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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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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빛은 선명하다.


BY 오월 2009-01-17

2008년 12월 23일 엄마가 오셨다.

생전 늙지 않을거 같던 엄마가 무릎이 아파 다리를 질질 끌고

머리는 하얗고 단독 주택의 차게 몰아치는 외풍 만큼이나 성성한 모습으로

엄마가 오셨다.몸이 따라주지 않아 여행을 망서리기만 하시더니

손녀딸의 정성에 감복했다 하시며 여행을 결심하고 그렇게 오셨다.

 

상체에 비해 약하기만 한 하체 퇴행성 관절과 당뇨로 근 20년 고생을 하셔서

아파트 입구 계단도 기차역 즐비한 계단 앞에서도 난색을 표하시더니 결국

일본 여행은 무리라 하셔서 제주도 4박 5일 여행으로 급 수정을 하였다.

 

나도 엄마도 처음으로 타보는 비행기 괭음을 내고 하늘로 솟아오른 비행기는 잠시

흰 구름위에 신선도 만들어 주고 유유히 바다위를 선회하는 한 마리 여유로운

맹금류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깡통속 통조림 같은 착각에 무서움과 섬뜩함을 느끼게도

했다. 늦은밤 하늘에서 바라보든 야경은 두고두고 오래도록 내 가슴에 예쁜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한라산 어리목에 성산 일출봉에 천제연 폭포아래 신비스럽도록 깊고 고요한 물 속에

많은 한과 아픔과 엄마의 아픈 기억들을 모두 버리고 오자 했건만

엄마는 그 오랜 세월의 한 덩어리를 결국 버리지 못하시고 안고 돌아오셔서

어느 날 어린아이처럼 울며 토해내셨다.

 

아홉살 어린나이에 두 동생의 부모가 되었는데,엄마는 두 동생에게 부모노릇을

못해줘 동생들 가슴에 한을 심었다 하시며 서럽게 우셨다. 부모님이 두 동생을 엄마에게

부탁하셨으니 부모노릇을 해줘야 했는데 아무것도 해 준게 없어 미안하다 하시며

통곡을 하셨다. 맨몸으로 7남매를 키우며 부모없는 설움이 너무 커 아버지의 폭언도 폭력도

굶주림도 내 자식에게 \"엄마\"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는것만이 최선을 다한

 

삶인줄 알았는데 자식들을 더 가르치지 못함과 힘들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엄마의 입장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자식들의 입을 통해 들을 때면 더이상 엄마의 삶이 구차해서 사는게

힘이들고 자식들 보는게 너무 힘들다 하시며 서럽게 우셨다.

아홉 살에 가장이 되고 열일곱에 엄마가 되어 살아오신 엄마의 삶.

 

그 삶으로 만도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우셨을 삶이건만 엄마는 자신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멈추지 않고 계셨다. 이제 그 어떤 작은 상처도 더 입을 수 있는 여유가 없을 만큼 스스로 때린

그 회초리의 상처가 너무 깊고 큼을 25일 동안 엄마와 함께 생활하며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만족이란 삶이 있을 수 있을까

내가 만약 여유있는 집에 태어나 무난한 삶을 살았던 들 그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을까.

오히려 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부모님의 벅차기만 한 삶도 자식의 입장에선 늘 부족할 수

있고 자식이 느끼는 부족함을 부모님은 자신을 치는 매질로 채우고 계시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했던가.

우리는 \'말\'로써 부모님께 채찍질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자식이 때리지 않아도 죽는 날까지 부모님은 자식에게 부족했던 만큼 스스로 채찍질을 하고 계시는 듯 하다

붉은 상처위로 붉게 흐르는 피.

 

엄마는 그렇게 붉은 가슴을 열어 나에게 오래도록 내 가슴에 각인을 시켜놓고 가셨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일찍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갔다.

지나온 상처를 깨끗하게 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의 삶의 흔적같은 검버섯을 모두 제거해

드렸다. 밖에 나올 수 없어 긴 시간 집에서 아이처럼 날 기다리든 엄마 폴폴 눈 내리는 날 집으로 가시고

집에 들어가니 엄마를 절대 배신하지 않는 친구라며 껴안고 다니신 잿떨이만 거실바닥에

동그마니 있다.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잘 도착했다며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자식들은 그저 그렇다는 말일 뿐인데 엄마의 가슴에는 비수로 날아든다.

장군님 잘 가십시요 그렇게 말했다.엄마의 삶이 전장터의 장군의 삶 같다.

비수가 날아드는 전장에서 우리 장군님의 승전보가 들려오기를 기다리며 25일 오롯이 엄마만을

향해 있던 내 생활에서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장군님이 부디 이제 자신을 향한 그 채찍질을 그만 멈추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