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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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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시작이 이만하면...


BY 낸시 2008-11-26

아직 멀었어?

샤워커튼 넘어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거의 다 끝났어. 그런데 왜?

밥을 퍼도 되나 보려고.

어..밥했어? 무슨 반찬?

응..미역국하고 청국장 하고..

알써. 금방 갈거야.

 

거실과 부엌으로 통하는 문을 여니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집에 가득하다.

식탁위에는 김, 미역국, 총각무를 얇게 저며넣고 끓인 청국장,  먹기 좋게 손질한 감이 한접시 놓여있다.

그냥 의자에 앉기가 살짝 미안해서 한마디 한다.

나, 공주해도 돼?

그럼, 어서 앉아. 내 얼른 밥 퍼 줄께.

먼저 청국장을 한숟갈 떠서 입에 넣는다.

김칫국물이 섞인 청국장 맛이 입에 착 붙는다.

와, 맛있게 끓였네...

응, 멸치하고 다시마 국물내서 끓였지. 총각김치 넣고  다시 푹 끓인 다음 불끄고 청국장은 나중에 풀었어. 청국장은 끓이면 안 좋다고 그러길래..

남편이 밥을 퍼다 준다.

압력솥에서 금방 나온 밥이 윤이 자르르 돈다.

코끝에 감도는 냄새도 미각을 자극한다.

무슨 쌀로 한거야? 못 보던 밥이네...

현미가 없어서 현미찹쌀하고 보통 쌀하고 섞었지. 콩은 일곱가지 콩이 섞였다는 봉지를 하나 샀구, 보리도 넣고 조랑 수수도 섞었지.

한숫깔 떠서 입에 넣어본다.

잘 어우러진 쫄깃한 맛과 고소한 맛이 이제껏 이렇게 맛있는 밥을 먹어 본 적이 있나싶다.

꼭꼭 씹어 꿀꺽 삼킨다.

칭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맛있다. 당신 최고야.

그제야 자기 밥그릇을 들고 자리에 앉는 남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진다.

 

김은 쳐다보지도 않고 밥 한그릇을 청국장하고 뚝딱 비우고 나니 배가 부르다.

끓인 성의를 생각해서 미역국은 건지만 건져먹는다.

좀 짜다. 짜다는 말을 할까말까 잠시 망설이다 하기로 한다.ㅎㅎ 그래야 다음엔 더 맛있는 것을 얻어먹을테니까...

미역국이 좀 짜네...

어..그래? 너무 졸았나보다.

배가 가득 찬 것 같지만 그래도 감 먹는 배는 따로 있다.

하나, 둘, ...모두 여덟이다.

나 네개, 당신 네개, 이렇게 먹으려고 한 거지?

응.

나 다섯개 먹어도 돼?

그럼 다섯개 먹어도 되지.

감맛이 꿀맛이다.

늦게 식사를 시작한 남편이 식사를 끝내기도 전에 감 다섯개를 다 먹었다.

더 먹을까 말까...그래도 염치가 있지. 참자.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도 좋을리가 없어. 그렇잖아도 요즘 자꾸 허리가 굵어지는데... 망설이고 있다. 식탁에서 일어나기 싫다.

여보, 나 계속 공주해도 돼?

그럼, 설겆이 하기 싫으면 안해도 괜찮아. 나도 하지 않을 거야.

그러면서 식사를 마친 남편이 감을 하나, 두개 째 먹다말고 일어나 빈 그릇을 싱크에 넣는다.

남편이 돌아선 사이 슬쩍 남편이 먹다 남긴 감을 입속에 밀어넣는다.

대충 우물우물 씹어 삼키고 눈을 꿈벅이고 앉아있다.

건망증이 심한 남편이 눈치를 챌까, 못 챌까...

아무런 반응이 없다.

히히...그럼 그렇지. 모르는 눈치다.

 

하루의 시작이 이만하면 그만이다.

나도 염치가 있지...잘 될지 모르지만... 남편이 실수를 해도 너그러워야지 다짐해본다.

 

아, 감요? 쬐끄매요. 한국에선 그리 쬐그만 감 구경도 못했지요. 어린애 조막만 하다니까요.

가는데 세 시간 오는데 세 시간, 일요일 남편이랑 감농장을 찾아가서 열두 박스 사왔지요.

달긴 기막히게 달아요.

푼수 아줌마 맛있다고 여기저기 전화해서 선심을 쓰고 나니 내 몫은 한 박스 밖에 안 남아서 괜히 선심 썼다고 후회하는 중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