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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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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신고


BY 꿈과같이 2008-11-25

자정이 넘어 남편이 귀가했다.

사업하는 사람이 너무 귀가가 빨라 당신이 공무원인지 아느냐고 타박을 하곤 했었는데,

일년에 열 손가락에도 안 꼽힐 정도로 11시를 넘겨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만취해서 온 몸에 찬바람을 묻히고 들어왔다.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외제차 뒷좌석에 앉아 편하게 귀가하던 사람이

생소한 지하철을 갈아타며 낯선 풍경에 아직 동화되지 못해 혼돈스러운 얼굴로

그러나 짐짓 쾌활하고 씩씩한 얼굴을 하며 들어서는데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한껏 주질르며 나도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사업을 한지 12년.

대기업에 다닐 때도

외국인 회사에 다닐 때도

다시 대기업으로 들어가 최연소 이사가 되었을 때도

그리고 42세 적지 않은 나이에 자기 사업을 시작할 때도

그 어느 때도 오늘을 예상하지 못했었다.

남편은 유능했고, 나이에 비해 순발력도, 트렌드도 빨리 캐치하는 스타일이었고

한참 유망하단느 IT쪽 사업이었으므로

사업은 어렵지 않게 풀려 나갔었다.

IMF 도 큰 흔들림 없이 잘 이겨 냈었고

사업은 조금씩 규모가 커져 직원 수가 50명까지 늘어 났고

난 우리의 미래에 대해 조금치의 불안도 의심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남편은 십여년을 해오던 회사에 폐업신고를 했다.

\'세무서에서 나왔다. 오늘로 **는 사망신고를 한 셈이야 \'

담담하게 전화를 하는 남편에게 아무런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작년부터 조금씩 안 좋아지기는 했지만

올 들어 급격히 상황이 급전직하 하더니

결국 이렇게 마무리가 되고 만 것이다.

뉴스에 나오는 중소기업 도산이라는 파트에 한 일원이 되고만 우리.

지난 1달간 내가 흘린 눈물은 48년 평생을 살아 오면서 흘린 눈물양을 능가했고

아직도 때때로 꿈인 듯싶고,  안재환의 심정이 너무나 이해가 가고

딸 아이만 없다면 정말 이대로 모든 것을 다 놓아 버리고만 싶다.

우리, 착하다는 말 듣고 살았었는데....

우습지만 점장이가 돈을 많이 벌테니 보시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에

나름대로 주변을 도와 주며 살아 왔는데....

친정도 시댁도 다 어려운 사람들이라 모든 경제적 부담 우리가 다 짊어지면서도

짜증내거나 억울해하지 않으면서 살아 왔는데.....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우리에게 닥쳤는지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벌을 받고 있는 건지

아직은 납득할 수가 없다.

그래도 지나다 보면, 견뎌내다 보면 언제가는 웃을 날이 온다고들 한다.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 때까지 얼마나 지옥같은 시간을 견뎌야 할런지.

내가 그걸 감당할 그릇이 되는지.....

사망신고를 하고 만취가 되서 돌아 온 남편은 코를 골고 자고 있는데

아직 현실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나는 2시가 넘었는데도 잠을 못이루고 있다.

내가 지나야 할 터널이 무섭고....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