을 몰랐다.
결혼하고 한 서너달 지났을까?
퇴근한 남편이랑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서는데
속이 약간 더부룩..한 느낌?
평소에 밥 잘 먹고 소화 잘 시키는
그야말로 건강한 송아지 한마리.ㅎㅎㅎ
남편은 내가 소띠라 자꾸 송아지라 놀렸거든.
약간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라니
까스활명수 한 병을 사다줬던 남편.
또 그 활명수 받아 먹은 맹꽁이 나.
그러고는 둘이 부대 옆을 산책하고
돌아와서 잠도 잘 잤다.
남편은 하사관으로 꽤 오랫동안 직업 군인으로
있었기에 특별한 훈련이 없는 날은
늘 일찍 퇴근을 해서 둘이서 베드민턴도 치고
주로 산책을 많이 했었다.
그 때는 부대근처에서
비둘기들처럼 작고 이쁜 살림 살이를
장만해서 꼭 큰 애기들 소꿉장난처럼 살 던 신혼시절.
생리가 좀 며칠 늦다는 생각만 했지
임신은 상상도 못하다가 또 며칠이 더 늦어져서
산부인과엘 갔더니 \"임신입니다~~축하합니다~\"
그럼 내가 엄마가 될 사람이라고?
저녁 퇴근시간까지 기다리는데..시간이 왜 그렇게도 안 가는지...
골목길로 군화 발자욱 소리가 나나 싶어서
저녁을 어찌 했는지 기억도 없고
오면 뭐라 이야길 꺼낼까??
어떤 표정일까?
소박하고 아담한 저녁상을 차려두고
남편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참 묘했다.
기쁜 것도 같은데 무겁기도 했다.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자격이 있나?
엄마될 준비는 되어 있는건가?
남편은 아빠가 될 준비는 되었는지?
너무 아무런 준비없이 임신이 되었기에
알 수 없는 두려움까지 있었다.
작고 이쁜 애기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게 설레이는데
잘 키울 능력이 있는지에는 자신이 없어서 약간은 무서웠다.
퇴근한 남편이 저녁을 다 먹고 설겆이까지 끝내놓고
두방망이치는 가슴을 억누르고 꺼낸 임신소식.
내 얘길 다 듣는 순간 남편은 큰 눈이 더 커져서 정말이냐고...
정말 우리에게 2세가 생기는거냐고???
웃다가 날 안아주다가 또 웃고...ㅎㅎㅎ
첫 애기는 누군들 안 그러랴?
두 사람의 사랑의 결정체를 잉태했다는데...
결혼 한 부부라면 다 겪는 순조로운 일인데도
마치 우리에게만 찾아 온 축복인 것 처럼 흥분되고
세상을 다 얻은 것 처럼 감격했었다.
간 혹 부부사이에 애기가 없어 고민하는 부부를 보면
꼭 죄 지은 사람처럼 미안하고 죄송스럽기까지 했었다.
그렇게 큰 딸은 우리에게 왔고
입덧은 아예 없었으니 열달을 얼마나 잘 먹었던지...
오동통한 첫 딸을 안던 날.
그 날은 병원에서 일러 준 예정일이라
집안을 깨끗이 청소해 두고 애기용품을 챙긴 가방을 문 가까운 곳에 두고는
친정엄마를 오시라 해서 점심을 해 드렸다.
큰 통증도 없고 달리 몸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친정엄마는 애 낳을 임산부가 뭐 이러냐시며 안달이시었지만
난 설겆이까지 내가 다 하고 방도 깨끗하게 닦고
그러고는 엄마랑 버스를 타고 30 분 거리의 산부인과를 갔다.
엄마는 불안하셔서 택시 타고 가자고 난리셨지만
아프지도 않은 배를 하고는 무슨 택시냐고...
그래도 엄마는 가다가 급한일 당할까봐 안절부절...
그 때는 남편한테 차도 없었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던 군인시절이라
불편한 것도 몰랐다.
가난한 군인이 무슨 택시냐며 버스를 타고
산부인과를 가는 동안 엄마는 택시비 엄마가 준다시며
난릴 치셨지만 무슨 오기로 난 그냥 버스를 타고 갔다.
아프지도 않는데 무슨...
용감한건지 무식한건지...
그렇게 멀쩡하게 걸어서 산부인과에 가서는
오늘이 예정일이라 해서 한번 왔노라고..
간호사가 눈을 치 뜨더니
\"임산부가 누구신데요?\"
너무나 의아한 눈빛으로 묻는다.
\"전데요~~\"
\"네에? 아줌마가요? 근데 아무렇지도 않아요?\"
놀란건지 당황한건지...
\"네...안 아파요. 그냥 예정일이라해서 왔어요.\"
의료보험카드를 작성하던 간호사가 담당의사한테 알리고
곧 내진을 해 보잔다.
엄마는 여기 계세요~~하고는 보부도 당당히 진료실 입성.
아랫도리 옷을 다 벗고 요상하게 생긴 의자에 누워서 의사가
장갑을 끼고 이리저리 내진을 하더니만 급한 목소리로
\"아이고..아주머니....애기 머리가 벌써 보일라 해요.
자궁문이 벌써 열리셨어요.
간호원~`빨리 분만 대기실로....\"
그리하여 입원을 하고 몇시간의 진통끝에 3.5kg의 첫 딸을 순산.
분만촉진제를 맞고서야 본격적인 진통이 오는데
난 엄마라면 다 참아야 되는 줄로만 알았다.
초산은 진통이 좀 심하고 길거라고 했기에
당연히 오는 진통이고 산고를 거쳐야만 진정한 엄마가 되는 거라고..
배가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아파오고 온 몸이 쥐어 짜는 듯이 아파도
이쯤의 고통은 다 참아내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애기가 나오려고... 세상으로의 첫 대면을 ..엄마랑 첫 대면을 준비하는
그 과정이 이쯤의 고통으로는 어림도 없을거라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한창 진통이 진행되고 정말 정말 아파도
혼자서 이를 앙~~다물고 신음소리 조차 안 내려고
너무 너무 모질게 참고 있자니까 엄마가 오히려 고함을 질러라신다.
내가 너무 아파도 진땀만 빠작빠작 흘리며 고함도 안 지르고 손바닥으로
내 허벅지만 싹..싹 비비고 있자니
엄마가 차라리 고함을 질러란다.
나중에 손바닥이랑 허벅지 탈 날까 봐.ㅎㅎㅎ
그래도 참고 고함은 안 지르고 몇 시간을 참았다.
하늘이 돈 짝만 하고 형관등 불빛이 안 보여야 애기가 나온다기에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은 바 있어서 참고 참고 또 참았다.ㅋㅋ
형광등 불빛은 훤하게 다 보였고 엄마 얼굴도 생생하게 다 보였으니...
중간에 의사가 내진을 하는 과정이 어찌나 싫던지
\"의사선생님..저 나중에 시간되면 분만실 갈테니 장갑 낀 손 그만 .....\"
참 나도... 그 와중에 그런 말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말짱했을까?
정말 싫었었다.
당장 죽을 일 아니라면 의사가 일회용 장갑을 끼고 내진을 하는걸
그만 두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구러 시간이 흐르고 정말 애기가 보이기 시작하고
분만실로 가서는 금방 수월하게 순산을 했다.
그 때 분만실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은
간호사가... 공주님 입니다~축하합니다~`그랬을 때
실망했단다. 크흐...아들이길 바랬단다~`ㅎㅎㅎ
첫 딸은 건강하고 순하게 우리를 기쁘게 했고
남편도 잠시의 서운함을 잊고 첫 애기라 얼마나 이뻐하던지...
모유수유를 했던 큰 애는 또래 애들보다 월등하게 크고 건강했다.
바지를 벗기지 않으면 남자 애기라고들 했다.
오목조목 이쁜 여자애기 얼굴이 아니고
완전 울퉁불퉁한 남자애기 얼굴에 살이 포동포동...
열달 내내 입덧을 안했던 엄마 덕에 뱃속에서도 잘 먹었고
태어나서도 모유를 맘껏 먹었으니 건강 하난 좋았다.
둘째는 피임을 하고 있다가 5년 만에 끝내고 역시나 입덧 없이 열 달 후에 순산.
큰 애 손을 잡고 엄마가 동생 낳으면 잘 돌 봐 주지 못 할 것 같아
문구점으로 서점으로 다니며 그림책과 동화책 그림 그릴 도구를 잔뜩 사 들고는
산부인과를 갔다.
\"저..오늘이 예정일 인데요...\"
\"그럼 임산부는 어디에??...\"
간호사가 두리번 거리며 찾는다.
\"전데요?\"
\"네에? 아줌마라고요?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그 때 헐렁한 박스형 남방을 걸치고 갔었는데
워낙에 덩치도 있는 여자라 그냥 전체적으로 살이 좀 쪘나? 싶을 정도.
그렇게 수월하게..너무나 수월하게 4kg 의 둘째도 순산.
갓난애기 때 부터 둘째는 제법 이목구비가 뚜렷했었다.
동글동글...까만 눈..오똑한 콧날..긴 팔다리..건강한 둘째.
큰 딸은 친정엄마가 둘째는 시어머님이 산후바라지를 해 주셨다.
시어머님은 처음으로 산후바라지를 하시는 거라시며
신기해 하시면서 애기 빨래를 하고 나신 다음 늘 애기 곁에서
떠나시질 못하셨다.
꼬물거리는 모습이며 하품하는 입이며 손이며 발을 가만 가만 만지시며....
참 안스러운 모습으로 남았었다.
그래 그러신가 둘째한테는 각별하시다.
둘째와 막내 사이는 피임 없이 두살 터울 .
막내는 이런 이런..
산달이 가까운데 거꾸로 앉아있다니.
입덧을 안 했기에 남편한테 맛 난 것도 못 우려 먹었고
늘 하던 식사를 그냥 했는데 배가 유난히 불렀다.
걷기도 열심히 했었고 라마즈 호흡법인가? 체존가?
그것도 열심으로 따라 했고 순산을 위해 충분한 준비를 했었다.
애기가 좀 큰 편이라고도 했다.
이상한 체조를 가르쳐 주길레 따라 했더니 두 주만에 원상태 복귀.
히유...
까딱하다가는 큰 돈 들여서 제왕절개를 할 뻔 했네.
무거운 고추 하나 달고 나온다고 어찌나 까탈을 부리던지...
입덧 안한 엄마 덕으로 세 아이들 모두 건강했고
엄마 말을 빌자면 꼭 백일이나 키운 애기 같다고...ㅎㅎㅎ
얼굴에 주름도 별로 없었고 제법 오동통한 모습이 얼마나 고맙던지.
특히나 막내는 너무나 건강해서 4.5 kg.
거칠고 긴~호흡법을 여러 번....
선배언니의 배 맛사지와 순간순간 들려 준 호흡법을 잘 따라하고 낳은 아들.
머리에서 한번.
다 끝났 줄 알고 힘을 빼려는 순간 선배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
\"숙아..아직 어깨가 안 나왔어.
자..자..다시 한번 헛힘은 주지 말고 숨을 참다가 힘껏 내 밀어 봐...\"
어깨에서 또 한번.
덩치가 너무 큰 아들은 그렇게 엄마를 기진맥진하게 만들었지만
건강하고 힘찬 울음소리를 내며 나에게 안겼다.
너무나 힘이 덜었지만 끝내 순산을 고집했던 나.
의사선생님도 준비는 하겠지만 초산이 아니니 자연분만을 권했다.
내가 너무 무식했나?
의사선생님이 아들이라고 알려 주기 전에는 못 믿었었다.
헛힘을 주지 말라며 곁에서 이것저것 가르쳐 주던 고향선배언니의 고마움.
어렵게 어렵게 막내 아들이 나오고
산부인과 의사선생님 하시는 말씀
\"아이구..숙아...무슨 장군을 낳았냐? 허허허허..
기분이다..집에 가는 택시대절비는 내가 준다....
박간호사(선배)..갈 때 알아서 챙겨 드려~~
영양제랑 잘 챙겨드리고~~허허허허.\"
건강한 아들을 낳고 의사선생님 급하게 뒷처리를 해 주시는데
\"더는 애기 안 낳을거제?\" 물으신다.
\"네...인자 그만 낳을겁니다.\"
\"딸 둘에 아들 하나머 완벽하지 머. 알아서 잘 해 드려야겠네~`...\"
고향선배 덕을 톡톡히 봤다.
자주 진료를 받으러 갔고 그 병원 수간호사의 후배라고 날 어린 딸처럼 잘 대해 주신 선생님.
막내를 제법 키워서 한번 뵈러 갔더니 언니는 여전하고 선생님도 여전하셨다.
막내가 태어날 무렵에는 세째는 의료보험 혜택이 안되어서
분만비가 일반으로 처리되었는데도 우린 낳았다.
간도 크지럴...ㅎㅎ
그래도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잘한 선택인지.
요즘은 딸 둘에 아들 하나가 200 점이라며 부의 상징이라고들 한다는데 ㅎㅎㅎ.
그 때는 의료보험이 안되더라도 꼭 아들이 낳고 싶었다.
용감하게..무식하게 도전했고 성공했다.
내가 가던 산부인과병원에 고향선배가 있어서
분만비 특혜에 .. 좋은 영양제 맞고..산모한테 좋은 여러가지 물품을
잔뜩 선물로 받았다.
자궁수축에 좋은 여러가지도.
의료보험 없이 분만을 했어도 고행선배언니와 원장선생님의 배려로
큰 부담없이 막내를 낳았고 남편의 입이 한껏 올라간 모습이며
친정엄마의 기뻐하시던 모습.
엄마는 사위가 두 딸만 낳고 평소데로 쌈이며 비빔밥을 좋아하니
\"이서방..인자는 쌈이나 비빔밥은 그만 드시게나...\"
영문 모르던 남편은 그냥 웃기만 하고...ㅎㅎㅎ
위로 두 딸들이 동생 생겼다며 좋아서 들락거리던 모습.
한번도 애기를 낳아보지 못하셨던 새어머님의 신기해 하시던 모습.
친정오빠의 대견해 하시던 모습까지...
세쩨 때는 친정으로 들어가서 한달 정도 몸조리를 하고 돌아왔다.
올케의 정성스런 뒷수발이며 엄마나 오빠의 진한 핏줄사랑.
두 딸들이 크고 작은 말썽을 피웠음직한데도 좋은 얼굴로
한달동안 우리 가족을 잘 보살펴 준 막내올케는 늘 감사한 마음이다.
친정엄마가 다리가 불편해서 산후바라지를 못 해 주시겠다 하니
올케가 다 해 줄거니까 아예 애들 데리고 몸 풀기 전에 들어 오라고 그랬었다.
오빠의 아내지만 나보다 한살 어린 올케는 몸도 재빠르고 깔끔하다.
엄마 없을 때 미역국에 질린 내가 매콤한게 먹고 싶다니까
얼른 노란 콩잎 젓국절임을 대령해 주던 올케.
살아가면서 다 갚으면서 살아질런지...
올케언니 고마웠어~`ㅎㅎㅎㅎ
참 오래 전 일인데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입덧이 전혀 없었던 나는
철없이 입덧을 조금이라도 해서 남편 사랑을 더 받고 싶었었다.
어리석게도 은근히 부럽기까지...ㅎㅎㅎ
애기 낳는 일이 전혀 안 무섭다.
애기 키우는 일도 안 두렵고.
셋 다 별로 안 울면서 컸고 젖만 배 불리 먹여 두면
잠도 새근새근 잘들 자 줬고
특별히 많이 아프지도 않았고.
그래서 애기 임신하고 낳고 키우는 일이
나한테는 참 쉬운 일이었다.
닥종이 공예하시던 어느 님의 책 제목처럼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인가 보다.ㅎㅎㅎ
지금이라도 애기를 낳으라면 낳을 것 같은데..
남편은 세째를 낳고 혼자서 불임수술을 하고 왔다.
여자가 하면 부작용이 많다면서.
그래서 난 애기를 더 이상 만들지도 낳지도 못한다.
지금도 애기는 너무너무 좋은데...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