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맘 때였을 것이다.
석 달 간 맺어진 남자 셋, 여자 셋의 인연은.
1984년 겨울의 문턱에 나는 친구 둘과 함께 학교 부근의 다방을 찾았다.
그 당시는 커피전문점이 다방이란 이름보단 카페테리아로, 짧게 말하면 그냥 카페라고 더 많이 불려 지던 때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의외성을 노렸는지 인테리어가 제법 잘 되어있는 세련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이름은 불꽃 다방이었다.
지금은 그럴 여유도 낭만도 다 갖지 못한 무미건조한 아줌마이지만 당시엔 그래도 커피 맛을 골라 카페를 찾아다니던 적당한 까탈스러움도 지니고 있었다.
불꽃 다방의 커피 맛은 괜찮았고 가격도 다방이란 이름에 맞게 부담이 없었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던 늦은 오후, 커피 향에 끌려 불꽃을 찾았을 때 내 곁에는 자그마한 체구에 깜찍하게 생긴 친구 L과 커다란 쌍꺼풀을 가진 서글서글한 친구 K가 함께 있었다.
우리는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어가며 몸을 녹였다.
그때 한 남자아이가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합석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슬쩍 곁눈질하며 본 아이들의 인상은 순진해보였고 무엇보다 어려 보였다.
친구들은 서로 번갈아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런 경우에는 거절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는데 이 아이들에겐 순순히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남자 아이들은 우리를 보며 몇 학년이냐고 물었다.
그때 누가 그랬는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2학년이라고 한 학년 올려 말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우리에게 그럼 누나가 되시겠네요. 라고 했다.
그 친구들은 자신들을 재수생이라고 소개했다.
며칠 전 학력고사를 끝내고 이렇게 방황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사실은 동갑이지만 그 친구들이 우리를 누나라고 부르니 진짜 동생을 앞에 둔 것처럼 만만하고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그 친구들은 앞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자기들을 종종 만나 선배로서 조언도 해주고 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해왔다.
잘난 것 하나 없어도 잘난 척 해야만 할 것 같은 그 통통 튀는 시절의 우리는 그때 무슨 까닭인지 그 아이들의 부탁에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키가 유난히 컸던 H, 유머가 많았던 뚱뚱이 J, 그리고 눈빛이 선한 Y.
누나와 동생들로 우리들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친구들이 우리에게 후배들을 소개시켜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순간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우린 아주 흔쾌하게 예쁘고 착한 후배들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큰소리쳤다.
지금 이 시점에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그 친구들과 우리 사이에 어떤 감정들이 흐르고 있었는지 좀 모호한 편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가 친구를 후배라고 속여 그 친구들과 소개시켜 주려는 맘이 말처럼 그렇게 흔쾌하진 않았음은 확실하다.
만나면 늘 커피나 마시던 어느 날, 첫눈이 내렸다.
누군가 학사주점에 가자는 제안을 했다.
술이 앞에 있으면 왠지 자기 속의 또 다른 자기를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어진다.
그 친구들 중 누군가가 소개팅에 대해 다시 말을 꺼냈고 우린 물색 중이라고 답했다.
우린 정말로 괜찮은 친구들을 이 남자아이들에게 소개시켜 주려고 작정하였다.
다만, 잘못해서 우리가 그들과 동갑이란 것이 탄로 날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도 술이 들어가서인지 뭔가 다른 분위기로 변하는 것이 감지되었다.
그때까지 우리를 누나라고 부르며 높임말과 반말을 섞어서 이야기 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드러내놓고 말을 낮춘 것이다.
그러면서 더 이상 자기들을 속이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들고 다니던 책이 교양과목 책이라며 1학년인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도 대놓고 아는 척 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신들들 더 만나주지 않을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말들을 주고받다가 어느 새 긴장이 풀리고 술도 과해졌는지 여태껏 지켜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까지 술을 별로 접하지 못했던 터라 술을 마시면 내가 어떻게 변하는 지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었고 따라서 조심할 수도 없었다.
생각보다 술은 달았다.
주점의 동동주는 설탕을 넣었는지 달짝지근했고 그 친구들이 시켜 준 소주도 혀에 달기만 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버지도, 오빠도 맥주 한잔이면 온 몸이 벌개져서 차마 뵙기가 민망할 정도로 술이 약한데 나는 외탁을 했는지 술을 마시면 더 뽀얗게 변하고 기분도 약간 몽롱해 지는 것이 딱 좋았다.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나보고 술이 이렇게 센 줄 몰랐다는 말도 칭찬처럼 들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그리고 슬퍼졌다.
그 아이들이 반말하는 것도 싫고 이런 자리에서 술 마시는 자신도 보기 싫어졌다.
눈물이 났다.
처음엔 조금 났는데 울다 보니 점점 소리도 커지고 어느새 통곡이 되었다.
친구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내 이성이 완전히 마비되지는 않았는지 진창에 빠지려는 내 감정을 수습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확실히 술에 강한 체질이었다.
거의 처음 술에 입을 대면서 바로 소주 한 병에 동동주 몇 사발을 마셨는데도 필름도 끊이지 않고 놀라운 정신력으로 비틀거리지도 않고 걸을 수 있었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내 생각이긴 하지만.
그 뒤로 우린 더 편하게 만남을 가졌다.
아마 3대 3으로 서로에게 개인적으로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만남을 지속시켜 준 것 같았다.
그 해 겨울은 정말 눈이 많이 내렸다.
때때로 커피 마시고 또 술도 마시고 눈도 맞고 음악도 같이 들으며 함께 놀았던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펑펑 눈이 내리는 어느 날, 대학로 어느 거리에서 누군가 말했다.
야, 88년 첫 눈 내리는 날 우리 여기서 다시 만나자.
또 누군가 말했다.
얘들아, 우리 결혼하면 각자 자기 여보 데리고 와서 같이 만나자.
그 이야기를 듣고 깔깔 웃었다.
나도 그러면 참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쉬운 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따르는 법이다.
합격발표가 나고 그들은 각자 지원한 학교에 합격했다.
우리는 축하해 주었고 그 기쁨을 함께 하려고 만났다.
우리에겐 사실 그동안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금기되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개인적인 만남을 갖지 않는 것.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깨어지면 우리들의 만남이 더 이상 될 수 없으리란 것을 우리는 예감했다.
그 날이 왔다.
역시 술이 말썽이었다.
나는 첫 날의 경험에 겁먹고 술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술은 또 나를 울릴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다른 자리에서도 술이 과하게 들어가면 자꾸 울고 싶어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맨 정신으로 술 마시는 친구들을 보게 되었다.
키가 크고 얌전한 친구 H가 깜찍한 내 친구 L을 좋아한다는 말을 했다.
첫날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도 H가 L을 보고 첫 눈에 반해 말을 걸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만나는 중에는 그런 눈치를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술도 들어가니 용기가 났던 것이다.
내 친구는 싫다고 말했다.
이런 건 싫어.
나랑 친구K도 물론 짜증났다. 조금 초라해졌을 것 같기도 한데 그런 기억은 지금 없다.
어수선한 분위기. 술에 취해 벌게진 H의 눈빛. 그리고 나머지 아이들의 어색한 숨소리들.
우린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끝이었다.
연락 오는 것도 단호하게 거부했고 순식간에 우정도 사랑도 아닌, 어정쩡한 감정으로 이어진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끊어지고 말았다.
그 친구들은 착했고 순진했고 그리고 우리들 말을 잘 들었다.
우리의 바람대로 그들과 우린 각자의 생활로 돌아갔다.
84년의 겨울은 그들과 신나는 만남의 시간이었지만 그 후 88년의 약속도, 결혼 후 만나자는 약속도 눈이 녹듯 흔적 없이 사라졌다.